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날
백두산 여행 (1)
나는 지금까지는 패키지여행 보다 개별여행을 좋아한다. 아마 신체적 나이 때문에 향후 어쩔 수 없이 취향이 변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여정에 묶여서 다니는 패키지여행은 영 마뜩잖다. “여행은 자유다”라는 어느 여행사의 광고 문안처럼 여행은 일상이란 쳇바퀴에서 비켜선 자유로움을 느끼는 것이다. 패키지여행 역시 쳇바퀴를 잠시 벗어나는 것이지만 자유로움과 다양한 체험 경험을 해보기에는 어딘지 부족하다. 인터넷 검색과 호텔 예약 등 사전 준비하면서 설렘으로 여행이 시작한다.
백두산 여행은 내 버킷리스트 중 하나이다. 정부 감독관으로서 항공사의 해외 공항 지점에 대한 안전 점검하는 업무를 수행하면서 비자발적인 해외여행을 많이 하였다. 업무상 출장이라는 제약으로 주로 공항 근처에서 머무는 경우가 많았다. 출장 기간이 넉넉하지 않아 업무 외에 관광할 시간은 거의 없었다. 애국가를 부르며 자라온 세대이기 때문인지 꼭 한번 백두산에 가봐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도 위에서만 바라보던 그곳은 가깝지만, 북한이라는 장벽으로 늘 멀게 느껴지는 미지의 땅이었다. “언젠가는 꼭 가보리라” 다짐했지만, 버킷리스트는 바쁜 일상으로 멀리 비켜 서 있었다.
백두산 여행은 론다 번이 쓴 책 《시크릿》(The Secret)처럼 갑자기 다가왔다. 그녀는 간절히 원하면 끌어당김의 법칙이 작용한다고 생각했다. 즉 절실히 바라면 우주의 온 기운이 끌어당겨져 원하는 대로 현실이 된다는 것이다. 업무상 장기 중국 비자도 생기고 광복절이 목요일이므로 이틀 휴가 사용으로 4박5일을 쉴 수 있는 날이 생겼다. 그간 모아온 대한항공의 마일리지를 사용하여 비행기 표도 구할 수 있었다. 내심 항상 원했던 여행이었기에 끌어당김의 법칙이 작용한 것 같았다. 중국 말을 못 해서 망설였으나 올해 출시된 삼성 AI 핸드폰의 통역 실력을 믿고 여행을 준비하였다.
백두산 가는 방법은 장춘과 연길에서 가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장춘이 육로로 백두산 가기는 가까웠으나 나는 연길에서 가기로 정했다, 연길은 중국 동북지역 지린성 연변 조선족 자치주의 주정부가 있는 도시이다. 우리나라에도 연변의 조선족이 많이 들어와서 일하고 있어 제법 익숙한 도시이다. 백두산 방문이 일차적 목표이긴 했지만, 일제 강점기 때 독립운동과 연관된 도시이기에 연길과 용정을 방문하고 싶었다.
학창 시절 전두환 반대 집회에서 부르던 선구자 노래의 배경이 용정이다. 용정도 연길과 같이 연변의 도시 중 하나이다. 이 도시들은 일제의 박해를 피해 척박한 만주 땅으로 이전한 북한 동포들의 땀으로 일군 땅이다. 연길은 중국 사람들에게도 우리나라의 문화를 접할 수 있고 백두산 천지를 구경하기 위한 중간 경유지로서 유명하다. 아마도 산 정상에 커다란 못이 있는 풍경은 중국에서도 거의 보기 힘들고 중국의 동북공정 영향도 있으리라 생각했다. 중국은 동북공정의 일환으로 백두산 중국 땅을 창바이산(長白山)으로 명명하고 유네스코(UNESCO) 세계지질공원에 등재도 하였다.
연길에서 육로로 백두산을 가기 위해 KLOOK 앱을 통하여 현지에서 출발하는 백두산 일일 관광을 예약했다. 현지에서 입장권을 구매하면 시간이 많이 소요되어 관광할 수 없는 경우가 생긴다. 중국말로 된 앱을 사용해야 입장권을 살 수 있으므로 현지 관광 업체를 이용하였다. KLOOK 앱으로 예약해도 일주일 이상은 기다려야 한다. 함께 갈 사람이 모집되지 않으면 취소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다행히 출발 전에 예약 확정 문자가 도착했다. 연길의 5성급 호텔 카이로스에서 출발하여 백두산 천지를 구경하고 출발지로 돌아오는 코스였다. 숙소는 Hotels.com 앱을 통해 연길대학 바로 앞에 있는 apple apartment를 예약했다.
연길 공항에 발을 내딛는 순간, 덥다고 느꼈으나 생각보다 맑고 신선한 공기가 코끝을 스쳤다. 공항에서 택시를 타고 미리 저장된 숙소 주소를 기사에게 보여 주었고 AI 폰을 이용하여 이야기도 해보았다. 기사가 폰 사용법에 익숙하지 않아 당황했으나 곧 자동 번역의 위력을 느꼈다. 핸드폰은 한국어로 말하면 중국어로 번역하여 기사에게 들려준다. 차장 밖에 보이는 연길은 널찍한 도로와 그리 혼잡하지 않은 교통량 때문인지 도시 전체가 조용해 보였다. 건물에 부착된 간판이 중국어와 한글이 함께 적혀있다. 영문만으로 표시된 간판이 많은 우리나라에 비해 오히려 더 정겹게 느껴졌다. 중국의 소수민족 자치주는 중국어와 소수민족의 언어를 함께 사용한 간판을 달도록 규정되었다고 기사가 알려주었다.
숙소에 간판이 없어서 찾는데 애먹었다. 숙소가 있는 건물에 조선족 아가씨가 일하는 자그마한 배달 전문 카페가 있었다. 차 한잔을 주문하고 나서 숙소 위치를 물어보니 생각했던 호텔이 아니고 원룸 형식 아파트였다. 당연히 접수대도 없었다. 열쇠를 받아야 하는데 난감했다. 조선족 아가씨가 수소문해 보더니 건물 1층 출입구 맞은편 슈퍼마켓 주인이 열쇠를 관리한다고 알려주었다. 연길에 있던 기간 내내 이 카페에서 커피를 마셨고 여행 정보도 얻었다. 숙소 주변은 젊은이들이 많이 모이는 우리나라 홍대 앞 같은 느낌이었다. 숙소는 대형 상가 건물에 있었다. 이곳은 예전에 학생들 원룸으로 쓰였고 지금은 관광객에게 빌려주는 듯 보였다. 반짝이는 간판으로 가득 찬 이 건물은 중국 젊은이들 사이에서 '작은 서울'로 유명해지며 사진 찍는 명소로 자리 잡았다. 중국의 유명 유투버로 인해 이 건물은 한궈창(韩国墙, 한국의 벽)이라고 불리며 중국 MZ 세대에게 '핫플레이스'로 떠 올랐다고 한다.
여행의 즐거움 중 하나가 현지 음식을 즐기는 것이다. 따라서 어딜 가던지 가급적 한식을 지양하고 현지 음식을 먹는다. 내가 먹고 싶은 음식은 연길식 냉면과 양꼬치였다. 나는 양꼬치를 찍어 먹는 붉은 가루를 좋아한다. 아마도 중독성이 있는지 가끔 먹고 싶은 생각이 난다. 붉은 가루는 큐민 씨를 깨 고춧가루 등 다른 향신료와 섞어서 갈아 만든 것이다. 큐민을 중국어로 쯔란이라 발음하므로 붉은 가루를 일반적으로 쯔란이라고 부른다. 양꼬치가 먹고 싶었으나 제대로 된 양꼬치 음식점이 숙소와 멀리 떨어져 있어서 다음날 먹기로 했다.
짐을 풀고 한궈창 일 층에 있는 인터넷 맛집 ‘복무청사 연길랭면’ 집을 찾아갔다. 간판에 중국글자로는 福務大樓라고 쓰여 있으나 한글로는 복무청사라고 쓰여있다. 복부대루는 음식점 이름 앞에 붙이는 길상어이며 복을 위해 힘쓰는 커다란 식당이라는 의미다. 이 식당에서는 냉면뿐 아니라 꿔바로우를 비롯한 여러 가지 음식을 같이 판다. 한국말을 하는 직원에게 냉면만 한 그릇을 시켰다. 역시 생각한 것과는 조금 다른 모양과 맛이었다. 면의 색은 칡냉면과 같았고 메밀 맛은 생각보다 많이 나지 않았다. 그러나 육수는 동치미 국물을 기본으로 약간 달착지근했으나 매력 있는 육수였다. 고명이 우리나라 냉면과 달리 많이 올려져 있었다. 소고기 편육, 달걀, 완자, 배 한 조각, 오이채, 양배추, 김치 등이 푸짐하게 커다란 국자와 함께 들어있다. 혼자 먹기에 양이 너무 많았다. 반찬은 무생채 하나뿐이었지만 고명만으로도 충분하였다.
해 질 녘이 되니 건물 외벽에 다닥다닥 붙어있는 각종 간판에 제 자랑하듯이 하나둘씩 어둠을 밝혔다. 건너편 연길대학 정문 근처에는 이 간판이 만드는 야경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로 가득 찼다. 인도에 전을 편 노점상들이 사람들과 어우러져 혼잡한 야시장이 생겼다. 노점에서는 열쇠고리 부채 한복 입은 인형 등 조선족 문화를 표시한 각종 선물용 액세서리를 팔고 있었다. 우표책에 넣은 북한 돈을 파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한류로 유명해진 우리나라에 가지 못하는 중국인들이 한국의 문화를 느낄 수 있는 곳이기에 중국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곳임을 알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