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길을 걷다 보면 가끔 신기한(?) 나무가 보인다. 잎을 보면 감나무가 분명한데, 열매는 감이라기에는 너무 작다. 더욱 나무 자체도 볼품없다.
그래서 지나쳐 버리곤 했는데 이곳 달내마을에 처음 이사와 동네 한 바퀴를 돌다 보니 집집마다 안과 밖에 몇 그루씩 있는 게 아닌가. 결정적으로 우리 집 바로 앞에 한 그루가 높다랗게 서 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바로 ‘깨감나무’였다.
깨감나무는 표준어로 ‘고욤나무’라 하고 지역에 따라서는 ‘땡감나무’라 하지만 깨처럼 작은 감이 열린다고 하여 부르는 이름이 더 정겨워 나는 이 이름을 쓴다.
깨감나무는 그 이름 속에 ‘감’이 들어 있으므로 감이 열리긴 한다. 하지만 그 감은 너무나 작고, 익어도 맛이 없고, 또 씨가 많아 먹기 위해 키우는 집은 없다.
몇 년 전 우리 집 무지개 대문 옆에 덩그러니 솟은 깨감나무가 밖에서 보면 집의 전망을 가려 잘라버리려 하다가 그래도 다른 용도가 있는가 하여 지나가는 마을 어르신에게 여쭈어 보았다. 그랬더니 대뜸, “아무 데도 쓸모없는 기라요.” 하기에 바로 잘라버렸다.
그런데 얼마 뒤 가음 어른이 지나다 보시더니 왜 잘랐냐고 해서 다른 어르신이 한 말을 그대로 전했다.
“쯧쯧, 오래 산 나무는 함부로 자르는 게 아닌데... 그만큼 세월을 땅에 정 붙였는데... 단감을 접붙이면 바로 단감나무로 바뀌는데...”
달내마을뿐 아니라 시골에선 예전에는 깨감나무가 많았다. 집집마다 댓 그루씩 다 심었는데, 이제 집 가까이 있는 나무는 다 잘라버려 거의 보이지 않지만 더 깊은 산골로 가면 아직도 더러 보인다.
그 말을 듣고 처음에 꽤나 궁금하였다. 제대로 먹지도 못할,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그 나무를 줄줄이 심어놓은 까닭을. 나중에 깨감나무를 심은 까닭이 깨감을 따먹기 위해서가 아니라 단감나무와 접붙이기 위해서라는 얘기를 들으면서 의문이 풀렸지만.
깨감나무는 일반 감나무보다 훨씬 빨리 자란다. 대신에 단감나무는 자라는 속도가 그에 비해 매우 더디다. 이 둘을 접붙임으로써 빨리 자라면서 단감이 열리는 나무로 바뀌는 것이다. 또 거기에 맺히는 감은 순수 단감나무에서 열리는 감에 못지않다 하니 ….
두 종류 나무의 문제점이 하나로 합쳐짐으로써 서로의 결점을 보완한 것이다. 이런 경운 깨감나무 말고 다른 과일에도 적용된다. 즉 대부분의 접붙이는 과실수가 바로 이런 과정을 통해 훨씬 빨리 더 나은 형태로 탄생한다. 둘의 장점만을 지닌 과실수로.
(자르기 전 칡넝쿨로 덮인 깨감나무)
얼마 전에 제자를 길에서 만나 얘기 나누던 중에 곁에 선 그의 딸을 보았다. 중학생쯤으로 보여 어느 학교 다니는 가를 물은 뒤, 다음 물음에서 사건(?)이 터졌다.
"공부 잘하니?"
정말 그 애가 공부 잘하는지 궁금해서 던진 질문이 아니라 그냥 인사차 무심코 던진 말이었다. 그러자 그 애가 대뜸 "아이 씨, 또 공부야!" 하는 게 아닌가. 제자는 난처해선지 그 애 머리에 꿀밤을 먹였고, 그 애는 "왜 때려!" 했고...
뒤 얘기는 더 하지 않으련다. 모처럼 제자와의 해후가 엉망진창이 됐다. 그 뒤 그에게서 들은 얘기로 우리가 만나기 직전에 시험성적 때문에 제 엄마에게서 야단맞은 뒤였다니...
명색이 교사 출신이 왜 그런 말을 했을까? 후회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 학생에겐 공부밖에 생각지 않는 사고가 무의식 중에 발현된 모양이다.
사실 공부 외에도 장점으로 거론할 말이 수없이 있다. 성적만 뒤떨어질 뿐 다른 면에서는 오히려 더 나은 면을 지닌 아이들이 수두룩하다. 개미나 벌들 같은 곤충의 생태 관찰에 유달리 관심 많은 아이, 어려운 이를 돕는 마음이 몸에 배여 저절로 스며 나오는 아이, 그림이나 노래나 글쓰기에 남다른 재주를 보이는 아이...
그런 아이들이 모여서 서로에게 부족한 면을, 다른 아이가 가진 장점을 보면서 채워가는 곳이 바로 학교요, 교육이 아닌가.
아니 어디 학교뿐이랴. 얼마 전에 마당 한쪽에 정자를 짓기로 했다. 물론 내가 능력 없으니 형, 동생 하며 지내는 이를 불렀다. 그가 쇠로 된 각관을 자로 재고, 그라인더로 자르고, 용접하여 붙이는 일을 하도 시원시원하게 잘하기에 한 마디 했다.
"야, 네 용접기술만 내가 지녔더라면 얼마나 좋을까?" 하자,
"아이구, 형. 저는 형처럼 가르치고 글 쓰는 능력이 참 부럽습니다." 했다.
하기야 내가 용접기술이 뛰어나다면 그를 부를 리 없으니 밥벌이가 줄어들 테고, 그가 글 쓴다면 나도 손을 놓아야 한다. 그래서 이리 말했다.
"그럼 앞으로 이렇게 하기로 하자. 네가 일하러 갈 때 내가 조수로 따라가 용접기술을 배우고, 글 쓰기를 내가 가르쳐 주고."
그러나 요즘 그의 일감이 떨어져 노는 날이 더 많단다.
(자른 뒤 휑뎅그렁하게 남은 깨감나무 그루터기)
이제 우리의 아이들에게 해야 할 말이 정해 졌다. '공부 잘하니?' 하는 말 대신 '넌 무슨 일에 관심 많니?'로. 혹 길고양이나 버려진 개에게 관심 많다고 하면 '멋지다!'는 말과 함께 '엄지 척!' 해 주기로.
휑뎅그렁하게 그루터기만 남은 깨감나무의 잔해(殘骸)를 보면서 참 아쉬움을 느낀다. 내가 좀 더 신중하게 결정했더라면 그 나무는 아직 살아 있을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