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랖과 집착 (2)

by 아비드야

“이놈의 똥차, 또 퍼지고 지랄이야.”

상만이 형이 투덜거리며 액셀을 밟았다 뗐다 한다. 다리에 진입할 때부터 차가 제대로 나가지 못하고 힘겨워하더니 이제는 제자리에서 털털거린다.

“니들 일단 내려 봐.”

형이 보닛을 열고 차 내부를 살핀다. 차가 하도 자주 탈이 나다 보니 어지간한 고장은 스스로 고칠 만큼 자동차 정비 전문가가 되었다. 문제가 생길 때마다 이번에는 폐차장으로 간다고 큰소리치다가도 어느새 큰 몸을 차 밑에 욱여넣고 끙끙대고 있다. 아무래도 산허 스님의 손때가 묻은 놈이다 보니 매정하게 버리질 못하나 보다.

“아무래도 렉카 불러야겠다. 여기선 고칠 수도 없고 고치려면 한나절은 걸릴 거야. 하필 지금 퍼져 가지고. 피곤해 죽겠구만.”

형은 차를 발로 차는 시늉을 하다가 휴대폰을 꺼냈다. 나는 시간이 좀 걸릴 거라는 통화 내용을 듣고서 다리 난간에 서 있는 담희 누나에게로 갔다. 누나는 빨랫줄에 걸린 이불처럼 난간에 기대 아래를 보고 있다. 자칫 잘못하면 떨어질 것 같아 얼른 어깨를 붙잡고 몸을 일으켜 세웠다. 뭔가 눈에 띌 만한 것이라도 있나 싶어 아래를 봤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청승 그만 떨어. 그런다고 죽은 사람이 알아주기라도 할 거 같아?”

아니, 이 인간은 말을 해도 저런 식으로……. 하여간 눈치란 게 눈곱만큼도 없다.

“빡빡아, 너 부적 같은 것도 쓰니?”

다행히 누나는 형의 자극적인 말에 무반응이다. 그런데 갑자기 부적은 왜?

“무슨 부적?”

“액운이나 재앙을 없애거나 피해 가게 해 주는 부적.”

“내가 무슨 주술사야? 그런 걸 왜 써? 그리고 그딴 거 다 소용없어. 백 살 먹은 노인네 주름만큼이나 복잡하게 얽힌 세상사가 고작 부적 따위로 해결된다고? 어림 반 푼어치도 없는 소리지.”

누나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더니 다시 난간 아래로 시선을 돌렸다.

“허구한 날 들고 다니는 카드는 얻다 두고 왔냐? 그거 뽑아서 알려달라고 해. 어떻게 하면 행운이 가득한 인간이 되는지.”

“나 이제 타로점 안 봐. 적성에도 안 맞고, 자꾸 안 좋은 일만 생기는 것 같아서.”

혹시나 했는데 정말 관두었구나. 사람들로부터 갖은 핀잔과 구박을 받으면서도 굴하지 않고 노력과 정성을 들였는데. 그 사건으로 누나가 얼마나 큰 충격을 받았는지 새삼 느껴진다.

“어째서 내 주위에선 자꾸 이런 일이 생기는 거지? 왜 하필 나일까?”

내가 여태까지 알고 있던 구담희가 아니다. 언제나 밝고 긍정적인 에너지를 발산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나 같은 형편없는 인간이나 품고 다니는 망상을 하고 있다.

“무지해서 그래.”

그나저나 이 중놈은 사람의 인내심을 시험하려는지, 계속 시비를 건다. 더는 두고 볼 수 없어 발을 밟으며 그만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하지만 알아듣지 못한 듯, 땡추는 묵직한 턱으로 내 정수리를 찍어 누르며 인상을 썼다.

“무지해서 그렇다고……. 하긴, 내가 똑똑한 편은 아니지.”

역시 평소의 누나가 아니다. 형의 말을 고분고분 수긍한다.

“내 말은 네가 지식이 부족하다는 게 아니라, 세상은 무상하고 괴로움으로 가득 차 있는데, 그걸 깨닫지 못하고 있으니 무지하다는 거야.”

“무상, 괴로움?”

“세상 모든 것들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서로의 원인과 조건이 되면서 끊임없이 생성되고 변화하고 소멸하고 있다고. 즉, 모든 존재와 현상은 일시적이고 우연적이며 불확실하고 불안정하니 무상하다는 거야. 그런데 있는 그대로 세상을 보지 못하고 탐욕을 부리고 집착하니까 괴로움이 생길 수밖에 없는 거지.”

생뚱맞게 이 이야기는 왜 꺼내는 거야. 지금 여기서 불교 강의할 일 있나. 나는 상황에도 안 맞는 이상한 설교 따위 늘어놓지 말라고 형을 타박했다.

“으이구, 이 멍청아. 너는 산허 스님한테 귀가 닳도록 들었으면서 그런 소리가 나오냐? 그러니까 네가 지금 요 모양 요 꼴로 빌빌거리는 거 아냐. 쓸데없는 짓거리나 하고 다니고.”

“너, 웅남이한테 너무 심한 거 아냐? 아무리 친한 동생이라지만 해도 될 말이 있고 해서는 안 될 말이 있지.”

누나가 갑자기 눈빛과 목소리를 바꾸며 형에게 반박한다.

“이놈이 말귀를 못 알아들으니까 그렇지. 너는 인마, 내가 시키는 대로만 했어도 이렇게까지 안 됐어.”

“웅남이가 뭐 어때서? 일이 잘 안 풀려서 그렇지 남한테 피해 안 주고 착실하게 살고 있잖아.”

딱히 의도한 바는 아니나 대화의 주제가 나에게로 넘어왔다. 누나도 순순히 받아들이던 상태에서 벗어나 날을 세웠다. 차라리 저 모습이 낫다. 나야 뭐, 형한테 이런 소리 듣는 게 한두 번도 아니고, 이 정도면 약과지.

“이도 아니고 저도 아니고, 흐리멍텅, 밍숭맹숭 사는 게 제대로 사는 거라고?”

“그게 바로 네가 말하는 무상을 깨달아 집착을 버린 삶 아냐? 웅남이야말로 네 말을 그대로 실천하며 살고 있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거야. 이놈이 그걸 어떻게 깨달아. 무상이고 나발이고 지 꼴리는 대로 빈둥빈둥 시간만 때우고 있는데.”

“억지 부리지 마. 너야말로 자의적인 편견에 집착해 웅남이를 있는 그대로 보고 있질 못하잖아.”

“이 여자가 지금 뭐라는 거야. 집착……? 내가 집착을 한다고? 무슨 귀신 개부랄 터뜨리는 소리를 하고 있어? 그리고 네가 이놈에 대해서 얼마나 알아? 내가 얘랑 부대낀 시간이 억겁이야. 꼬꼬마일 적부터, 거시기에 털 나기 전부터 말 트고 지냈다고. 너랑은 비교가 안 돼. 그것도 모르면서 어디서 함부로 이래라 저래라야.”

말다툼이 점점 과격해진다. 아무래도 여기서 말려야겠다. 그나저나 이 형도 오늘 참 이상하다. 괜히 시비조로 비꼬는 것도 그렇고, 이렇게까지 화를 내는 것도 그렇고. 설마 일부러 이런 행동을 하는 건가? 누나더러 자괴감에 빠져 허우적댈 바에야 차라리 분노라도 쏟아내 속에 있는 응어리를 토해내라고?

“남의 일에 끼어들지 말고 너나 잘해. 자기 앞가림도 똑바로 못하면서 오지랖이나 부리고 있어. 야밤에 혼자 산을 타질 않나, 유튜브인가 찍는다고 생판 모르는 사람이랑 어울리질 않나. 그러고 빨빨거리고 돌아다니니까 여기저기서 험한 일 겪는 거야. 스스로에 대해 무지하니까, 본인이 어떤 인간인지 쥐똥만큼도 파악이 안 되니까 감당 안 되는 일들이 닥쳐오는 거라고. 액운이 달라붙는 것도, 재수가 없는 것도 아니야. 네가 그런 일이 일어날 만한 꼬투리를 사방에 뿌리고 다니고 있다고.”

아니다. 이 눈치 없는 고집불통 빡빡이는 그저 약이 바짝 올랐을 뿐이다. 산허 스님의 유품과도 같은 차가 고장이 나고 자신이 금과옥조처럼 여기는 산허 스님의 가르침이 왜곡 당하니까 화가 치솟았던 거다. 가끔 감정을 주체 못 해 지옥불에 떨어진 마귀처럼 발광할 때가 있는데 지금이 바로 그 순간이다.

목에 시퍼런 핏대를 세우고 고함치는 빡빡이에게 누나는 더 이상 대들지 않았다. 그저 고개를 떨구고 아까처럼 손으로 머리카락을 잡아 뜯을 듯 꼬고, 땅을 보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오히려 상태가 아까보다 나빠 보인다. 형은 그런 누나의 모습을 보고 나서야 정신을 차린 듯, “아 시발, 이게 아닌데…….” 하며 안절부절못했다. 이게 아니긴 개뿔, 그러니 적당히 했어야지. 일절, 이절도 모자라 삼절, 사절까지 내지르니 탈이 나지 않을 수가 있나.

견인차에 끌려 돌아가는 길에 나는 누나 옆에서 쉴 새 없이 상만이 형 욕을 했다. 형이 듣든 말든 개의치 않고, 본인이 흑역사로 생각하는 옛날 일까지 들춰내 누나의 기분을 풀어주려 애썼다. 하지만 깊은 우울 모드로 빠져든 누나는 창밖으로 고개를 돌린 채 내 얘기에 관심을 갖지 않았다. 이미 실컷 병을 준 문어 대가리가 뒤늦게 약을 주려 해도 소용없었다. 약은 도리어 독이 되어 누나를 점점 더 암울과 비관의 구렁텅이로 밀어 넣을 뿐이었다.

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