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만든 개나리꽃 전설

목우씨의 '달내마을' 이야기(152)

* 새로 만든 '개나리꽃 전설' *



요맘때는 우리나라 어디를 가도 좋다. 굳이 ㅇㅇ축제라 이름 붙인 곳을 가지 않더라도 벚꽃은 지천으로 피고, 야산에만 올라도 진달래꽃이 수군수군. 눈을 아래로 깔면 노오란 수선화도, 연푸른빛 봄까치꽃도, 노란 물감을 풀어놓은 유채꽃밭도, 이제 먹기엔 너무 컸지만 꽃으로 새단장한 하이얀 냉이꽃도...

우리 집에 들어서기도 전에 벚나무 한 그루가 시선을 끈다. 저리도 큰 벚나무 보기 쉽지 않는데 외돌개처럼 우뚝 서 만개한 모습이 참 도도하다. 집 입구에는 지난주에 썼던 빠알간 명자나무꽃, 그리고 우리 집 담벽마다 죽 두른 개나리꽃. 해서 오늘 글감은 개나리꽃으로 잡았다.


c_a4bUd018svc19mkwn3p5zzwx_149gk0.jpg?type=e1920_std (유채꽃밭)



“나리 나리 개나리 입에 따다 물고요,
병아리떼 종종종 봄나들이 갑니다”

어릴 때 한 번쯤 불러보았을 「봄나들이」란 동요다. 노랫말을 보면 개나리가 나릿과의 식물임을 짐작케 한다. 나리 가운데서도 개나리란 뜻이니까. 마침 ‘참나리’도 있으니 충분히 그렇게 여길 만하다. 허나 이는 잘못이다. 개나리는 나릿과와 전혀 관련 없다. 이름만 같을 뿐.
개나리는 식물 종(種)에 나리가 붙을 뿐 나릿과에 속하지 않고, 대신 물푸레나무과에 속한다. 사실 어릴 때는 대나무처럼 나무가 아니라 풀이 아닌가 여길 정도로 가지 속이 텅 비어 있다. 몇 년 지나 가지가 굵어지면 ‘아하, 나무 맞구나!’ 하게 되고.

그런데 이리 끝내려 하니 의문이 들리라. 왜 나릿과에 속하지도 않은데 개나리라 했을까? 백합을 뜻하는 우리말 ‘나리(꽃)’에 접두사 ‘개~’가 붙어 만들어진 것으로 봄이 현재까지 정설이다.


d_14bUd018svc13zl9mxm0jrmr_149gk0.png?type=e1920_std (우리 집 석축을 두른 개나리꽃)



다만 이 말엔 나리꽃(백합)보다 아름다움이 덜하거나, 야생에서 너무 흔해 ‘나리’와 비슷하지만 질이 낮은 나무라는 의미도 담았다. 하기야 ‘개’가 붙으면 ‘개복숭아’ ‘개살구’처럼 야생이나 질 낮은 뜻을 가짐도 사실이니까. 허나 개나리는 그런 취급 받아선 안 되는 꽃이다.
개나리는 다른 나라에서는 쉬 볼 수 없다. 물론 지금에야 세계 각국에서 우리나라 모종을 갖고 가 퍼뜨렸다면 흔히 보이겠지만. 이는 개나리 학명을 보면 드러난다. ‘Forsythia koreana’. 뒤에 붙은 ‘koreana’가 뭘 뜻하는지는 설명하지 않아도 다 아실 터.

우리 집 담장마다 개나리가 가득한 까닭은 처음 집터 닦으려 토목공사할 때 석축을 쌓고 옹벽을 치다 혹시 있을지 모를 산사태에 부담을 느꼈다. 보통 산흙이 무너질 위험 있는 곳엔 대나무를 심는데 대나무는 한번 뿌리 내리면 언덕뿐만 아니라 밭까지 쳐들어와 나중에 밭마저 못 쓰게 만드니까 가능한 피해야 한다.
그때 번쩍 머리를 스쳐 간 게 바로 개나리였다. 개나리도 다 자라면 대나무 못지않게 땅속 깊이 파고들어 언덕 무너짐을 방지하는 효과가 좋다. 거기에 대나무는 사시사철 푸르러 그 멋을 좋아할 사람이 있을지 모르나 계절에 따라 꽃, 잎, 단풍, 앙상한 가지 드러내는 개나리가 보기 더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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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개나리에 세 가지 전설이 전한다. 궁금하신 분들은 인터넷 검색하면 나오니까 찾아보시길. 아마도 실망하리라. 모두 개나리를 주인공으로 한 얘기 아니라 관련 없는 다른 이야기 끝에 슬쩍 개나리를 끼워 넣은 형태라 새로 하나의 스토리 만들 욕심이 생겼다.


"옛날, 아주 오랜 옛날에 황금을 무척이나 좋아하는 왕이 살았다. 그의 궁전은 온통 황금빛으로 채워졌다. 궁궐의 기둥부터 천장은 물론 찻잔 밥공기 수저, 침실도 온통 황금 아니면 황금빛으로 덧칠돼 있어 일 년 내내 번쩍번쩍 빛났다.


생명이 없는 고정된 사물에 황금을 두른 것으로 만족하지 못해 이번에는 황금빛 생명체에 관심을 두었다. 처음 내린 명이 황금빛 새를 찾아오는 일. 명을 받은 신하는 어쩔 수 없이 길을 나섰으나 황금빛 새가 어디 흔한가. 탈래탈래 걸어가다 하늘에서 문득 들려오는 아주 맑은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아 황금빛의 예쁜 새가 소리도 곱게 나뭇가지에 앉아 노래하지 않은가. 기쁜 마음에 애써 잡아 오니 그 새가 바로 꾀꼬리다.


d_64bUd018svcsa8qtwcen719_149gk0.jpg?type=e1920_std (꾀꼬리)



한동안 꾀꼬리 소리에 빠져있던 왕이 이번에는 궁궐 연못에 빛깔이 거무튀튀한 물고기들 말고 황금빛 고기를 원했다. 명을 받은 신하가 길을 나섰다가 개울을 내려다 보니 황금빛 물고기가 헤엄쳐 다니는 걸 보고 잡아 왔다. 바로 그게 금붕어다.
이렇게 하나에 관심 두었다가 이내 호기심이 식어지면 다른 걸 요구하는 왕의 변덕에 신하들은 죽을 맛이나 명을 어길 수도 없는 일. 다행히 다음 순번은 꽃. 황금빛 노란 꽃은 얼마나 많은가. 산수유 수선화 동백꽃(생강나무꽃) 유채꽃 산국 오이꽃…

노란 꽃이 많음은 다행이나 신하들 불행은 그 꽃에 왕이 빠지지 않았다는 점. 그래서 신하들은 부지런히 다음 꽃을 갖다 대령해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신하가 병아리 빛깔 닮은 노오란 꽃을 갖고 왔는데 그 꽃을 보자마자 왕은 무척 마음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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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신하들이 다른 노란 꽃에 비해 특별히 예쁘지도 않은 그 꽃에 의아해했지만 왕은 그 꽃에 푹 빠져들었다. 다른 꽃들은 황금 속에 있으면 황금과 비교돼 이내 그 빛이 죽지만, 이 꽃만은 너무나 수수해 오히려 황금을 누르고 있으므로.
그래서 왕이 물었다. 꽃의 이름이 뭐냐고. 신하들 가운데 아무도 대답하지 못하자 왕이 이리 말했다.
“아무도 이름을 모른다는 말이지, 으음… 좋아 내가 이름을 붙이지. 나리꽃이라고. 오늘부터 경들은 모두 내 말대로 나리꽃이라 부르거라.”

그날부터 왕은 나리꽃을 무척 아꼈는데 문제는 이 꽃이 번식력이 너무 빨라 이내 궁궐 뜰을 다 채웠다. 그래도 괜찮았다. 다른 꽃이 피던 정원을 나리꽃으로 바꾸면 되니까. 허나 궁궐 안에만 머물 줄 알았는데 웬걸, 이 녀석이 밖으로 빠져나가 민가에까지 퍼지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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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신하들은 궁궐에서 가까운 민가로 퍼져나간 나리꽃을 없애려 다녔는데 이내 포기하고 말았다. 왜냐면 몇 년 사이에 온 나라에 다 퍼졌기에. 그러나 왕에게 고할 수도 없는 일. 쉬쉬하고 있었는데 임금이 백성들의 생활을 살피려 다니는 민간 시찰의 날이 왔다.
그 사이 몇 년 동안은 여름 아니면 가을이라 걱정 없었는데 하필 이땐 나리꽃이 만발하는 봄이었으니. 왕이 흐뭇한 마음으로 궁궐을 나와 이곳저곳 둘러보다가 눈이 휘둥그레 떠졌다. 여기도 나리 저기도 나리, 자기가 가장 좋아하는 꽃이 무더기 무더기로 피어 있지 않은가.

화들짝 놀라 물을 수밖에.
“저 황금빛 나는 꽃 이름이 뭔가?”
“저어…” “저어 저게…” “저어 저 꽃 이름이…”
신하들은 쭈삣쭈삣 말을 더듬을 수밖에. 그제사 자기가 그만큼 아끼고 가꾸었던 황금빛 나리꽃이 온 나라에 퍼졌음을 알게 된 왕이 크게 노하였다
“에잇! 저 꽃을 나만 좋아하려고 가꾸었더니 온 나라에 다 퍼졌다니… 당장 이름을 바꿔라. 나리꽃에서 개나리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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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난 번식력에 왕의 미움을 산 나리꽃은 졸지에 개나리로 이름이 바뀌고 말았다. 이때의 ‘개’란 야생의 뜻과 질이 떨어지는의 뜻을 지닌다. 비록 나리꽃으로 사랑받던 이쁜 이름이 졸지에 개나리로 바뀌었지만 꽃은 자신의 이름을 원망하지 않고 봄이면 방방곡곡을 노랗게 물들이고 있다.
아니 요즘 식 표현으로 바꾸면 ‘개~’란 접미사가 ‘개꿀, 개멋있다, 개이득, 개이쁘다’처럼 ‘뛰어나다, 좋다, 훌륭하다’라는 뜻으로 바꿔 쓰이고 있으니 왕이 몇 백 년 뒤를 내다보고 붙인 이름이랄까. ㅎㅎ
개나리도 나리 가운데 ‘개이쁜 나리꽃’이란 뜻으로 의미 부여하면 되지 않을까. 어떤 사물이든 이름에다 뜻을 붙여 자꾸 그 이름을 부르면 그리 변하기 마련이다. 올봄에도 '개멋있는' 꽃 개나리가 우리나라를 온통 덮고 있다.

*. 우리 집 석축을 두른 개나리 사진을 제외한 다른 사진은 출처를 밝히지 않아도 되는 pixbay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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