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02편 : 이영도 시조시인의 '진달래'
* 목우씨의 詩詩한 소통(2026) *
♡ 이영도 시조시인 편
- 진달래 -
눈이 부시네 저기,
*난만(爛漫)히 *멧등마다,
그날 스러져 간
젊음 같은 *꽃사태가,
맺혔던 한(恨)이 터지듯
여울여울 붉었네.
그렇듯 너희는 지고
욕처럼 남은 목숨,
지친 가슴 위엔
하늘이 무거운데,
연연(戀戀)히 꿈도 설워라,
물이 드는 이 산하(山河).
- [석류](오빠 이호우와 함께 펴낸 오누이시집, 1968년)
*. 난만히 : 꽃이 활짝 피어 흐드러진 모양
*. 멧등 : 1. 무덤, 2. 산등성이
*. 꽃사태 : ‘사태’가 흙이 쏟아져 내리는 현상이니, 꽃이 흐드러지게 핀 모양. 여기서는 젊은이들의 꽃다운 무수한 죽음을 비유한 말.
<함께 나누기>
제가 시를 배달하는데 나름 기준을 둡니다. 적어도 1990년 이후에 나온 시집으로. 왜냐면 그전까지는 대부분 학교에서 배웠을 것이므로. 헌데 오늘 시조는 그때보다 훨씬 더 전인 1968년에 나온 작품입니다. 그럼에도 배달하는 까닭은 워낙 할 얘깃거리가 많은 시인이고 시이기에.
특히 이영도 시인 하면 유치환 시인과의 소위 ‘플라토닉 러브’라는 등식에 얽매여 시조시인으로서의 평가를 제대로 받지 못하는 편입니다. 오늘 시조는 왜 이 시인을 황진이 이후 최고의 여성 시조시인인가 하는 점을 잘 보여주는 시라 여겨 일부러 골랐습니다.
이 시조의 역사적 배경을 모르고 읽으면 잘 이해 안 될 겁니다. 다행히 교과서에 실려 있어 배운 분들에겐 낯익겠지만. 이 시조는 4·19 혁명에 앞장섰다가 산화한 영령을 진달래꽃에 비유하여 추모하는 작품입니다. (어제 시조와 달리 '구별 배행 시조'임)
“그날 스러져 간 / 젊음 같은 꽃사태가 / 맺혔던 한이 터지듯 / 여울여울 붉었네”
민주주의를 외치던 청년들이 산화한 ‘그날’이 되면 우리나라 방방곡곡에 진달래는 해마다 어김없이 바알갛게 피어납니다. 화자는 그 ‘붉은 꽃사태’를 그날의 의로운 청년들의 표상으로 여깁니다. 여기서 꽃사태란 표현에 주의하면 그만큼 많은 젊은이가 희생됐다는 뜻도 담았습니다.
왜 이 시인의 시조가 뛰어나느냐 하면 우선 시조의 율격을 살려 읽기 편하면서도 그 의미가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입니다. 불의에 항거하다 총탄에 피 흘리며 죽어간 젊은 넋의 한이 무더기무더기 진달래꽃처럼 붉게 물들어 있는 형상으로 잘 그려놓았기에.
“그렇듯 너희는 지고 / 욕처럼 남은 목숨”
원래는 나이 든 이가 먼저 죽고 나이 적은 이가 뒤에 죽어야 함에도 그러지 못하니 어른으로서 부끄럽지요. 살아남아서 하늘 보기가 민망하다는 말을 종종 듣습니다. 부모보다 자식이 먼저 갈 때도 그렇고.
이 부분을 그날 산화한 숭고한 넋을 깊이 추모하며 그 죽음을 결코 헛되이 하지 말고, 살아있음이 욕되지 않게 하겠다는 다짐으로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저도 동의합니다. 단순히 그냥 부끄러움만 느끼고 있다면 젊은이의 희생이 아무 의미 없이 되니까요.
“지친 가슴 위엔 / 하늘이 무거운데 / 연연(戀戀)히 꿈도 설워라 / 물이 드는 이 산하”
‘하늘이 무거운데’라는 시구를 통해 당대 현실이 그렇게 많은 젊은이가 피를 흘렸건만 민주주의는 아직 오지 않은 암울한 시대임을 암시합니다. 왜 그러면 꿈이 서러웠을까요? 피를 흘렸으면 그 피에 대한 보상이 나와야 함에도 그러지 못하니 그들의 꿈은 여전히 미완인 채로 남았다는 뜻.
철마다 찾아오는 진달래꽃의 붉은 물결, 그 아름다움만 보지 말고 그 속에 젊은 피의 외침이 담겼음을 인식하라는 시인의 절규가 지금도 들려오는 듯합니다.
#. 이영도 시인(1916년 ~ 1976년) : 호는 ‘정운(丁芸)' 또는 '정향(丁香)’. 황진이 이후 최고 여성 시조시인이란 평을 받음. 청마 유치환과 편지를 주고받는 정신적 사랑으로 수많은 연시(戀詩)를 낳게 만든 시인으로 더 많이 알려짐.
정운 이영도 시인을 얘기하다 보면 필연적으로 한 사람과 관련 용어가 따라나옵니다. 바로 '청마 유치환'과 '플라토닉 러브'.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플라토닉 러브란 개념을 확실히 각인시킨 두 사람. 육체적 사랑과 대조가 되는 '정신적 사랑'을 가리키는 말이라죠.
두 사람이 통영여중에서 처음 만났을 땐 청마는 기혼자(38세)로 국어교사였고, 정운은 과부(30세)로 가사교사였습니다. 정운은 21세에 남편과 사별한 뒤 혼자되어 딸 하나를 키우며 교육과 시조 쓰는 일에 몰두하고 있을 때였고.
미인에다 같은 문학의 길을 걷는 정운을 보고 한눈에 반한 청마는 혼자 마음에 담아두다가 솟구치는 감정을 주체 못해 정운에게 고백합니다. 처음에 정운은 청마의 접근을 완강히 거부했답니다. 헌데 날마다 보내오는 연서(戀書)와 연시(戀詩)에 결국 마음을 열었고 둘의 사랑은 시작되었습니다.
시와 편지를 매개로 한 두 사람의 사랑을 보여주는 증거로 청마가 사망하기까지 약 5,000여 통의 편지를 정운에게 보냈다고 합니다. 어떤 땐 안부만 묻기도 했지만 대부분 그리움의 내용을 담은 연시며 연서였습니다.
둘의 사랑이 많은 아름다운 시를 남겼지만 유치환 시인의 아내 마음은 어땠을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