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16편 : 장정일 시인의 '중앙과 나'
* 목우씨의 詩詩한 소통(2026) *
♡ 장정일 시인 편 ♡
- 중앙과 나 -
그는 <중앙>과 가까운 사람
항상 그는
그것을 <중앙>에 보고하겠소
그것을 <중앙>이 주시하고 있소
그것은 <중앙>이 금지했소
그것은 <중앙>이 좋아하지 않소
그것은 <중앙>과 노선이 다르오
라고 말한다
<중앙>이 어딘가?
<중앙>은 무엇이고 누구인가?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중앙>으로부터
임명을 받았다는 이자의 정체는 또 무언가?
<중앙>을 들먹이는 그 때문에
자꾸 <중앙>이 두려워진다
우리가 사는 곳에서 아주 먼 곳에
<중앙>은 있다고
명령은 우리가 근접할 수 없는 아주
높은 곳에서부터 온다고
그는 말한다
그리고 이번 근무가 잘 끝나면
나도 <중앙>으로 간다고
그는 꿈꾼다
그러나 십 년 세월이 가도
<중앙>은 그를 부르지 않는다
백 년 세월이 그냥 흘러도
<중앙>은 그에게 편지하지 않는다
<중앙>은 왜 그를 부르지 않는가?
<중앙>은 왜 그를 기억하지 않는가?
- [길안에서의 택시 잡기](2020년)
<함께 나누기>
시에서 핵심적 역할을 하는 시어는 그냥 넘기지 않고 찾아봅니다. ‘중앙’이 나오니까 비슷하게 쓰이는 중심과 어떻게 다른지 보았습니다.
일반적으로 중앙은 ‘단순히 가운데 위치’를 가리킨다면 중심은 ‘모든 것이 집중되는 핵심 지점’입니다. 예를 들어 ‘골대 중앙을 향해 슛을 날렸다’와 ‘그는 이번 프로젝트의 중심 인물이다’를 보면 차이가 나지요.
한자로 살펴보면 ‘가운데 中’과 ‘가운데 央’의 합성어로 ‘가운데서도 가운데’란 뜻을 지녔습니다. 헌데 이 말이 나라나 사회 속으로 들어가면 무엇이든 마음껏 휘두르는 '권력'이 됩니다. 미국의 트럼프를 보면 잘 알 수 있지요.
“그는 <중앙>과 가까운 사람 / 항상 그는 / 그것을 <중앙>에 보고하겠소 / 그것은 ~~~ 그것은~~~ 그것은 ~~~ / 라고 말한다”
이 연은 마치 조지 오웰의 [1984]란 소설을 떠올리게 합니다. 거기 이런 말이 나오지요. '빅 브라더가 당신을 지켜보고 있다'
특히 ‘텔레스크린’이란 기기는 오세아니아 시민을 24시간 감시ㆍ 통제하고 사생활을 완전히 박탈하여 독재 체제를 유지하는 필수적인 도구로 사용됩니다.
여기서 그는 바로 텔레스크린과 같은 역할을 하는 존재입니다. 나뿐 아니라 내 주변의 사람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여 보고하는.
흔히 들은 공산주의 체계 하에서의 생활과 일제강점기 하의 억압되고 통제된 생활이 절로 떠오릅니다. 거기선 권력층을 비판하는 말을 일절 하지 못했으니까요.
“우리가 사는 곳에서 아주 먼 곳에 / <중앙>은 있다고 / 명령은 우리가 근접할 수 없는 아주 / 높은 곳에서부터 온다고 / 그는 말한다”
중앙은 두려운 존재입니다. 내가 범접할 수 없는 곳에 위치합니다. 그곳은 아주 높은 곳입니다. 높은 곳이기에 아래를 내려다보면 내가 하는 행동 모두가 다 '중앙'에게 보입니다. 그걸 바탕으로 나를 통제하고.
중앙은 분명 두렵습니다. 허나 그보다 더 두려운 건 중앙에다 사사건건 내 행동을 보고하는 그가 더 무섭지 않을까요?
실제 시인의 삶 속으로 돌아가 봅니다.
시인은 청소년 시절 폭력사건에 연루돼 1년 6개월 간 소년원 생활을 했고, [내게 거짓말을 해 봐]란 소설을 펴낸 뒤 동료 문인과 언론의 고소로 음란물로 인정돼 1심에서 징역 10월이 선고되었습니다.
그나마 항소심에서 음란문서 제조죄 등을 적용받아, 징역 6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아 실형은 살지 않았으나 그때 심정이 어땠을까요?
자기 편이 돼 주리라 의심하지 않았던 동료들이 여러 차례 재판 과정에서 증언석에 나와 자신이 한 말과 한 행동이 분명 아니건만 진실처럼 쏟아졌을 때는 ‘마치 보이지 않는 큰 손에 놀아나는 것 같더라’ 하는 심정을 글로 남겼으니...
“그리고 이번 근무가 잘 끝나면 / 나도 <중앙>으로 간다고 / 그는 꿈꾼다”
‘중앙’으로 가야 사람대접을 받고 ‘중앙’으로 가야 살길이 열립니다. 그래서 늘 자기 최면을 걸지요. ‘중앙’에서 언젠가는 날 부르리라고.
나는 '중앙'과 아주 멀지만 그는 '중앙'을 꿈꿉니다. 권력을 지향하는 이들에게 중앙은 성지(聖地)입니다. 당연히 그도 꿈꾸겠지요?
“그러나 십 년 세월이 가도 / <중앙>은 그를 부르지 않는다”
갑자기 서글프고 우습습니다. 나를 괴롭히던 그도 ‘중앙’에서 배제되었습니다. 아무도 ‘중앙’에서 그를 기억해 주는 사람이 없습니다.
더욱 큰 서글픔은 백 년 세월이 더 흘러도 ‘중앙’은 그에게 연락하지 않을 거라는 점을 확인했기 때문에. 중앙은 그를 이용만 했을 뿐.
시인뿐 아니라 그도 나도 중앙이 아니라 변두리입니다. 변두리는 중앙이 두렵습니다. 가까이하고자 해도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 실체가 드러나지 않는 ‘중앙’이 두렵습니다. 정체도 모호한 그 존재가 우리를 억압한다고 여기니까요.
혹시 제 주변에도 중앙에 보고하는 그가 있을까요? 설마...
#. 장정일 시인(1962년생) : 부모의 종교관으로 학교 교육은 중학교로 끝맺은 뒤, 청소년기에 폭력 사건에 연루돼 소년원에 들어가 실형 살면서 책을 읽고 독학으로 문학을 공부함. 최종학력 중졸이건만 오직 뛰어난 문예 창작 능력으로 동덕여대 문창과 초빙교수를 역임한 소위 ‘천재 시인’
1984년 [언어의 세계]를 통하여 시인으로, ' 87년 [동아일보]를 통해 극작가로, '88년 [세계의문학](봄)을 통해 소설가로 등단하였고, '88년 시집 [햄버거에 대한 명상]을 펴내 당시 최연소(26세) 나이로 <김수영 문학상>을 수상하여 문단의 주목을 받음.
그러나 '97년에 [내게 거짓말을 해 봐]란 소설로 필화 사건을 겪었는데, 너무 외설적이라고 언론과 문인들에게 고발당함.
*. 첫째 사진은 조지 오웰의 소설 [1984] 표지이며, 둘째는 구글 이미지에서 퍼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