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랖과 집착 (1)

by 아비드야

그 남자는 끔찍한 몰골을 하고서 누워 있었다. 곰팡이가 슬어 시커멓게 얼룩진 벽과 누렇게 변색되어 케케묵은 이불에 동화된 것처럼, 얼굴 곳곳에 검푸르고 누르께한 자국이 번져 있었고, 절규를 한 건지 저주를 퍼부은 건지, 한껏 벌려진 입엔 담갈색 거품과 깨진 이의 파편이 섞여 있었다. 손톱이 살에 박힐 만큼 주먹이 꽉 쥐어져 있었고, 기괴한 형태로 틀어진 다리에는 납빛 핏줄이 돋아나 있었다. 마지막 순간, 세상 누구도 알아주지 않은 억울함과 분노, 회한과 비애 같은 감정들이 소용돌이치듯 남자의 몸을 휘저어 놓은 듯 보였다.

우리가 남자를 발견한 건 죽은 지 몇 시간이 지난 뒤였다. 그 집은 할머니 집이 맞았고 남자는 할머니의 아들이었다. 사인은 일산화탄소 중독. 방바닥에 시커먼 구멍을 내고서 뿌옇게 타 버린 번개탄을 보고 짐작이 가긴 했다. 119 구조대와 경찰은 할머니도 아마 처음엔 남자 옆에 누워 있었을 거로 추정했다. 남자는 치매에 걸린 노모와 동반 자살을 계획했을 거라고. 다행히도 할머니는 질식의 괴로움을 참지 못해 방을 뛰쳐나왔고 남자는 고통을 참고 버텨 죽음에 이르렀던 것이다. 구조대원 말로는 번개탄을 피웠을 때 나오는 유독 가스를 마시고 견디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끝까지 방에 누워 있었던 게 신기하다고 했다.


엄마의 납골함 앞에 서서 엄마의 마지막 모습을 떠올려 본다.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핏발이 선 가느다란 눈으로 나를 바라보던 야윈 얼굴. 기력이 쇠해 눈물조차 나오지 않던 눈을 비비던 앙상한 팔. 엄마는 죽음 앞에서 처절하고 억척스러웠다. 본인의 죽음이 슬프고 억울해서가 아니었다. 자신이 가면 홀로 남겨질 자식이 걱정되어서, 세상에 자꾸 거절당해 부딪치고 넘어지는 아들이 안타까워서, 당신은 떠나면서도 그런 얼굴을 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만약 그럭저럭 사람 구실을 하고 있었다면, 아니 애초에 내가 엄마의 아들이 아니었다면, 엄마는 그렇게까지 괴로워하거나 비통한 모습을 보이지 않았겠지. 아예 아프지도 않고 지금도 건강한 몸으로 사랑하는 이들과 행복하게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인마, 청승 그만 떨고 가자.”

남자의 화장이 끝났나 보다. 상만이 형은 장례식 때 입는 승복을 벗고 평소처럼 사복을 입고 있다. “죽으면 끝이지, 뭣 하러 염불하고 제를 지낸다고 지랄이야. 산 사람 고생만 시키는 거지.” 장례를 주도해 달라는 요청이 들어오면 그냥 대충 태우거나 묻어버리지, 꼭 쓸데없는 짓을 한다고 투덜대더니 유골 태우는 옆에서 열심히 독경도 하고 목탁도 두드렸나 보다. 옷을 바꿔 입었는데도 등허리 부분이 젖어 있고 이마 양옆에도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다.

담희 누나는 머리카락을 배배 꼬며 무언가를 중얼거리고 있다. 이리저리 흔들리는 시선은 갈 곳을 찾지 못한 채 나를, 상만이 형을, 땅바닥을 훑으며 방황하고 있다. 그 사건 뒤로 이따금 저런 모습을 보이는데 여간 걱정스러운 게 아니다. 남자의 죽음을 목격한 후, 누나는 특유의 명랑함과 쾌활함을 잃어버렸다. 즐겁게 웃고 장난을 치다가도 갑자기 우울해져서 고개를 푹 숙이거나 초점이 흐린 눈으로 어딘가를 하염없이 바라보곤 한다. 틈만 나면 점을 봐주겠다고 펼쳐놓던 타로 카드도 꺼내지 않고 구응이에게 달라붙어 놀아달라고 귀찮게 굴지도 않는다. 삶의 마감을 시도한 경험이 있는 나조차도 그 장면을 보고 엄청난 충격을 받았는데, 누나의 경우엔 충격의 여파가 어마어마하겠지. 어떤 이들에게는 이 같은 충격이 평생의 트라우마로 남아 그 사람의 삶을 망가뜨리기도 한다는데 누나도 그렇게 되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누나의 선한 오지랖이 아직 건재하다는 것이다. 원래 남자의 시신은 다른 무연고 사망자들처럼 비공개로 처리될 예정이었으나, 누나가 여러모로 애쓴 덕분에 조촐하게나마 장례도 치르게 되었고 화장 후 납골함에 안치도 될 수 있었다. 오늘만 해도 따라올 필요 없다고 만류하는데도 기어이 참석했다. 가뜩이나 추모해 줄 사람도 없어 가는 길이 외로울 텐데 자기라도 나와 봐야 한다며, 구응이도 순감이한테 맡겨두고 화장장까지 따라왔다. 그러면서 할머니도 참석했으면 좋았을 거라며 그러지 못해 안타까워했다.

할머니는 병원에서 간단한 치료를 받은 뒤 요양 시설로 옮겨졌다. 다행히 무연고 노인을 돌봐주는 시설이 있어 그곳에서 남은 생을 보내게 되었다. 할머니는 그날에 대한 기억이 없다고 한다. 기억을 떠나 아들과 그 집에서 거주했던 사실 자체를 부정한다고. 하나뿐인 아들은 오래전에 죽었고 자신은 쭉 혼자 살아왔다며 누가 아들 얘기를 꺼내면 눈에 쌍심지를 켜고 달려든다고 한다, 상만이 형은 “차라리 그런 상태로 있는 게 나아. 아들이 자기랑 그렇게 죽으려 했다는 거 알면 노인네 제정신으로 못 살지.”라고 말하며 혀를 찼다.

녹슨 대문 앞에 주저앉아 방 안을 우두커니 보던 할머니의 모습이 떠오른다. 소스라치게 놀라 뒤로 나자빠진 나와 담희 누나와는 달리, 할머니는 별다른 동요 없이 터덜터덜 방을 향해 걸어왔다. 모든 걸 알고 있었다는 듯, 서글프고도 처연한 눈엔 체념과 한이 서려 있었다. 과연 그 순간에도 할머니는 치매를 앓고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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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저물고 땅거미가 진다. 어둠이 내려앉은 망자의 공간을 뒤로 하고 우리는 우리의 삶이 있는 곳으로 돌아간다. 벌써 대여섯 번은 왔다 갔다 했고, 불과 몇 시간 전에도 통과했던 길인데도 익숙지가 않다. 지날 때마다 예전과는 다른 형태의 우울과 슬픔, 무기력이 가슴을 내리누른다. 차가 다리로 진입하고 세상과 동떨어지자 더욱 쓸쓸하고 처량한 기분이 든다. 상만이 형이 침울한 정적을 깨려는 듯 운전을 하며 불경을 왼다.

나와는 달리 죽음에 성공한 사람. 같이 가려는 노모를 이승에 남기고 말았으니 그 남자 입장에서 보면 완벽한 성공은 아니겠지. 사람들은 이미 세상을 떠나 재가 되어 버린 그를 보고 무책임하고 이기적인 불효자라고 욕을 한다. 죽을 결심으로 더 간절하고 열심히 살아야 하는 거 아니냐고, 아무리 괴롭고 힘들어도 어머니까지 끌어들이는 건 너무 모질고 가혹하지 않냐고 비난한다. 정말 모든 잘못과 책임은 남자에게 있을까. 그가 최선을 다해 노력하고 죽을힘을 다해 발버둥 쳤다면 사정은 달라졌을까. 그와 노모를 절망적인 상황으로 내몰아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만든 세상은 외면하고 무시해도 괜찮은 걸까. 모르겠다. 다만 궁금하다. 그는 세상에 남은 어머니를 측은해하고 안타까워하고 있을지, 아니면 동반 자살을 시도했던 자신의 결정을 후회하고 어머니라도 살아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을지.

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