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로 산책 (1)

by 아비드야

“자, 이제 ‘타로 산책’ 시작합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여러분과 함께 정처 없이 거리를 떠돌 바보이구요. 여기 견공은 저의 안내자이자 동반자인 구응 군입니다.”

담희 누나는 0번 카드에 나오는 바보처럼 포즈를 취한다. 어디서 구했는지 알록달록한 무늬가 새겨진 펑퍼짐한 상의에 노란색 바지를 입고 노란 부츠까지 신었다. 자기 키만큼이나 기다란 지팡이와 끝에 달린 보자기, 빨간 깃이 달린 페도라는 덤이다. 구응이 녀석도 0번 카드에 나오는 개처럼 두 앞다리를 들었다 내렸다 하며 열심히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람들이 지나가며 쑥덕이고 키득거리는데도 둘은 별 신경 쓰지 않는 눈치다. 한껏 폼을 재고 서로를 보고 즐거워하며 그들만의 세계에 빠져 있다. 내가 다 부끄럽고 민망하다. 지금이라도 카메라를 두고 도망가고 싶다. 헌구 말대로 마스크와 선글라스, 모자를 준비했어야 했건만, ‘구담희’라는 인간을 너무 얕잡아 봤다.


지난번 산행에서 영감을 얻은 담희 누나는 타로 카드를 들고 거리로 나왔다. 길을 가면서 중간중간 뽑은 카드에 따라갈 곳을 정하고 행동을 취하는 영상을 제작하겠다는 야심 찬 포부를 안고서. 얼굴 노출은 절대 안 된다며 거부하더니 갑자기 왜 마음을 바꿨는지 모르겠다. 어쨌든 누나의 아이디어를 듣자마자 엮이면 안 될 것 같은 불길한 느낌에 바로 자리를 뜨려고 했지만 그만 내가 카메라맨으로 낙점되고 말았다. 가위바위보를 해서 촬영자를 정하기로 했는데, ‘난 무조건 안 돼’, ‘걸리면 끝장이야’라고 마음을 졸였더니 여지없이 걸려버렸다.

아마 지난 산행 때처럼 카드를 뽑아 엉뚱하게 해석하고 내키는 대로 행동하겠지. 얼핏 재밌는 영상이 나올 것 같다는 예감이 들기도 한다. 순감이도 누나의 아이디어가 기발하다며 대박이 터질 거라고 높은 기대감을 표출했다. 보통 순감이와는 반대 의견을 내는 헌구도 누나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괜찮은 영상이 나올 거라며 긍정적인 예상을 내놓았다.


“우선 카드를 뽑아야겠죠. 첫 번째 카드는 제가 뽑도록 하겠습니다. 무슨 카드가 나올까요? 어디 보자. 헉, 이럴 수가. 0번 바보 카드가 나왔네요. 여러분 이거 절대 짜고 하는 거 아니에요. 어떻게 이게 나왔지? 웅남아, 잘 찍고 있지? 이거 네가 미리 뽑아놓은 거 아니잖아. 나한테 가르쳐준 것도 아니고, 그렇지?”

담희 누나가 엄청나게 흥분한다. 너무 들뜬 나머지 짜고 한 게 아님에도 불구하고 짜고 한 짓처럼 어색하고 요란스럽게 군다. 이 부분은 아무래도 나중에 편집할 때 덜어내야겠다. 유공이의 제안대로 실시간 방송을 했으면 큰일 날 뻔했다. 지금 말고도 앞으로 난감한 상황이 계속 발생할 텐데 생방송으로 진행했다간 구설수에 오르기 딱 좋았을 거다.

잠시 카메라를 끄고 누나를 진정시켰다. 담희 누나는 신기하지 않냐고 구경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카드를 보여주며 바보처럼 헤헤거렸다. 그러면서 그림 이곳저곳을 손가락으로 짚어가며 카드의 의미를 설명했다. 무계획적이지만 자유롭고, 순수하면서도 집착하지 않는 바보. 어떻게 보면 자기소개를 하는 것 같기도 하다. 이런, 이 장면은 찍었어야 했는데 그만 놓치고 말았다.


카드에 대한 설명을 마친 누나는 바보 카드의 뜻에 따라 자기 마음대로 가 보겠다고 하더니 길모퉁이를 돌아 대로변에 있는 마트로 들어갔다. 아니, 저 옷을 입고 감히 마트에 들어갈 생각을 하다니. 평일 낮이라 해도 사람이 제법 많을 텐데. 이런 전개를 예상치 못한 건 아니나 막상 들어가려니 망설여졌다. 섣불리 들어가지 못하고 입구에서 멀리 떨어져 머뭇거리고 있는데 누나가 마트 밖으로 나와 나를 불렀다.

“야, 양웅남! 빨리 들어와. 거기 멀뚱멀뚱 서서 뭐 하고 있어?”

마트 입구에서 서성이던 사람들의 시선이 내게로 쏠렸다. 이마가 뜨끈해지고 손과 겨드랑이가 축축해진다. 촬영자를 결정하는 순감이와의 마지막 가위바위보 대결에서 바위를 낸 결정을 후회하며 마트 쪽으로 터벅터벅 걸어갔다.

담희 누나는 아예 내 손에서 카메라를 낚아채 본인이 직접 들고 다니며 마트 안 직원 및 손님들과 열심히 인사를 주고받았다. 하이 파이브를 하기도 하고 서로 손을 마주잡고 깔깔 웃기도 했다. 누나가 자주 오는 단골마트일 거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아무리 그래도 손님들과도 저렇게 스스럼없이 지낼 수가 있나?’라는 의문이 들었다. 구응이가 저렇게 활보하고 다니는데 아무도 제지하지 않는 점도 이상하다. 개를 밖으로 내보내기는커녕 쓰다듬고 안아주고 아주 난리도 아니다. 여기 마트 사장 딸이라도 되는 건가? 그렇지 않고서는 누나에 대한 극진한 환대와 구응이에 대한 관대함이 설명이 안 되는데.


인사를 마친 누나는 다시 나에게 카메라를 맡기고 마트 일을 도왔다. 물건 나르는 일을 돕기도 하고 흐트러진 상품을 보기 좋게 정리하기도 했다. 땅에 떨어진 물건을 제자리에 위치시키고, 물건의 위치를 묻는 손님들을 안내하는 일도 척척 해냈다. 마치 마트 직원인 양 행동이 무척이나 효율적이고 안정적이다. 그나저나 언제까지 여기 있어야 하나. 더 이상 카드는 안 뽑고 여기서 일만 하다 영상을 마무리할 작정인가.

“담희야!”

마트 밖에서 직원용 조끼를 입고 있는 이가 누나를 불렀다. 누나가 “언니!”를 외치며 달려간다. 뭐야, 아까 들어올 때 인사한 사람이 아닌가. 하도 많은 사람들과 아는 척을 해서 누가 누군지 모르겠다. 누나는 언니라 불리는 이와 손을 맞잡고 방방 뛰고 빙글빙글 돌았다. 이 마트에도 산에서처럼 정기가 흐르나. 사람들이 다들 에너지가 넘친다. 열정적인 상봉이 끝난 후 누나가 나를 소개하며 우리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해 알려줬다.

“오, 담희. 이제 유튜브 스타 되는 거야? 잘 찍어줘. 네 영상 대박 나서 나도 유명세 좀 타 보자.”

“언니 카드 한 장만 뽑아보실래요?”

“오늘은 세 장이 아니라 한 장이야? 어디 보자, 뭘 뽑으면 되려나?”

구름 속에서 빛나는 하얀 손이 나와 별이 새겨진 금화를 들고 있는 카드다. 그 아래에는 꽃이 만발한 정원이 있고, 제일 밑부분엔 ‘ACE of PENTACLES’이라고 적혀 있다. 누나는 카드를 들고 곰곰이 고민하다가 직원이 팔려고 내놓은 고구마, 감자, 양파로 시선을 돌렸다.

“언니, 이거 지금 팔 거예요?”

“응, 오늘 행사 상품이야. 아침에 산지에서 가져온 거라 완전 싱싱해.”

담희 누나는 느닷없이 직원 언니를 도와 상품을 팔겠다고 자청했다. 빛나는 손은 긍정적인 도움을 의미하고 그 위에 얹힌 금화는 도움을 받아 물질적 성취를 이루는 거라고 직원 언니와 카메라를 번갈아 보며 설명했다.

“나야 도와주면 고맙지. 혼자 하면 심심하고 금방 지치는데, 둘이 하면 힘도 나고 재미도 있겠네.”


직원 언니가 마이크를 들고 상품에 대해 홍보하고, 담희 누나는 옆에서 판매를 도왔다. 처음엔 어색한 듯 쭈뼛쭈뼛하더니 누나는 옷매무새를 바로잡고 느닷없이 춤을 추기 시작했다. 음악이 없는데도 혼자서 흥얼거리며 스텝을 밟고 팔을 이리저리 휘둘렀다. 음, 이거 애매한데. 주변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과감하게 행동하는 패기는 높이 사지만 움직임이 어딘지 모르게 서투르고 뻣뻣하다.

옆의 직원이 불안한 눈빛으로 누나를 힐끗거렸다. 나도 일단은 카메라를 비추고 있지만 조마조마하기는 매한가지다. 그래도 희한한 의상을 입은 사람이 음악도 없이 괴상망측한 행동을 하니 사람들이 모여들기는 했다. 마트 안에서도 나오고 거리를 지나가던 이들도 가는 길을 멈췄다. 아까 0번 카드를 뽑았을 때 우리를 구경하던 사람들도 있다.

일단 사람들의 시선을 끌긴 했으나 반응이 영 미적지근하다. 다들 멀거니 서서 누나를 쳐다보기만 할 뿐 호응을 해주거나 팔려는 상품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방금 전까지 누나와 살갑게 인사하고 대화를 나누던 사람들조차 ‘쟤가 갑자기 왜 저러지?’ 하는 근심 어린 표정을 짓고 있다. 초반 몇 분간은 거리낌 없이 율동을 하던 누나도 보는 이들의 떨떠름한 반응을 알아차린 듯, 얼굴이 붉어지고 눈빛이 흔들렸다. 바람 빠진 풍선 인형처럼 움직임도 굼뜨고 늘어지다가 결국에는 우물쭈물하며 어쩔 줄 몰라 했다. 이때 가만히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구응이가 누나에게 다가갔다. 뒷발로 땅을 짚고 서서는 앞발로 박수를 치는 시늉을 하는데, 영락없이 개 탈을 쓴 인간이다. 저 녀석, 예사 개가 아닌 건 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저런 개인기까지 익혔을 줄이야. 어쭈, 사람들이 신기해하면서 관심을 가지니까 이번엔 물구나무를 서서 뒷다리로 박수를 쳤다. 누나는 달라진 사람들의 반응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더니 씩 웃었다. 그리고 자기도 구응이와 박자를 맞춰 폴짝폴짝 뛰어오르며 발로 박수를 쳤다.

구응이의 묘기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딱딱한 시멘트 바닥에서 열심히 옆 구르기를 하고, 누나가 던진 간식을 뛰어올라 멋지게 받아먹기도 했다. 뒷발로 서서 사람처럼 앞다리와 몸을 흔들며 춤출 때는 또 한 번 깜짝 놀랐다. 진짜 사람처럼 움직인다고 누가 안에서 조종하는 거 아니냐는 말까지 나왔다. 연이어 눈을 동그라지게 만드는 구응이의 묘기에 분위기는 후끈 달아올랐다. 사람들의 호응이 점점 커지고 여기저기서 환호와 박수가 터졌다. 휴대폰을 꺼내 동영상을 찍는 이도 있었다. 누나도 덩달아 힘을 내 구응이와 호흡을 맞추며 여러 재주를 선보였다.


구응이 덕분에 판촉 행사는 성황리에 마무리되었다. 몇몇 이들은 공연이 끝난 뒤에도 남아 구응이 사진을 찍고 쓰다듬기도 했다. 솔직히 판매에 큰 도움은 되지 않았다. 담희 누나는 여전히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고구마, 감자, 양파를 보고 실망했다. 직원 언니도 아쉬운 모양이지만 쉰 목소리로 수고했다며 누나를 위로했다. 구응이는 격렬한 공연을 하느라 많이 지친 모양이다. 혀를 내민 채 거친 숨을 내쉬는데 물만 한 번씩 할짝거릴 뿐 좋아하는 간식은 입에 대지 않았다.

마트에서 나온 뒤, 담희 누나와 나는 찍었던 영상을 돌려 보았다. 그런대로 괜찮다. 아니, 괜찮은 정도가 아니라 상당히 재밌게 잘 뽑혔다. 마트에서 찍은 영상만 가지고도 공 네트워크 최고 조회수 등극은 거뜬해 보인다. 누나가 어리바리하던 앞부분은 잘라내고, 구응이의 재주 장면만 잘 편집하면 꿈에 그리던 만 단위 조회도 가능할지 모른다.

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