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응이가 또 끙끙대며 자리에 주저앉는다. 이 녀석 전에는 산으로 산책 나오면 신바람이 나서 목줄이 팽팽해지도록 뛰어다니더니 지금은 틈만 나면 다리를 늘어뜨리고 몸을 웅크린다. 좋아하는 간식으로 달래고 즐겨 듣는다는 음악을 틀어주며 길을 재촉해 봐도 얼마 가지 못해 멈춰 서서 불안한 눈으로 산 아래쪽을 응시한다. 어지간히도 담희 누나가 걱정되는 모양이다. 아니, 이렇게 안절부절못할 거면 나랑 산책을 나오질 말든가. 누나 옆에 딱 붙어서 나가지 않겠다고 버텼어야지, 왜 따라나선 거야.
누나도 마찬가지다. 그렇게 구응이 산책을 못 시켜서 걱정이 되면 본인이 직접 데리고 나갈 것이지 왜 나한테 맡기는지 모르겠다. 집에 틀어박힌 지 얼추 열흘은 다 되어 가는 것 같은데 인제 그만 나올 때도 되지 않았나. 나도 한때는 집에 콕 박혀 천장만 바라보던 시기가 있었던 터라 심정은 충분히 이해가 가나 우려가 되지 않는 건 아니다. 가족과 함께 살고 있어 끼니를 거른다든가, 돌봐주는 이 없이 혼자 앓는다든가, 하는 문제는 없어 그나마 다행이긴 하지만, 마음의 상처까지 치유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그저 빠른 시일 내에 누나의 마음이 무뎌지고 무덤덤해지기를 바랄 수밖에 없겠지.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누나네 부모님도 이상하다. 딸이 집에서 한 발짝도 나가지 않고 두문불출하고 있는데 보채고 얼러서라도 밖으로 내보내야 하지 않나. 오늘 구응이를 산책시키려고 집에 방문했을 때도 누나 부모님은 별다른 동요 없이 나를 대하고 외출 나갈 준비를 했다. 나한테 좋지 않은 모습을 보이지 않기 위해 일부러 연기를 하나 싶을 정도로 두 분 다 차분하고 의연했다.
도저히 산책할 상태가 아닌 구응이를 품에 안았다. 녀석, 뭐가 불안한지 다리를 버둥거리고 내 목과 어깨에 얼굴을 비빈다. 내가 목과 등을 쓰다듬으며 괜찮다고 다독이지만 발길질과 도리질을 멈추지 않는다. 다음부터는 이동장을 들고 다녀야겠다. 구응이가 무겁지는 않은데 자꾸 몸을 비틀며 낑낑대니 자세도 불편하고 시야가 가려 앞이 잘 보이지 않는다. 덥지 않은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얼굴에 열이 오르고 팔이 저려온다. 그래도 시간이 갈수록 몸부림치는 강도가 약해져 무사히 모하사에 도착했다.
절 안으로 들어서자 순감이와 유공이가 나를 반겼다. 헌구는 아직 학교에서 오지 않은 모양이다. 유공이는 왜 이리 늦었냐고 나무랐다.
“구응이가 영 힘이 없네. 누나도 아직 그래요?”
순감이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이고 구응이를 내려놓았다. 상만이 형은 어디 갔나, 보이지 않는다. 구응이는 몇 발짝 걸어 다니며 킁킁거리다 슬며시 다리에 힘을 풀고 몸을 웅크렸다.
“아니 저번엔 담희 누나 없어도 잘 놀더만. 어디 몸이 안 좋나? 구응아, 여기 기억 안 나? 너 얼마 전에 여기 와서 엄청 재밌게 놀았잖아. 다른 애들이랑 장난도 치고 밥도 먹고 풀도 뜯어 먹고 그랬잖아. 오늘도 그 무서운 중 없어. 더 신나게 깽판 치며 놀아도 된다구.”
유공이가 쓰다듬고 달래는데도 구응이는 반응이 없다. 괜히 데리고 나왔나, 후회가 든다. 개의 건강을 위해 산책은 필수라지만 상태가 이런데 억지로 끌고 나온 건 오히려 구응이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지 않나 싶다. 주인 목소리라도 들으면 나아질까 싶어 누나한테 전화를 걸려는 순간, 절 모퉁이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와 함께 고양이가 나타났다. ‘황묘 스님’이다. 노란색 줄무늬를 하고 있어 상만이 형이 지어준 법명이다. 형이 우리 옆 동네에 볼일 보러 갔다가 만난 고양이로, 먹을 걸 주거나 친근하게 굴지도 않았는데, 하루 종일 졸졸 따라다니더니 절까지 쫓아왔다고 한다. 형은 이것도 다 인연이라며 동물병원에 데리고 가서 건강검진과 예방접종도 해주고 잠자리나 화장실도 마련해주며 정성을 쏟고 있다.
황묘 스님 뒤를 따라 새끼 고라니가 깡충깡충 뛰면서 모습을 드러냈다. 아직 어린 티를 벗지 않아 사슴처럼 등에 점박이 무늬가 있다. 어려서 그런지 울음도 군대에서 경계를 서며 들었던 끔찍한 괴성이 아니라 병아리 우는 소리 같다. 이 녀석은 황묘 스님이 데리고 왔다. 산 위에 혼자 놀러 갔다가 아직 제대로 뛰지도 못하는 새끼를 달고 절에 내려왔다고 한다. 어미와 떨어진 새끼를 데려온 걸지도 몰라 형이 몇 번이나 녀석을 데리고 산속 깊은 곳까지 돌아다녔지만, 어미를 찾지 못했다. 같은 종이 아닌 동물들끼리 서로 챙기고 의지하는 모습에 형은 인연의 신묘함을 깨달으며 고라니까지 거두기로 했다. ‘라니’라는 법명을 지어주고 나름 고급 분유까지 공수해 먹이고 있는 중이다.
구응이는 두 동물 스님을 발견하고 잠시 꼬리를 흔들었다가 이내 앞다리에 머리를 파묻었다. 황묘가 다가와 앞발로 툭툭 치고 라니가 머리를 들이대도 꿈쩍도 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