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학루

by 김정호김감독

1997년 여름, 괌 하늘은 비극으로 물들었다. 대한항공 801편이 괌에 착륙하던 중 니미츠 힐에 추락하여 승객과 승무원 254명 중 228명이 생을 마감하였다. 그해 소위 IMF 사태라는 아시아 금융위기가 발생하였고, 우리나라도 외환보유고가 바닥나고 단기간에 기업의 파산이나 부도, 대량 실직이 생겼다.


항공사에 정비사로 근무하던 나도 그 격랑을 비껴갈 수 없었다. 회사는 강제 무급휴직 제도를 도입하였다. 한 달씩 강제로 휴가를 가야 했고 팀원들이 십시일반 갹출하여 휴가자에게 생활비를 주었다. 연봉이 반토막이 났으나 회사가 파산하지 않은 것에 만족하며 힘들게 생활하였다. 우리나라 경제는 국제통화기금(IMF)의 관리하에 운영되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그 위기는 내 인생의 전환기가 되었다. 괌 사고를 계기로 1999년 정부는 항공 안전감독관 제도 신설 등 항공 안전 종합 대책을 마련하였다. 당시에는 항공 현장 경험이 없이 자격증만 가지고 있는 정부 공무원이 항공사를 감독하고 있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안전감독관 제도가 필요했다. 감독관은 현장 경험을 가진 조종사 정비사 등 여러 직군으로 구성되며 계약직 공무원이다. 현장 경험이 있는 사람에게 급여를 맞춰주기 위해 계약직으로 채용했다. 아시아 금융위기로 인해 직장의 불안전성과 삭감된 급여로 이직을 고민하던 차에 우리나라 최초의 감독관으로 임용되어 공직 생활을 시작하였다. 감독관은 항공사가 안전하게 운항할 수 있도록 운항 전에 운항 면허를 발급하기 전에 사전 검사를 하고 이후 지속적으로 감독 활동을 한다. 일부 예외가 있으나 항공사가 해외공항에 처음 취항을 할 때마다 감독관의 사전 검사를 받는다.


대한항공은 우리나라 국적 항공사 중 처음으로 1993년 8월 30일 중국 우한에 취항했다. 취항 전 현장 사전 검사를 하기 위해 업무차 우한공항을 방문할 기회가 생겼다. 우한은 코로나 발생 지역으로도 유명하고 중국의 중앙에 있는 교통 요충지로서 장강(長江)이 시내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오래된 도시다. 중 고교 시절에는 장강을 양자강(楊子江)으로 배웠다. 검사 기간은 삼일이지만 이틀에 꼼꼼하게 검사를 마치고 반나절 시간을 만들어 황학루에 들렸다.


황학루는 장강 북쪽 사산(85m) 끝자락에 있는 누각이고 장강대교가 동서를 가로지르며 놓였다, 장강대교를 중심으로 강 건너 서편에 한양이 있고 장강 동편으로 앵무 주라는 작은 섬이 있다. 앵무 주는 우리나라 한강의 밤섬과 비슷하게 보였다. 황학루는 등왕각 악양루와 함께 중국의 3대 누각의 하나이다. 황학루는 단순한 누각이 아니라 중국인에게는 초월적 세계와 인간의 한계를 있는 장소로 여겨진다. 최호(崔顥, ?~754), 이백(李白), 백거이 등 많은 중국 옛 시인이 황학루와 연관된 시를 지었고 이 시들은 중국 문학의 원천으로 자리 잡았다. 황학루 3층 벽화에 이 시인들의 초상화가 있다. 황학루에 오르면 사방을 볼 수 있지만 장강을 바라보는 경치가 제일 멋지다. 중학교 한문 시간에 당나라 최호의 시를 배운 기억이 떠올랐다.


昔人已乘黃鶴去, 此地空餘黃鶴樓

黃鶴一去不複返, 白雲千載空悠悠

晴川曆曆漢陽樹, 芳草萋萋鸚鵡洲

日暮鄉關何處是, 煙波江上使人愁


옛사람은 황학을 타고 날아가고, 이곳엔 빈 황학루만 남아있다.

황학은 한번 가서 돌아오지 않지만, 흰 구름은 천년이 지나도 유유히 노닌다.

맑은 강너머 한양의 나무가 또렷하게 보이고, 앵무주 섬엔 향기로운 풀들이 무성하다.

해 저무는데 고향은 어디에 있나? 안개 피어나는 강 언덕에서 시름에 잠기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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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학루에 가기 위한 길가에 최호가 시를 짓는 모습을 부조한 작품이 있다. 그 작품 맞은편에 각 필정(擱篳亭)이라는 자그마한 정자가 있다. 최호와 동시대 사람인 대시인 이백이 황학루에 올라가서 시를 지으려다 최호의 시가 머리에 맴돌아 “이보다 더 나은 시를 쓸 수 없다” 하며 붓을 꺾고 절필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왔다. 후대 사람들이 이 이야기를 정자로 만들었다.


황학루의 겉모습은 5층 건물로서 삼국시대 오나라에서 군사적 목적의 망루로 지어졌으나 여러 차례 훼손되었고 개축하였다. 청나라 시대에 화재로 누각 대부분이 소실되었고 원래 자리에서 조금 이동하여 1984년에 승강기까지 설치하여 현대식으로 복원하였다. 내가 방문하기 전 10여 년 전에 지은 누각이라 오래된 느낌은 들지 않았다. 일 층에 들어서면 황학루의 전설을 모티브로 만든 커다란 도자벽화 작품을 볼 수 있다. 꼭대기 층에 올라서 장강을 바라보며 잠시 최호가 되어 시상에 젖어 본다. 과거에 그가 보던 경치와 생각이 오버랩되었다. 세월을 녹아 있어도 변하지 않은 자연 풍경을 보면서 삶의 무상함과 자연의 의연함을 함께 느낄 수 있었다.


여느 관광지와 같이 기념품을 파는 상점도 있다. 다른 관광지와 달리 문인화 서예 작품 등 예술품을 파는 곳이 많았다. 최호의 시를 임서 한 다양한 서예 작품을 족자로 만들어 팔고 있었다. 나는 서예를 잠깐 배운 적이 있고 서체를 구분할 수 있다. 행서인 듯 하나 처음 보는 서체로 최호의 시를 임서 한 작품이 눈에 확 띄었다. 가격을 물어보니 어제 묵은 오성급 호텔 일박 비용보다 더 비싼 가격이었다. 우리나라 돈으로 약 15만 원 정도였으나 당시 중국 물가를 생각하면 아주 비싼 가격이었다. 점원은 작가가 나온 잡지를 보여주면서 중국에서 유명한 사람이 쓴 글이라며 설명했으나 정확하게 알아들을 수는 없었다. 작가의 이름만 적어 왔고 가짜는 아니려니 하면서 구매했다. 귀국 후 한참 망설이다가 20만 원을 들여 표구하여 집에 걸어 놓았다.


며칠 전 “50세 연하와 늦둥이에 방긋하고 다른 자식과 절연한 87세 화가”라는 뉴스를 접했다. 그는 지난해 4월에 50살 연하의 쉬멍(Xu Meng ·37)과 결혼해 화제가 됐다고 한다. 그는 현존하는 중국 최고 서화가라는 수식어와 함께 그의 서예 작품이 0.11㎡당 약 20만 위안에 거래된다는 현대화가 범증(范增, 영문명 Fàn Zēng) 이었다. 황학루에서 손에 넣은 서예 작품의 관지에 포충 재주(抱冲齋主) 범증이 정묘년(1987년)에 썼다고 명시되었다. 십익범증(十翼范增)라는 타원형 두인이 비스듬히 찍혀있다. 안타깝게도 공식 감정서는 없었다. 내가 소유한 작품의 크기가 110㎝ X55㎝이니 진품이고 크기로만 계산한다면 2억이 넘는다. 갑자기 부자가 된 기분이다. KBS에서 방송하는 진품명품을 볼 때마다 나도 오래된 골동품이나 서화를 가지고 있었으면 하는 생각을 가져본 적이 있다. 이제 그럴 가능성이 생겼다.


쳇 GPT에 작품 사진을 올리고 감정을 요청해 봤다. 중국 현지의 정확한 감정이 필요하다는 의견과 함께 진품일 확률이 80% 이상 나왔다. 나는 진품인지 아닌지를 넘어서서 중국 현대 문인 서예를 대표하는 그 글씨와 내용을 보면 행복하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연히 만난 작품이 역사와 인생에 대한 깊은 사유가 담긴 한시와 내 시간을 품고 있다는 사실이다. IMF의 격랑 속에서 시작된 내 공직 생활, 황학루에서의 짧은 여정, 그리고 눈을 사로잡은 범증의 서예 작품. 그것들은 모두 내 인생의 한 페이지에서 서로 얽히며, 지금도 내 거실 벽에서 묵묵히 이야기를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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