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고 뜯고 따고 베고 꺾고…

목우씨의 '달내마을' 이야기(160)

* 캐고 뜯고 따고 베고 꺾고… *



이맘때 시골 밥상은 온통 그린필드, 즉 풀밭이다. 달리 '초록의 물결'이란 고상한 표현도 쓰인다. 그만큼 나물이 밥상 전체를 좌우한다. 얼마 전 시골 사는 벗을 만났더니 이리 말했다. “요즘 우리 밥상에는 풀떼기만 올라 고기를 보기 힘들다.”

하기야 지금보다 나물거리가 풍부할 시절이 어디 있으랴. 잠깐 밖에 나가 아래위로 눈 주면 머위, 달래, 고사리, 돌미나리, 비비추, 취나물, 두릅… 굳이 차 몰고 시장 가지 않아도, 애써 재배하지 않아도, 깊은 산속 들어가지 않아도, 가까운 언덕배기만 뒤지면 다 나온다.
다행히(?) 우리 집 텃밭에는 고사리, 취나물, 부지깽이나물, 돌미나리, 정구지(부추), 아스파라거스, 두릅, 비비추를 조금씩 심어놓았으니 입맛대로 뜯어먹을 수 있다.


a_2d6Ud018svcnv2k6r2vox0j_149gk0.png?type=e1920_std (고사리)



‘뜯어먹을 수 있다?’ 문득 이 말을 내뱉고 나니 봄나물마다 채취하는데 필요한 말이 조금씩 다른데 뭉뚱그려 쓰다니. 즉 나물에 따라 ‘캐다, 뜯다, 베다, 따다, 꺾다, 뽑다’의 쓰임이 각각 다르다. 함에도 평소 이것저것 구별 없이 쓰는 추세다.


(1) ‘캐다’와 ‘뜯다’


어릴 때 즐겨 불렀던 동요 「봄이 오면」과 경북 청도 지방에 전해오는 민요의 한 부분을 보자.
“봄이 오면 언니하고 바구니 들고 / 나물 캐러 가던 일이 생각납니다”
“나물 뜯으러 가잔다 서문 밖에 서(西) 처자야 / 남문 밖의 남(南) 도령아 나물 뜯으러 가잔다”
노래에 나오다시피 일단 나물을 채취할 때 주로 쓰는 말은 ‘캐다’와 ‘뜯다’다. 이 둘 말고 ‘따다’ ‘꺾다’도 쓰지만 이 둘이 대세임은 분명하다. ‘캐다’와 ‘뜯다’, 이 둘은 쓰임에 조금 차이가 난다. 예를 들어 ‘쑥을 캐다’와 ‘쑥을 뜯다’를 살펴보자.


a_dd6Ud018svc1k9ywtg4avs5q_149gk0.png?type=e1920_std (나물 캐는 아낙네 - AI 도움)



‘쑥을 캐다’ 할 때는 뿌리나 전체를 채취할 때 쓴다. 즉 칼이나 호미를 이용해 땅속 뿌리까지 혹은 뿌리 아주 가까이까지 들어 올릴 때 사용한다. 주로 이른 봄 아직 작고 연한 쑥을 뿌리 근처 부분을 포함해 캐서 국을 끓이거나 무침을 할 때 쓰기 적절한 말이다.
다음 ‘쑥을 뜯다’를 보자. 이때는 뿌리는 두고 손이나 칼로 땅 위에 올라온 잎이나 줄기의 윗부분만 취할 때 주로 쓴다. 쑥이 어느 정도 자란 늦봄에 억세진 밑동은 두고 부드러운 윗부분만 뜯을 때 쓰며, 쑥떡 만들기 위해 많은 양의 쑥잎을 모아야 할 때 주로 사용한다.
지금 계절에는 쑥이 억세져 국 끓여 먹기에는 쓴맛이 강하게 난다. 이럴 때는 쑥국 대신 쑥떡으로 마침맞다. 쑥도 제법 커 엄지와 검지를 이용해 가는 부분을 살짝 당기면 그냥 바로 얻을 수 있다. 이럴 경우에는 ‘뜯다’가 적당하다는 말이다.


a_fd6Ud018svccf6p1qx78usz_149gk0.png?type=e1920_std (비비추)



(2) ‘따다’와 ‘꺾다’

‘따다’와 ‘꺾다’도 쓰임에 차이가 있다. ‘고사리를 따다’와 ‘고사리를 꺾다’를 한번 보자. ‘고사리를 꺾다’가 자연스러운 표현인데 까닭은 고사리 줄기 중간 부분을 손가락으로 ‘툭’ 소리 나게 잘라내는 행위이므로.
고사리는 봄에 올라오는 어린순을 채취하는데, 윗부분은 부드럽지만 아래쪽은 뻣뻣하다. 잡아보면 감촉으로 바로 느껴진다. 따라서 이때는 고사리의 부드럽게 잘리는 지점을 엄지와 검지로 꺾어 내는 것이 일반적이기에 ‘고사리를 꺾다’ 함이 맞다.
그러면 ‘고사리를 꺾다' 대신 '따다’ 하면 잘못일까? ‘따다’가 모든 나물을 채취한다는 의미를 지니니까 ‘고사리 따러 가자’란 말도 틀리거나 맞춤법에 어긋난 표현은 아니다.


a_hd6Ud018svc1q0ynnc8jf2h7_149gk0.png?type=e1920_std (부지깽이나물)



(3) ‘뽑다’와 ‘베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쓰는 말도 따지고 들면 ‘어 이상한데…’ 하고 느낄 때가 종종이다. 이왕 나물 얘기가 나왔으니까 한번 보자. 달래나 냉이를 두고 ‘캐다’라는 표현이 일반적인데 이때는 사실 ‘뽑다’가 더 맞다. 왜냐면 아예 뿌리째 뽑으니까.
배추와 무도 원래 둘 다 ‘뽑다’라 했는데 표현이 바뀌었다. 옛날에는 배추도 뿌리째 먹었으니까 둘 다 ‘배추를 뽑다’ ‘무를 뽑다’라 했다. 헌데 지금은 ‘배추를 따다’라 하고 ‘무를 뽑다’라 한다. 배추 뿌리 부분을 칼로 잘라 채취하니까. 이것만 보면 쑥과 비슷하다. (아직 배추를 뽑다 하고 쓰는 사람이 많긴 하지만)

그리고 작은 텃밭에서는 ‘정구지를 캐다’ 하면 적당하다. 헌데 대규모 하우스에선 낫으로 베어야 한다. 그때는 ‘정구지(부추)를 베다’라는 말을 쓴다. 우리 집 텃밭에 심은 정구지는 도구(아주 작은 낫)로 베니 그때도 베다라고 해야 하는데 그러면 마치 어마어마하게 많이 심은 것 같아 조심스럽다.


a_5d6Ud018svcinru44qmb7im_149gk0.jpg?type=e1920_std (두릅)



(4) 봄날이 오면은 뭐 하노…

문득 ‘봄날이 오면은 뭐 하노 그쟈’로 시작하는 최백호의 「그쟈」라는 노래가 떠오른다. 봄날이 오면은 뭘 할까, ‘답정너’다. 나물 캐러 가야 한다. 내일과 모레 날씨도 좋다고 하니 꽃 구경삼아 작은 칼과 바구니 들고 나서보시기를.
달래를 숭숭 썰어 토장국 만들어 듬뿍 떠 밥에 넣어 비벼 먹으면 되고, 운 좋게 산두릅이라도 발견하게 되면 살짝 데쳐 초장에 찍어 먹으면 그보다 나은 술안주는 없을 터.
산두릅이 귀하다면 머구(머위)는 천지빼까리. 없으면 우리 집 언덕에 쌈싸 먹기 딱 좋은 손바닥만 한 크기로 자랐으니 뜯어 가시길. 화초 비비추 말고 야생 비비추도 옮겨 심어놓았더니 마구 번져 텃밭을 숭숭 뚫고 올라왔니 역시 필요하시면 갖고 가시길.


9_id6Ud018svc1469sc5gc5vtu_149gk0.jpg?type=e1920_std (아스파라거스)



정구지는 야생에서는 구하기 힘들지만 장에 가면 많이 나와 있을 터. 정구지 찌짐 만들어 탁배기 한잔 걸치면 잠시나마 신선 되는 즐거움도 누릴 터. 야산에 가면 부지깽이나물도 취나물도 눈에 띌 테니 뜯어와 된장에 조물조물 무치면 밥 한 그릇은 뚝딱.
우리 부부는 둘 다 거섶(비빔밥에 섞는 나물)을 좋아하다 보니 세 끼 밥상마다 풀밭이지만 어쩌랴, 이 계절만은 양과 토끼가 되고 싶은걸. ‘봄날이 오면은 뭐 하노?’가 아니라 봄날이 오면은 들녘으로 내닫자. 꽃 구경 사람 구경하다가 싫증 나면 나물도 뜯고.

*. 나물 채취를 이런저런 용어 사용을 언급했는데, 이 말이 저 말보다 조금 더 낫다는 뜻이지, 이 말은 옳고 저 말은 그르다는 뜻이 아닙니다.

*. 또한 나물 이름은 지역마다 다르니 혹 궁금하시면 인터넷 뒤져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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