목우씨의 詩詩한 소통(477)

제477편 : 정일근 시인의 '어머니의 그륵'

* 목우씨의 詩詩한 소통(2026) *


♡ 정일근 시인 편 ♡


- 어머니의 그륵 -


어머니는 그륵이라 쓰고 읽으신다
그륵이 아니라 그릇이 바른 말이지만
어머니에게 그릇은 그륵이다
물을 담아 오신 어머님의 그륵을 앞에 두고
그륵, 그륵 중얼거려 보면
그륵에 담긴 물이 편안한 수평을 찾고
어머님의 그륵에 담겨졌던 모든 것들이
사람의 체온처럼 따뜻했다는 것을 깨닫는다
나는 학교에서 그릇이라 배웠지만
어머니는 인생을 통해 그륵이라 배웠다
그래서 내가 담는 한 그릇의 물과
어머니가 담는 한 그륵의 물은 다르다
말 하나가 살아남아 빛나기 위해서는
말과 하나가 되는 사랑이 있어야 하는데
어머니는 어머니의 삶을 통해 말을 만드셨고
나는 사전을 통해 쉽게 말을 찾았다
무릇 시인이라면 하찮은 것들의 이름이라도
뜨겁게 살아 있도록 불러 주어야 하는데
두툼한 개정판 국어사전을 자랑처럼 옆에 두고
서정시를 쓰는 내가 부끄러워진다
- [마당으로 출근하는 시인](2003년)


d_f61Ud018svc199ngvuo0yqho_149gk0.png?type=e1920_std ([홍대신문], 2019. 4. 2)



<함께 나누기>

오래전 서울역에서 기자가 귀성 승객에게 인터뷰하는 장면을 보고 있는데, 이런 질문이 나왔습니다. ‘설날에 고향으로 가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여러 답이 나왔지만 제가 기억하는 명답은 ‘어머니가 거기 계시기 때문’이라는 말이 아직도 귓가에 생생합니다.
2004년 [영국 문화원] 창립 70주년 기념해 영어를 쓰지 않는 102개국 남녀 4만 명을 대상으로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영어 단어가 무엇인지에 대해 설문 조사를 했습니다. 이미 짐작하셨겠지만 Mother (어머니) > Passion (열정) > Smile (미소) > Love (사랑)
그러니까 ‘어머니’는 세계인이 가장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단어임에 틀림없습니다. 시의 글감으로도 1위 2위를 다툴 터.

시로 들어갑니다.

“어머니는 그륵이라 쓰고 읽으신다 ~~~ 어머니에게 그릇은 그륵이다”

우스개를 먼저 던집니다. 경상도 출신 중씰한 사내가 서울로 올라가 건강검진 받으러 병원에 가 문진을 받는데 간호사가 묻습니다.
“현재 아픈 곳 없나요?”
“어데예, 시방 쌩니가 우리하고 달구지가 땡땡해서 죽겠심니더.”
“네?”


애시당초 학교를 다닌 적 없는 어머니에게 ‘그릇’은 읽기도 쓰기도 힘든 단어입니다. 차라리 그륵이 더 편합니다. 그리고 이 시행은 그릇이 옳으냐 그륵이 옳으냐를 판별함이 아니라 어머니에게 익숙한 게 어느 것이냐를 묻고 있으니까요.

“물을 담아 오신 어머님의 그륵을 앞에 두고 ~~~ 따뜻했다는 것을 깨닫는다”

화자는 대학을 나온 데다 시를 쓰는 일이 직업이니 맞춤법 규칙에 따르면 그릇이 옳고 그륵이 틀리다는 사실을 잘 압니다. 함에도 그릇 대신 그륵이라 소리 내 읽어보면 왠지 모를 따뜻함이 밀려듭니다. 당연하지요, 그륵엔 어머니의 혼이 담겼으니까요.
요즘 사투리란 말 대신 ‘탯말’이라는 말로 바꿔쓰자는 이들이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저도 이에 동의합니다. 탯말은 태아기부터 어머니를 통해 습득한 언어, 즉 태중(胎中)에 배운 말로 고향과 어머니의 정서가 담긴 영혼의 말을 의미합니다.

“나는 학교에서 그릇이라 배웠지만 / 어머니는 인생을 통해 그륵이라 배웠다”

여기서 ‘그릇’이 학습을 통해 배운 것이라면 ‘그륵’은 인생(삶)을 통해 터득한 것이라는 점에서 서로 다릅니다. 그러니 ‘내가 담은 한 그릇의 물과 어머니가 담은 한 그륵의 물'은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릇에 담은 물’은 사랑과 정성이 없는 물이지만 ‘그륵에 담긴 물’에는 사랑과 정성이 있는 물이라는 점에서.

“말 하나가 살아남아 빛나기 위해서는 / 말과 하나가 되는 사랑이 있어야 하는데”

참된 말의 가치를 이보다 더 분명하고 의미 있게 표현한 구절을 본 적 없습니다. ‘말과 하나 되는 사랑’ 어머니가 쓰시는 말에는 어머니의 삶이 들어가 있는데 화자는 그런 삶을 살리기보다 사전부터 우선 먼저 뒤적였으니까요.

저번에 AI로 만든 수필 한 편을 보여드렸을 겁니다. 그때 읽으신 분들은 느꼈겠지만 표현은 이쁠지 몰라도 삶이 들어가 있지 않았습니다. 금요일에 올리는 생활글이 좋은 수필이냐 평범한 수필이냐를 따지지 말고 적어도 거기에 저만의 삶이 담겼음을 알아주셨으면...

“무릇 시인이라면 하찮은 것들의 이름이라도 ~~~ 서정시를 쓰는 내가 부끄러워진다”

시인은 자신을 부끄럽다고 겸손하게 표현하지만 속에는 글 쓰는 사람들에 대한 당부의 의미도 담았습니다. 즉 시(글)에는 어떻게 비유나 묘사를 잘하느냐보다 얼마나 진솔한 삶의 향기와 빛깔을 담아내느냐에 더 신경 써야 함을.
글로 배운 그릇보다 삶으로 체득한 그륵이 더 살아있듯이, 저는 아직 ‘전’이라는 말보다 ‘찌짐’이 더 친근하고 맛있게 느껴집니다. 혹 길 가다 ‘정구지찌짐’이란 차림표가 붙은 가게를 보면 괜히 들어가고픈 충동을 느끼니까요.


2.png ([경향신문], 2014. 1. 24)



#. 정일근 시인(1958년생) : 경남 진해 출신으로 1984년 [실천문학]과 1985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 중학교 교사로 기자로 근무하다, 모교인 경남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로 재직하다 퇴직한 뒤 같은 대학교 석좌교수로 계심. 울산 살 때는 ‘고래 보호 운동가’로, ‘반구대 암각화 국보 지정 운동’에 앞장섰고, 한 달 전엔 열다섯 번째 시집 [시 한 편 읽을 시간]을 펴내기도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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