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산여행

셋째날

by 김정호김감독

오늘 하루는 독립운동가의 고뇌를 그린 노래 '선구자' 가사에 나오는 장소를 가보기로 했다. 일송정 해란강 용두레 우물가 용문교 용주사 비암산 등 모든 장소는 용정시에 있다. 용정은 연길에서 남남서 방향으로 약 15㎞ 떨어진 도시이다. 일송정과 푸른 솔은 용정시 서남쪽으로 약 3㎞ 떨어진 '비암산 풍경구' 안에 있다. 중국의 악기인 비파를 닮은 바위산이라는 비암산이라고 부른다. 아침 일찍 서둘러서 길가에서 손을 흔들어 택시를 잡았다. 가는 장소를 사진으로 보여 주었다. 고개를 끄덕이곤 출발하였다. 택시 기사가 어느 정도 가다가 다른 택시로 갈아타라고 하였다. 갈아타야 하는 사유는 잘 모르겠으나 택시 운행 구간이 정해진 것 같았다. 기사들이 서로 아는 사이인지 요금은 나중에 탄 택시 기사에게만 냈다.

비암산 입구에 도착하니 생각한 것과 달리 관광지였다. 풍경구 등급 중 두 번째인 4A급 풍경구였다. 백두산이나 장가계 같은 곳이 최고 등급인 5A급 풍경구다. 매표소에는 중국 사람과 러시아 관광객들이 섞여 혼잡하였다. 러시아가 연변 동쪽에 맞대어 있기 자동차로도 올 수 있기 때문이리라 생각해 본다. 이른 시간임에도 한 무리 한국 사람들이 일송정(一松亭)에 다녀오는 길이라며 어떻게 혼자 다니냐며 신기하다(?)는 눈빛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지나쳤다. 일송정은 백두산 패키지 관광코스에 포함된 곳이다. 풍경구 내를 운행하는 셔틀버스로 일송정에 들러서 인증사진을 찍고 용두레 우물로 간다고 했다.

비암산 풍경구 입구에서 일송정 표지석까지 걸어서 약 1시간 이상은 족히 걸린다. 셔틀버스로는 10분 정도 걸린다. 셔틀버스를 타려면 입장료와 별도로 표를 사야 한다. 셔틀버스 정류장은 여러 군데에 있었고 어느 곳에서나 내리고 탈 수 있었다. 셔틀버스 종점에서 일송정 표지석 뒤로 약 5분 정도 걸어가면 일송정 현판이 걸린 아담한 정자가 하나 있었다. 정자에서 시내를 바라보는 방향에 그리 오래되어 보이지 않는 한 그루 소나무가 팔을 벌리고 서 있었다. 일송정 푸른 솔이다. 그 소나무는 원래 선구자 노래가 지어진 시대의 소나무가 아니고 몇 해 전 새로 심었다고 한다. 한여름인데도 솔잎이 싱싱해 보이지 않았다. 잘 크도록 마음속으로 빌어봤다. 셔틀버스 종점에서 풍경구 내 정상까지는 걸어서 이동해야 한다. 아스팔트 길보다는 일부러 숲속에 조성된 길을 따라 올라갔다.

비암산은 해발 495m에서 시작하여 실제 고도 186m 정도 되는 그리 높지 않은 산이다. 비암산 정상에 있는 일송정에서는 해란강 벌판과 용정 시내가 한눈에 들어왔다. 그러나 비암산 풍경구 내에서 가장 높은 곳은 벼랑 그네가 설치된 곳이다. 폭이 좁은 해란강이 구불구불 벌판을 가로지르고 옛 선조들이 만든 철길과 나지막한 집들이 조화를 이루는 여느 시골 도시 풍경이었다. 비암산 풍경구에는 유리 허궁다리, 유리 널판 결단 허궁다리, 벼랑 그네, 하늘의 거울 등 놀이 기구와 탈 것들이 여러 개가 있었다. 허궁다리에 도착하니 많은 사람들이 다리에 갔다 오기 위해 표를 사고 있었다. 건너서 다른 곳으로 가는 용도가 아니므로 유리 전망대라 부르는 것이 옳다고 보인다. 가격이 비싸서 잠시 망설이다가 입장료 100위안을 내고 표를 샀다. 역시 실망했으나 바닥이 투명한 위에서 발아래에 숲을 보는 맛이 나름 괜찮았다. 멀리 용정시를 바라보는 경치는 일송정에서 바라보는 각도와 달라 용정 시내가 더 많이 보였다.

유리 다리에서 조금 더 올라가니 풍경구 정상에 도달하였다. 정상에는 벼랑 그네가 설치되었다. 일종의 놀이 기구이다. 별도의 입장료를 내야하고 무서울 것 같아 풍경만 눈에 담았다. 멀리 흔들다리도 보였으나 가보지는 않고 산책길을 따라 내려왔다. 내려오던 중 쉼터에서 나와 비슷한 연배의 용정에 사는 조선족을 만났다. 손주 둘과 며느리와 함께 산책을 왔단다. 며느리가 찐 옥수수 하나를 먹어보라고 줬다. 연변 척박한 땅에 심은 찰옥수수였다. 옥수수의 향이 진하게 풍겨 나오는 순수한 맛이었다. 펄 벅의 붉은 옥수수라는 소설 제목이 스치듯 지나갔다. 학창 시절에 읽어 보았는데 줄거리가 생각나지 않았다. 그는 며느리와 함께 산다고 했다. 아직도 전통 가족제도가 남아있음을 알 수 있었다. 1980년대 우리네 삶을 살아가고 있는 듯 보였다. 어머니와 함께 3대가 살던 시절이 주마등같이 지나갔다. 때마침 가방 속에 사탕과 과자가 있어서 아이들에게 건네니 너무 좋아한다. 그는 3대째 용정에 산다며 김정은 정권을 우리보다 더 싫어했다. 연변은 척박하고 경제적 기반 시설도 별로 없어서 1970년대까지는 북한에서 돈을 벌어 살았고 요즈음은 한국에서 돈을 벌어 산다며 그래도 한국이 잘 살아서 다행이라고 했다. 다만 연변의 물가가 오르고 조선족 인구가 줄어서 걱정이라면서 선조들이 연변에 정착하며 살아온 것을 나름대로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는 선구자 노래를 친일파가 만들어서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들의 조상은 친일파를 피해서 이곳까지 왔으니 그럴 만도 했다. 그러나 일송정이 한국 관광객 유치하니 경제적으로 좋다며 아이러니한 웃음을 지웠다.

비암산 중턱 넓은 들판에 백일홍 라벤더를 많이 심어 놓았다. 인공적으로 아름다운 공원을 만들어 놓았다. 중국인들은 이곳을 꽃바다라고 부른다. 칠색 미끄럼틀이 있었으나 흥미가 없어 구경만 했다. 꽃으로 꾸민 여러 가지 형상들이 꽃바다와 어울려 멋진 그림을 만들었다. 꽃으로 만든 커다란 두 마리 꿩이 인상적이었다.

비암산을 내려와 윤동주가 다녔다는 용정중학교와 용두레 우물가를 가보기로 정하였다. 안타깝게도 윤동주 전시관이 있는 용정중학교는 들어갈 수 없었다. 예전에는 관광객에게 공개했으나 지금은 안전 문제로 공개하지 않는다고 한다. 안전보다는 정치적인 문제로 보인다. 점심을 먹기 위해 들린 식당 여주인이 윤동주를 중국인으로 보려는 견해와 한국 문학가로 보는 견해의 차이가 있어 그렇다고 설명했다. 그럴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학교 정문 앞에 잠시 서 있다가 용두레 우물로 걸어갔다. 용두레 우물은 용정중학교에서 걸어서 20분 정도 걸린다. 용두레 우물로 가는 길가에는 이발소가 20여 개가 모여 있고 마작 업소도 많았다. 주로 남자 노인들이 마작하고 있었는데 여자들도 많이 보였다. 놀음을 좋아하는 중국 문화의 단면을 보았다. 이방인인 내게는 충분히 인상적으로 보였다.

용두레는 용정시의 어원이 되었다고 한다. 용두레 우물은 한창 복원작업 중이었다. 용두레 우물을 중심으로 작은 공원이 있는데 들어갈 수 없도록 담을 쳐 놓았다. 담 사이로 우물을 보고 사진 한 장으로 만족하였다. 돌아오는 길은 시간도 있고 해서 용두레 우물가에서 연길로 오가는 시내버스를 타고 왔다. 택시비는 약 50위안 정도 하였는데 버스비는 6위안이었다. 횡재한 기분으로 연길로 돌아와 오늘 하루 걷느라고 고생한 발에 마사지로 고마움을 표했다.

뜨거운 날씨는 냉커피 한잔을 생각나게 했다. 기억 커피라는 간판이 인상적이라서 들어가니 젊은이들로 가득 차 있었다. 벽에 적힌 글귀가 생각난다. 그대 생각하는 커피/그대 생각나는 커피/기억해 줘요/우리의 모든 만남을/

어느새 저녁이었다. 숙소에서 약 10분 정도 걸어가니 미리 검색해 둔 HEBA(河坝) 양꼬치 음식점이 있었다. 河坝가 우리말로 강뚝인 모양이다. 연길에서 시작한 프랜차이즈 음식점으로 중국 내 다른 곳에서는 강뚝 양꼬치로 알려져 있고 우리나라에도 들어와 있다. 유명 음식점답게 대기 순서를 받아야 한다. 다행히 한복 입은 조선족 아가씨가 순서를 정해주었다. 혼자 한국에서 온 것을 금방 눈치채고 순서를 앞당겨주고 자리로 잡아 주었다. 본인도 바쁠 텐데 일부러 자리에 찾아와서 많은 종류의 양꼬치 중에서 한국인 입맛에 맞는 양꼬치를 골라 주고 한국말 하는 사람이 접대하도록 해 주었다. 팁을 주려니 한사코 말려서 그러지도 못하였다. 고맙다는 인사만 하고 한국에 오면 톡 하라고 명함을 한 장 건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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