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목우씨의 詩詩하게 살자(226)

제226편 : 권영상 시인의 '되돌려 주고 가기'

@. 오늘은 권영상 동시인의 동시를 배달합니다.


되돌려 주고 가기

권영상


햇볕 한 톨 받은 걸로

강낭콩은 콩꼬투리를 키워

다문다문

밥그릇에 되돌려 주고 갔다.


찌르레기는 무얼 주고 갔나.

새끼 찌르레기 잘 키워

쯔삣쯔삣,

마을 숲에 돌려주고 갔다.


피라미가 주고 간 건 무엇일까.

저를 키워 준 개울물

찰랑찰랑 개울물

파랗게 칠해 주고 떠나갔다.


나는 이 땅에

무얼 돌려주고 가야 하나?

연필을 들고 창가에 앉아

그걸 생각한다.

- [잘 커다오, 꽝꽝나무야](2009년)


*. 권영상 동시인(1952년생) : 강원도 강릉 출신으로 1980년 [강원일보] 신춘문예(동시)를 통해 등단. 서울 배문중학교 교사로 근무하다가 퇴직했으며, 주로 동시와 동화를 쓰며 현재 한국아동문학인협회 부회장.

(강낭콩꽃)


<함께 나누기>


제가 아는 한 시인은 산골에 살며 농사짓고 있는데, 젊을 때는 못 느끼던 걸 나이 드니까 딱 한 가지 자꾸 명치에 걸리더랍니다. 이제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적어지니 문득 나는 뭘 남기며 가야 하나 하는 번뇌가 늘 가슴 속 깊이 맺힌다나요.

명색이 시인이지만 고작 두 권밖에 못 냈고, 더욱이 팔린 권수라야 채 만권도 안 되니 말이지요. 거기에 벌어놓은 돈은 없고, 번듯한 집도 없고, 남 부러워할 명예도 없고, 내세울 자랑거리 하나 없으니.


이 번뇌가 가슴에 응어리지게 커질 무렵 문득 한 가지가 떠오더랍니다. 그것은 바로 남길 게 따로 없다면 내가 가진 걸 싹 다 돌려주자고. 그날부터 대소변을 받아 삭혀 거름으로 농사를 지었답니다. 음식물 쓰레기가 생겨도 밭에 묻어버리면 그만, 그러니까 따로 남겨주지 않아도 되더라는데...


시로 들어갑니다.


강낭콩은 햇볕 한 톨 받은 고마움과 비 한 모금과 바람 한 줌으로 콩꼬투리를 키웠습니다. 그렇게 키운 콩을 밥그릇에 되돌려 주고 갔습니다. 인간의 먹이로 제공했다는 안타까움(?)이야 있지만.

찌르레기는 한여름 내내 새끼 낳고 잘 키워 숲속에서 함께 ‘쯔삣!’ ‘쯔삣!’ 하며 합창을 합니다. 그 소리가 온 마을 숲에 가득 퍼져 같은 날짐승은 물론 길짐승도 고운 노랫소리 덕분에 숲속엔 평화가 깃듭니다.

개울 속의 피라미도 저가 살던 개울물에 찰방찰방 헤엄치며 강물을 파랗게 칠해 주고 떠나갔습니다. 뿐일까요, 개울에 이끼 끼지 않도록 정화도 하며, 꽁꽁 언 얼음 아래서도 살아있는 개울을 만들었습니다.


“나는 이 땅에 / 무얼 돌려주고 가야 하나?”


강낭콩처럼 찌르레기처럼 피라미처럼 나도 이 땅에 뭘 남기고 가야 하는데 무얼 남겨야 할까요? ‘용서 평화 고마움 배려심 베풂 따뜻함’을 남겨야 할 텐데 오히려 ‘시기 질투 갈등 이기심 욕심’만 잔뜩 남기고 가는 건 아닌지...

부모로부터 사회로부터 자연으로부터 받은 건 많은데 남겨줘야 할 건 적으니 참 걱정입니다. 남길 게 없다면 이참에 무명 산골시인처럼 똥오줌이라도 남겨 순환되도록 해야 하나, 참 고민입니다.


(찌르레기)


한 편 더 배달합니다.


- 창가의 화분 -


창가에 놓인

화분에

꽃이 피었다.


내가 보기 좋도록

안쪽으로

돌려놓았다.


그러다가

다시 되돌려 놓았다.

꽃이 좋도록.

―[구방아, 목욕 가자](2009년)


keyword
작가의 이전글목우씨의 산골일기(1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