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오늘은 이만하면 충분하니 그만하고 돌아가자는데 누나는 내 제안을 단칼에 거절했다. 이제 감이 좀 잡힌다며 지금부터 본격적으로 해 보자고 되레 열의를 불태웠다. 더 이상 사람들의 주목을 끌고 싶지 않아 피곤하다는 핑계를 대보았지만, 약한 모습 보이지 말라며 발길질만 당했다. 구응이가 무리를 해서 힘들어하니 쉬는 게 좋지 않겠냐며 은근하게 권해 봐도 먹히지 않았다. 근데 이 녀석 그새 체력을 회복한 듯하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쓰러질 것처럼 헥헥대더니 언제 그랬냐는 듯 신나게 짖고 있다.
“자, 또 카드를 뽑아야 할 때가 왔네요. 이번엔 심심해하는 우리 카메라맨에게 맡겨 볼게요. 야, 네가 한 번 뽑아봐.”
누나가 카드를 펼쳐서 나에게 내밀었다. 나는 거절하려다 마음을 바꿔 먹고 신중하게 골랐다. 잘 뽑아야 한다. 엉뚱한 놈을 뽑았다간 어떤 황당한 난관에 봉착할지 모른다. 되도록이면 사람이 없고 조용한 곳으로 인도하는 카드가 나와 주었으면.
“소드 4번이네. 음, 어디 보자.”
어떤 사람이 두 손을 가슴 위에 가지런히 모은 채 침대인지 관인지 모를 곳에 누워 있다. 머리카락을 비롯해 온몸이 금빛을 띠고 있는데 금으로 만들어진 조각상 같기도 하다. 장소는 교회나 성당으로 추정된다. 왼쪽 상부 스테인드글라스에 성직자와 교인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그려져 있다. 그런데 마냥 종교적 장소라고 보기에 애매한 것이, 벽과 바닥에 칼이 있다. 벽에 세 개가 걸려 있고 누운 곳 밑에 하나가 놓여 있다. 아무튼 여타의 다른 타로 카드들과 마찬가지로 어울리지 않는 요소들이 자연스러움을 가장한 채 섞여 있다.
담희 누나는 카드가 가리키는 곳을 알겠다며 따라오라고 손짓을 했다. 구불구불한 골목길을 따라 얼마간 올라갔더니 십자가를 달고 있는 낡고 오래된 건물이 보였다. 교회인지, 성당인지 알 수가 없다. 문패나 현판 없이 건물만 덩그러니 서 있다. 아,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다. 누나가 마치 자기 집인 양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간다. 구응이도 주인을 닮아 거침이 없다. 이곳도 아까 마트처럼 아는 곳인가? 그럼 다행이지만.
“아무도 없네. 오늘 쉬는 날인가 보다.”
안에 아무도 없다. 여기저기 살펴보니 쉬는 날이 아니라 사람이 찾지 않은지 제법 된 것처럼 보인다. 바닥이나 의자에 먼지가 잔뜩 쌓여 있다. 누나는 발을 질질 끌며 먼지 사이로 길을 내다가 십자가 앞에서 두 손을 공손히 모았다. 십자가 위 예수님의 몸에도 먼지가 소복하게 쌓여 있다. 여기서는 별로 건질 거리가 없을 것 같은 생각이 들지만 일단 기도하는 누나와 옆에 사뭇 경건한 자세로 서 있는 구응이를 촬영했다. 먼지를 뒤집어쓴 예수님도 줌으로 당겨 카메라에 담았다.
밖에서 사람 발소리가 들린다. 뭐지, 이 허름한 건물에 찾아올 사람이 있나. 설마 이곳 주인인가. 나는 얼른 누나의 팔을 흔들어 문 쪽을 가리켰다. 누나가 “왜, 뭐 재밌는 거라도 발견했어?”라고 물으며 몸을 돌렸다. 문이 삐걱거리며 반쯤 열리더니 머리가 하얗게 센 할머니가 얼굴을 빼꼼 내밀었다. 할머니는 잠시 우리와 눈을 맞추다가 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성큼성큼 다가왔다.
“너, 이놈의 자식아, 내가 함부로 돌아다니지 말라고 했지? 왜 어미 말을 안 듣고 이렇게 속을 썩이냐?”
할머니는 내 옷자락을 잡더니 밖으로 나가려 했다.
“어르신, 얘 아세요?”
누나가 놀란 눈을 하며 나와 할머니 사이에 끼어들었다.
“지금 나 놀리는 거야? 내가 내 아들을 모르겠어? 이놈이 밥 다 됐는데 어딜 갔나 했더니만 여기서 각설이랑 놀고 있었구만.”
노인네 힘이 엄청나다. 나를 마구잡이로 끌고 가는데 뿌리칠 수가 없다. 누나가 나를 쳐다봤다. 나는 다급하게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모르는 사람이다.
“어르신, 잠깐만요. 아무래도 다른 사람이랑 아드님을 착각하신 거 같아요.”
“너 누구야? 너 내 아들 데리고 또 어디 이상한 데 가려고 그러지? 너도 그놈들이랑 한패야?”
할머니가 손바닥으로 누나 등을 때렸다. “찰싹, 찰싹” 소리가 넓은 공간에 울려 퍼졌다.
“아니에요. 그런 거 아니에요.”
담희 누나는 할머니를 피해 도망쳤다. 구응이가 으르렁거리며 할머니를 쫓았다.
“야, 수남아, 아니 영남아. 이 개새끼 좀 어떻게 해 봐라. 이 사나운 놈이 엄마를 물려고 하잖냐.”
이 할머니 아무래도 정신이 온전치 않은 것 같다. 머리카락은 까치집처럼 헝클어져 엉망이고 옷차림도 계절에 맞지 않게 두터운 데다 신발마저 짝짝이다. 오른발에는 운동화를 구겨 신고 있고 왼발에는 다 떨어진 슬리퍼를 신고 있다. 일단 누나를 쫓아다니는 할머니를 붙잡고 집에 가자고 타일렀다. 누나는 여기서 우연히 만난 사람이라고 대강 둘러댔다.
“그래, 얼른 가자. 얼른.”
누나와 구응이를 두고 할머니와 함께 건물 밖으로 나왔다. 나야 집이 어딘지 모르니 우물쭈물하며 서 있는데, 할머니가 나더러 앞장서라고 등을 떠밀었다. 내가 길을 모르겠다고 하자 할머니는 주위를 둘러보더니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사 온 지 얼마 안 돼서 나도 길을 잘 모르겠네. 그러니까 네 놈이 겁도 없이 싸돌아다니니까 이런 거 아냐. 내가 꼼짝 말고 집에 있으라고 했지, 어?”
할머니가 방금 전 누나에게 했던 것처럼 내 등을 때렸다. 정신이 번쩍 들면서 내가 여기서 왜 이러고 있어야 하는지 회의감이 밀려왔다. 길거리에서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되는 것도 모자라 생전 처음 보는 노인에게 얻어맞기까지 하다니. 하긴, 누굴 탓하랴. 죽음도, 가위바위보도, 모든 걸 제대로 할 줄 모르는 내 탓이지.
언제 밖으로 나왔는지, 담희 누나가 내 옆구리를 슬쩍 찌르며 자기를 따라오라고 눈짓을 했다. 어쩔 작정이지? 근처에 이런 노인들을 돌보는 요양 병원이라도 있나? 누나는 뒤를 보며 으르렁거리는 구응이를 달래가며 길을 안내했다. 할머니는 자꾸 왜 저 거지를 따라가냐고 내 옷자락을 잡아당겼다. 내가 가는 길이 우연히 겹칠 뿐이라고, 집으로 잘 가고 있다고 말해도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았다. “이 길이 아닌데, 이쪽으로 가면 안 되는데”라고 혼잣말을 하며 연신 주변을 경계했다.
누나가 우리를 인도한 곳은 파출소였다. 누나는 문을 열면서 나보고 들어오라고 고개를 까딱였다.
“이놈아, 지금 뭐 하는 짓이야. 어미를 짭새한테 넘길 셈이야?”
파출소 문을 앞에 두고 할머니는 내 귀를 깨물 것처럼 이를 딱딱거리며 속삭였다. 그리고 곧이어 온몸을 바들바들 떨더니 바닥에 쓰러지려 했다. 내가 간신히 할머니를 붙잡고 버티는데 이번엔 날 내팽개치고 도망가려는 듯 발을 굴렸다. 몸에 힘이 풀린 줄 알았더니 팔다리가 금방 잡힌 참치처럼 기운이 넘쳤다. 나는 할머니에게 집이 어딘지 물어보러 온 거라고, 다른 뜻은 없다고 안심시켰다. 할머니는 무슨 일이 있어도 안으로 들어가지 않겠다고, 들어가면 절대 못 나오니 빨리 도망가야 한다고 날 재촉했다. 이때 누나와 경찰관이 문을 열고 나왔다. 할머니는 하던 행동을 멈추고 내 손을 꼭 잡았다. 얼굴에 핏기가 사라지고 입술이 파래졌다. 입도 굳었는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사십 대로 보이는 푸근한 인상의 경찰관이 미소를 지으며 할머니에게 말을 걸었다.
“어르신, 이사 오신 지 얼마 안 됐다고 했죠? 아들분도 길을 잃었나 봐요. 그래서 여기로 온 거예요. 집 찾으려고.”
할머니는 여전히 아무 대꾸도 하지 않는다. 고개를 푹 숙이고 마네킹처럼 뻣뻣하게 서 있을 뿐이다. 경찰관이 이름을 물어도, 집 주소를 물어도 묵묵부답이다. 숨이나 제대로 쉬고 있는지 모르겠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일단 할머니를 데리고 뒤로 빠졌다.
“이놈아, 빨리 집에 가자. 여기 오래 있으면 안 돼. 짭새들이 우릴 가두고 두들겨 팰 거라고.”
할머니는 다급한 목소리로 내게 귓속말을 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경찰에 안 좋은 기억이 있는 건 분명해 보인다. 여기 계속 있다가는 도움을 받기는커녕 구급차 신세를 져야 할지도 모른다. 나는 이곳을 벗어나겠다는 의미로 누나에게 머리를 흔들었다. 누나는 알겠다는 듯 윙크를 하고 경찰관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저기는 절대 가서는 안 되는 곳이야. 너는 예전에 그렇게 고생을 해놓고도 왜 아직 정신을 못 차렸냐.”
나와 할머니는 정처 없이 동네를 돌아다녔다. 이상하고 황당한 점은 동네 사람들이 할머니를 모른다는 사실이었다. 동네 슈퍼나 미용실에 가도, 행인들에게 물어봐도 다들 고개를 저으며 처음 보는 얼굴이라 했다. 바로 어제 이사 오기라도 한 건가. 아니면 아주 먼 동네에서 여기까지 온 건가. 답답하다. 다시 파출소에 갈 수도 없고, 그렇다고 동네를 계속 헤맬 수도 없고. 저만치 우리를 뒤에서 따라오는 누나에게 눈짓, 손짓으로 도움을 요청하지만, 누나도 별 뾰족한 방법이 없는 듯 난감한 표정을 짓기만 한다.
할머니가 길을 가다 말고 허리를 구부려 무릎을 주무른다. 그러고 보니 꽤나 걸었다. 아마 우리를 만나기 전에도 쭉 걸었다면 지금 많이 지친 상태일 거다. 아까 갔던 슈퍼로 돌아가 할머니를 가게 앞 의자에 앉혔다. 혹시나 싶어 음료수도 샀는데 할머니는 내 몫으로 산 음료수까지 낚아채 벌컥벌컥 마셨다. 갈증을 해소하자 할머니는 양손에 음료수병을 들고 나를 바라봤다. 아무 말도 하지 않지만 나를 아들로 착각했던 때와는 왠지 눈빛이 다르다. 멍하고 부옇고 망연하다. 시선은 나를 향해 있지만 실은 나를 보고 있지 않는 듯한 느낌이 든다. 담희 누나도 잊어버린 듯 가까이 다가와도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이거 어떡하지? 이러다간 하루 종일 돌아다녀도 집을 못 찾겠어. 경찰서는 도저히 안 되겠고 주민 센터라도 가 볼까?”
담희 누나의 말에 할머니가 행여 또 놀라거나 화를 낼까 내가 조용히 하라고 검지를 입에 갖다 댔다. 누나는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다가 주머니에서 슬며시 타로 카드를 꺼냈다. 으이구, 이런 상황에서도 카드를 꺼내다니. 하여간 저 인간의 뚝심과 열정만큼은 알아줘야 한다. 누나는 조심스럽게 할머니 앞에 카드를 펼쳐 보인 다음, 한 장 뽑아보라고 권했다. 할머니는 카드를 멍하니 보고 있다 벌떡 일어났다.
“어르신 어디 가세요?”
할머니가 말없이 혼자 걸어간다. 내가 얼른 뛰어가서 붙잡았다.
“이거 놔. 집에 가야 해. 아들이 기다려.”
정신이 돌아왔나. 그런 것 치고는 눈빛이나 목소리가 아직 흐릿한데. 그래도 기운은 차린 듯 할머니는 가파른 골목길을 성큼성큼 올라간다. 누나와 나는 할머니를 붙잡지 않고 뒤를 따랐다. 혹시나 길을 잃고 헤매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아예 생판 모르는 남의 동네는 아닌 것 같다. 길을 찾는 모습이 산만하지 않고 과감하고 가볍다. 분명 목적지를 알고 가는 걸음걸이다. 할머니는 막다른 골목에 들어서는 바람에 돌아 나오기도 했지만, 다시 길을 찾아 점점 더 낡고 초라한 집들이 있는 곳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다소의 시행착오를 거쳐 대문이 녹슬다 못해 벌겋게 벗겨진 집 앞에 다다랐을 때, 할머니가 드디어 걸음을 멈췄다.
“여기가 우리 집이야.”
할머니는 집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문의 녹슨 부분을 손으로 떼며 머뭇거렸다. 설마 이 집이 아닌 건가? 조심스레 문을 두드렸다. 반응이 없다.
“계세요?”
누나가 문을 쾅쾅 두드려 본다. 역시나 인기척은 없다.
“어르신 여기 사시는 거 맞으세요?”
누나의 물음에 할머니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문에 손을 갖다 대고 밀어 보았다. “끼익, 끼익” 요란한 소리를 내며 문이 열렸다. 넓지도 않은 마당에 폐지가 잔뜩 쌓여 있다. 정리되지 않은 박스와 종이가 아무렇게나 굴러다니고 있다. 푸석푸석하면서도 눅눅한 폐지를 지나쳐 방이라 여겨지는 곳 앞에 섰다. 문이 살짝 열려 있다. 할머니는 대문에 서서 물끄러미 이쪽을 바라보고 있다. 매캐하고 싸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머리가 어지럽고 속이 메스껍다. 종이에서 나는 냄새는 아닌데. 뭐지, 기분 탓인가. 나만 그런 게 아닌 듯, 누나와 구응이도 옆에서 킁킁거리며 인상을 쓰고 있다. 숨을 크게 한 번 들이마신 뒤 문을 열었다.
“컥컥, 이게 무슨……. 헉!”
“캉캉! 캉캉!”
누나가 머리를 감싸 쥔 채 뒷걸음질 치고 구응이가 마당을 뛰어다니며 쉰 소리로 짖어댄다. 귀에서 ‘징’하는 소리가 울리고 머리털이 바짝 곤두선다. 불덩이라도 삼킨 양 입안이 화끈거리더니 목이 타들어 갈 듯 조여 온다. 눈을 뗄 수가 없다. 스산하고 아릿한 기운이 사정없이 시선을 낚아채 끌어당긴다. 눈꺼풀이 움직이지도, 고개가 돌려지지도 않는다. 어찌할 도리 없이 뚫어져라 쳐다볼 수밖에 없다. 내 것 같지 않은, 명백하게 내 의지를 거스르는 낯선 눈이 방 안에 펼쳐진 광경을 모조리 담아낸다. 걸쭉하게 응어리진 어둠을 제멋대로 헤집고, 가장 안쪽 모서리에서 부유하는 먼지까지 죄다 뇌리에 새겨 넣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