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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푼푼 Jul 10. 2023

가장 위대한 발라드적 전회

유재하 - 「사랑하기 때문에」

단연코 한국 대중음악사에서 제일 압도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곡.

당돌한 실내악적 전개와 그것을 마침내 증명해낸 사내, 유재하.

역사에 만약은 없다지만 그가 지금까지 살아있었다면 어떤 곡들을 만들어냈을지.


그의 첫번째이자 마지막 앨범인 [사랑하기 때문에]는 지금 들어봐도 세련된 전개와 멜로디, 아름답고 시적인 가사로 그 양태를 두른채 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생명력을 충만히 가지고 있다.  


그러나 [사랑하기 때문에]는 절대적인 그것의 성격 뿐만이 아닌, 음악사적으로 보았을때의 '불멸성'을 간직하기도 한다.


필자는 이 글을 통해 [사랑하기 때문에]의 '불멸성'에 대해 고찰과 분석을 진행하려 한다.

 


길거리를 걸어가는 이에게 "한국대중음악의 시작이 어느 장르인가요?" 라고 말한다면 대부분 트로트를 답으로 말할 것이 자명하다.  


트로트(Trot)는 일제강점기와 갑오개혁, 근대화의 산물로서 국악을 비롯한 한국전통음악과 서양의 블루스, 재즈 계통의 음악적 무드, 또 당시 일본의 근대 대중가요인 엔카에 상호적 영향을 주고 받으며 성장한 장르로 대강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이것이 태동하던 시기인 50년대 이전엔 '트로트'라고 하지 않고 '유행가'로 불렀다는 말 또한 있다. 즉 '트로트'란 단어는 생각보다 오래되지 않았으며, 고급 예술 취급을 받았다는 후문 또한 존재한다.


이후 트로트는 일제강점기의 종말을 거쳐 대중에게 그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 특히 5~60년대는 트로트의 최전성기로서, 한국전쟁이후 피폐해진 사람들의 마음을 돌보고 치유하며 삶에 깊게 들어오게 된다. 남진과 나훈아와 같은 기라성 같은 가수도 등장하며 트로트는 한대수와 김민기로 대표되는 포크, 신중현이 이끌었던 록의 태동 전까지 대중음악계를 지배하게 된다.


그러나 수 년을 트로트가 지배하며 음악계는 트로트에 완전히 절여졌고, 대중화로 인한 질적 하락과 지나친 신파적 분위기가 동시적으로 타 장르에까지 범람하게 된다.


이러한 통속적이고 지극한 '뽕삘'에 작별을 고하고, 클래시컬한 사운드와 팝적 요소를 가미하며 현재까지 내려오는 발라드의 노선을 닦아놓은 것이 바로 유재하의 [사랑하기 때문에]이며, 이것이 바로 필자가 이 글의 제목을 '가장 위대한 발라드적 전회'라고 붙인 까닭이다.


칸트는 자신의 철학을 '코페르니쿠스적 전회'라고 지칭했다. 기존의 형이상학적 흐름을 완전히 뒤엎은 인식론적 철학을 전개함으로서 연구의 방향성을 재정립했고, 이것을 천동설을 지동설로 전환시킨 코페르니쿠스의 업적에 비유하면서 그러한 용어를 사용하게 된 것이었다.


유재하 또한 마찬가지다. 당시 발라드에 만연했던 신파적 뽕끼를 채택하던 가수들과 달리(조용필의 초기앨범등.) 그것을 철저히 축출하며, 현악기와 같은 클래식적 요소들을 접목시켜 세련된 '발라드적 전회'를 이뤄냄과 동시에 후세대 음악인들(신승훈, 김동률, 김형석 등)의 길까지 제시하게 되었다.


이것의 원동력은 한양대학교 음악대학 작곡과에서 클래식을 전공했던 그의 경험에서 비롯되었다. 그는 클래식을 공부하던 와중에도 대중음악을 열렬히 흠모했고, 그것의 결과가 바로 [사랑하기 때문에]이다. 당시 클래식 전공자들 사이에서 대중음악을 하는 것은 일종의 금기와도 같았음에도 불구하고, 보컬부터 오케스트라까지 거의 모든 일을 단독으로 진행하여 앨범을 완성했다는 사실은 신화로 기록되었고 마침내 그는 죽음으로 전설이 되었다.


유재하의 모습.

[사랑하기 때문에]는 일종의 컨셉앨범에 가깝다. 사망 20주기를 맞아 진행되었던 한 방송 인터뷰에서 그의 지인이 말하길, 1집 앨범 가사 속 주인공은 당시 유재하의 여자친구라고 한다.


즉 [사랑하기 때문에]는 유재하의 자전적인 이야기임과 동시에 순수하고 때묻지 않은 순애보적인, 어쩌면 매우 고전적일 수도 있는 '사랑'을 섬세한 감성으로 손수 써내려간 하나의 편지이다.


그 중에서도 타이틀 트랙인 <사랑하기 때문에>는 한국 발라드의 창세기에 해당하는 부분이며, 여러 악기들이 한데 이루어져 한 여인을 향한 일편단심의 마음을 하늘하늘한 멜로디와 맑고 깨끗한 음색으로 하여금 순수하며 동화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사실 <사랑하기 때문에>는 유재하만 부른 곡이 아니었다. 그는 1985년 [위대한 탄생]의 세션으로 있었고, 그때 <사랑하기 때문에>를 조용필의 7집에 미리 수록한다. 물론 유재하는 곡만 넘겨주었고 편곡은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의 멤버들이 진행했다.


그러나 유재하가 부른 버전과는 다르게 조용필의 것은 C major에 미디엄 템포일 뿐더러 락적인 사운드가 두드러졌고, 조용필이 발라드 트롯에서 변화를 꾀하던 과도기적 상황이었기에 '뽕삘'이 곡에 묻어나며 그가 원하던 방향의 편곡은 이루어지지 못했다고 할 수 있다. 아마 여기서 생겨났던 음악적 아쉬움을 이후 자신의 앨범에 오롯이 투사한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가사-


처음 느낀 그대 눈빛은
혼자만의 오해였던가요
해맑은 미소로 나를
바보로 만들었소

내 곁을 떠나가던 날
가슴에 품었던 분홍빛의
수많은 추억들이
푸르게 바래졌소

어제는 떠난 그대를
잊지 못하는 내가 미웠죠
하지만 이제 깨달아요
그대만의 나였음을

다시 돌아온 그댈 위해
내 모든 것 드릴 테요
우리 이대로 영원히
헤어지지 않으리

나 오직 그대만을
사랑하기 때문에

커다란 그대를 향해
작아져만 가는 나이기에
그 무슨 뜻이라 해도
조용히 따르리오

어제는 지난 추억을
잊지 못하는 내가 미웠죠
하지만 이제 깨달아요
그대만의 나였음을

다시 돌아온 그댈 위해
내 모든 것 드릴 테요
우리 이대로 영원히
헤어지지 않으리

나 오직 그대만을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하기 때문에>에선 연인이 자신을 떠났을 때의 슬픔, 내게로 돌아왔을때의 순수한 기쁨을 노래하고 있다. <내 마음에 비친 내 모습>이나 <가리워진 길>의 비유와는 달리, 단어와 단어간의 본질적인 의미에 충실한 매우 직관적인 가사이다.


<내 마음에 비친 내 모습>에서의 화자는 혼란과 공허에 묶여있는 자신을 애써 부인하려 한다. '쳇바퀴 돌듯 끝이 없는 방황'에 이상과 유리된 현실을 살아가며 기만적인 상황에 놓여있는 자신을 끊임없이 여러 요소와 동일시하며 악상을 전개해나간다. 그럼에도 그는 바로 '귀 기울여 듣지 않고, 달리 보면 그만'이라는 단순하면서도 가장 본질적인 해답을 내놓는다.


<가리워진 길>에서도 기본적인 골자는 그대로지만, 대응방식에서의 차이마저 없는 것은 아니다. 먼저 그는 '안개'와 '무지개'처럼 형상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것에 자신이 걷고 있는 길을 투영하지만 <내 마음에 비친 내 모습>에서 처럼 그 해답을 자신에게서 찾지는 못한다. 그에게 필요한 것은 자아의 각성이 아니다. 내가 사랑하고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이에게 기대어 힘을 받고, 가리워진 길을 치워주길 원한다. 어떠한 직유, 비유, 활유도 그에겐 의미가 없다. 순전한 연인의 사랑과 그것의 존재뿐.


<사랑하기 때문에>에선 이러한 '사랑의 대상'이 제일 직관적으로 나타난다. 선술한 두 곡은 유재하가 연인과 헤어졌던 시기에 썼던 가사로, 복잡하고 나약해진 자신을 여러 갈래로 표현하지만 결국 그의 종착점인 '사랑'은 직관적이고 보편적으로 신화화된다.


그러나 <사랑하기 때문에>는 헤어졌던 연인을 다시 만나고 썼던 가사로, 헤어졌던 그를 다시 놓치지 않고 자신의 전체로서 사랑하겠다는 다짐을 동화적인 언어로 표현한다. 물론 그는 그 다짐을 지키지 못하고 영원히 떠나게 되지만..


마치 시골청년의 투박한 고백과도 같은 순진한 마음이 용해된 <사랑하기 때문에>는 8090년도의 노래들에서 흔히 발견할 수 있는 그 특유의 신디사이저성 사운드(뿅뿅거리는 그 촌스러운 사운드 말이다..)를 찾아볼 수 없다. 순전히 클라리넷, 바이올린, 피아노, 일렉사운드 정도로만 이루어진 클래시컬하고 실내악적인 무드가 노래를 완전히 지배한다.


또한 형식도 굉장히 파격적이다. 소위 말하는 '브릿지'를 발라드에 도입시켰고 가수의 목소리가 치고나가면 음악의 공백을 채우기 위한 목적의 반주가 기존의 의미였다면 <사랑하기 때문에>는 매우 느린 템포(4/4박자)의 바이올린 선율로 시작을 하고, 클라리넷이 주요 테마를 연주한 다음 유재하의 목소리와 함께 플루트가 그 구성들을 한데 모아 '함께' 나아간다. 이것이 1절이며, 현악기를 이용한 편곡으로만 이루어져 있는 것이 제일 큰 특징이다.


기타솔로이후, 드럼과 베이스가 동시에 레파토리에 추가되면서 그것이 연주하는 메인 비트와 유재하의 보이스가 마치 밀당을 하듯 전개되며 목가적인 분위기를 형성한다. 이후엔 이 곡에서 제일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클라리넷이 황홀한 화음을 이루며 산뜻하고 나른한 분위기를 연출함과 동시에 1절과 같은 클래식+대중가요적 요소를 결합한 형식을 유지한 채로 드럼과 베이스의 비중이 커짐으로 하여금 리듬을 정리하면서 곡은 마무리 된다.


-불멸성에 관해-


노래는 늙지 않는다. 그의 다짐은 비록 완전히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오롯이 그녀에게 향했을 그 마음은 우리에게 분산되어 아직까지 전해지고 있다. 생각해보건대 그 생명력과 불멸성은 클래식에 기반한 '음악적 함의'와 애틋한 '시적 가사', 그리고 '도전성'에 있다.


클래식은 '고전'이라는 사전적 정의에 부합하듯 그 수명을 길게 가져가고 있으며, 검증된 감정의 이동수단이다. 가사 역시 큰 영향을 끼친다. 지나간 일을 생각하지 말라는 사회에서 가장 필요한 마음가짐을 노래하기도 하고, 때로는 사랑하는 이에게 몸과 마음을 전부 기대기도 하며 솔직한 감정을 고백하기도 한다. 그의 도전적인 정신 역시 높게 평가받으며 많은 이들에게 레퍼런스가 되고 있다. 파격적인 클래식과 대중가요의 조화, 어느 한 쪽을 희생시키거나 훼손시키지도 않는 물과 불의 합일은 그의 천재성을 짐작하기에도 충분하다.



사실 유재하라는 개인에 대한 지극히 사적인 관심이 커진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단순히 그렇게나 찬양받는 이의 노래가 궁금했고, 가사가 궁금했고, 그러한 이유가 궁금했다. 물론 이 물음표들은 전부 느낌표로 바뀌었지만.


아직도 나는 내 가치관이 흔들릴때나 과거에 미련이 남을때 <지난 날>이나 <내 마음에 비친 내 모습>을 들으며 그 가사를 곱씹는다. 25년을 살았던 이의 통찰력과 철학은 실로 대단하다. 구두로만 그것을 들었다면 당연한 소리라면서 넘겨버렸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몇십년을 넘어 나에게 간신히 당도한 편지이자 하나의 철저한 파토스적 사색에서 우러난 역작은 비로소 불멸의 존재가 되었고, 내게 남은 선택지는 그 불멸을 찬미하고 맛보는 것 밖에 없음을 깨닫기까진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유재하는 생전 딱 한번, <내 마음에 비친 내 모습>을 방송에서 라이브로 부른 적이 있다. 그 방송에서 그는 아주 당돌하게 무대위 계단에 앉아서 노래를 불렀다. 그 모습을 처음 봤을때가 잊혀지지 않는다. 매사에 당당하고 자신만의 사상이 확고했던 그의 내면을 낭만적으로 보여준 사례가 아닐까. 그의 시대에 살았던 적은 없다. 그렇지만 이러한 생각을 하게 한다는 것 자체가 그는 여전히 숨쉬고 있다는 증거로 작동할 것이다.

   



...

이 글을 고(故) 유재하에게 바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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