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계의 시침과 분침

나이 일흔에 풀어놓는 소소한 이야기(103)

* 시계의 시침과 분침 *



시골집은 오래 비워두면 이곳저곳 말썽이 납니다. 그래서 종종 들러 어디 흠집이 생기지 않았나 살펴봐야 합니다. 그저께 들렀을 때 새로 고장 난 걸 보았습니다. 바로 괘종시계입니다. '요즘 그런 시계 달지 않는데...' 하며 아내가 못마땅해 했지만 시골 분위기에 딱 어울린다고 우겨 달아 놓았습니다.

그 사이 배터리가 다 됐는지 가다가 섰습니다. 배터리만 갈면 돌아가겠지 하며 다시 살펴보니 시침과 분침이 어긋나 있었습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시침은 정확히 ‘2’에 섰는데 분침은 6에 섰습니다. 이러면 안 되지요. 1시 30분도 2시 30도 아닌 어중간한 위치니.

거기서 우화 하나를 얻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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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세차게 분다 하여 ‘바람재’라 이름 붙은 고갯길 바로 아래 사는 김 노인 댁 시계 이야기입니다. 그 시계는 김 노인이 농협에 저축을 많이 했다 하여 받은 선물입니다. 그러니 아낄 수밖에요.
시계에는 시침과 분침, 초침 그렇게 셋이 살고 있는데 사이가 그리 좋은 편은 아니었어요. ‘시침’이 늘 불만에 가득 차 있었으니까요. 왜냐구요? 명색이 누구나 먼저 들먹이는 맏형뻘이지만 실제론 가장 느리지 않습니까.

초침은 아예 처음부터 상대도 되지 않으니 말할 것도 없지만 분침보다도 훨씬 느립니다. 시침은 초침을 따라잡을 순 없어도 분침만은 따라잡고 싶었어요. 그래서 늘 빨리 가려 애썼지만 도무지 어떻게 할 방법이 없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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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모습을 보고 초침은 헛웃음만 한 번 지을 뿐이지만 분침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시침을 놀리는 재미가 좀 좋을까요. 오늘도 그렇습니다.
“얘, 너 아무리 애써봐야 나를 따라올 수 없어. 내가 기어가도 넌 저만치 내 뒤꽁무니만 쫓아오면 다행이지.”
그런 놀림을 받을 때마다 한 대 쥐어박고 싶지만 그것도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아 물론 하루에 스무네 번이나 마주치니 혼내 줄 기회야 많지만 그때도 잠깐 마주쳤다 이내 사라지니 어떻게 할 도리가 없습니다.

시침은 단 한 번만이라도 분침을 이기고 싶었습니다. 한 번만이라도 이겨서 조롱받은 걸 한꺼번에 되돌려주고 싶었지요. 허나 그건 불가능한 일. 아시다시피 시침과 분침과 초침은 서로 얽혀 있어 한쪽이 빨리 달리고 싶다 하여 빨리 달릴 수 없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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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걸 잘 알면서도 분침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지 않으면 속이 터져 제대로 살 것 같지를 않습니다. 딱 한 번만, 딱 한 번만 이기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어느 날 시침은 모질게 마음먹었습니다. 어떻게든 지금보다 더 빨리 달려 이기고 싶어서.
힘을 냈습니다. 그러나 서로 톱니가 얽혀 있는 구조라 어떻게 할 도리가 없습니다. 다시 힘을 냈습니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가운데서도 착각인지 모르지만 약간 ‘들썩’ 하는 느낌은 받았습니다.
시침은 다시 한번 더 힘을 냈습니다. 이번에도 꿈쩍 않습니다. 이전과 같은 속도입니다. 그렇지만 분명히 들썩 하는 느낌은 확실합니다. 좀 더 애쓰면 속도가 올라 분침을 따라잡을 수 있으라는 생각도 듭니다.

시침의 이런 노력이 분침에게도 느껴졌는지 놀리듯 한마디 던집니다.
“아이구, 이 바보 멍충아! 네가 그런다고 더 빨리 움직일 수 있을 것 같애! 원래 너는 나를 절대 이길 수 없어! 괜히 힘 빼지 말고 가만히 있으렴.”
시침은 그러나 가만히 있을 수가 없습니다. 조금만 더 힘쓰면 될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시 힘을 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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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초침도 느꼈는지 잔뜩 찡그린 얼굴이 보입니다. 왠지 모를 위기에 분침이 한술 더 떠 잔뜩 약을 올리려 들었습니다.
“네가 그렇게 애쓴다고 해서 이 시계가 그대로 반응할 것 같으면 내 손에 장을 지지겠다.”
시침은 듣는 둥 마는 둥 다시 힘을 냈습니다. 이번에는 더욱 강하게 느낌 옵니다. 그러다가 노력 덕분인지 한 칸 건너뛰었습니다. 성공입니다. 한 번 넘어가면 다음은 쉽습니다. 분침과 초침이 뭐라 하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시침은 귀를 막았습니다.
다시 건너뛰었습니다. 그리고 계속 건너뛰었습니다. 아직 분침을 완전히 따라잡지는 못했지만 얼마 안 있으면 곧 될 것 같습니다.


그때 왈칵 방문이 열리고 주인이 들어왔습니다. 시침은 깜짝 놀라며 행동을 잠시 멈추었습니다. 주인은 이것저것 뒤적이다가 문득 시계로 눈을 돌렸습니다. 그러더니,
“싸구려 시계를 얻었더니 역시 믿을 게 못 돼. 왜 시침이 이리 빨리 가. 새로 다시 사 와야겠군. 에이!”
하고는 댓돌로 내던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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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바람에 시계는 산산조각이 났습니다. 유리가 깨지고, 초침은 아주 멀리 날아가고, 분침은 다음으로 멀리 날아가고, 시침은 댓돌 바로 아래 떨어졌습니다. 마침 그때 집 지키던 개가 무슨 소린가 하고 왔다가 박살난 시계 위에 오줌을 냅다 갈기고는 그냥 사라져 갔습니다.

*. 사진은 모두 pixabay에서 퍼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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