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건 추함이 아니다.
언제나 우리를 다치게 하는 건 눈부시게
빛나던 것들이다.
추한 것들은 해롭지 않다.
우리는 그것을 멀리하고, 고개를 돌리고,
잊어버린다. 그러나 아름다움은 다르다.
그 앞에서 우리는 무장 해제된다.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고 싶어 하고,
손을 뻗고, 마음을 내어준다.
그리고 그 순간, 상처는 잉태된다.
사랑했던 사람과의 이별이 그렇다.
그 관계가 아름다웠기에 믿었고, 기대했고,
언젠가는 끝나지 않을 거라 착각했다.
하지만 아름다움은 오래 머물지 않는다.
손끝에서 미끄러져 나가듯 사라지고,
남는 것은 텅 빈 공기와 날카로운 고통뿐이다.
소중히 간직하던 물건을 잃었을 때도
그렇다. 그것은 단순한 사물이 아니었다.
시간이 켜켜이 쌓인 기억의 조각,
손끝에 남아 있던 따뜻한 감각...
사라진 건 물건 하나였지만,
그 뒤에 따라오는 상실은 훨씬 더 무겁다.
친구의 배신 역시 다르지 않다.
한때 웃음을 나누고, 시간을 함께하고,
삶이 서로에게 스며들었기에 그 관계는
아름다웠다. 그래서 무너질 때 상처는
깊어진다.
우리가 아픈 이유는 그것이 거짓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한때는 진실로 빛났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게는 공자라는 웰시코기가
있었다. 친구를 대신해 잠시 맡아
키우기로 했었는데 10년을 함께 했던
존재. 아침마다 흔들리던 꼬리,
저녁 산책길에 들리던 작은 발소리,
밤마다 곁을 지키던 고른 숨결. 그것들은
모두 내 삶을 환히 비춘 아름다움이었다.
그러나 공자가 떠난 날, 나는 알았다.
가장 깊은 상처는 추함이 아니라 그렇게
아름답던 것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상처는 아름다움의 그림자다.
노을이 사라진 뒤에야 붉은빛이 얼마나
눈부셨는지 알게 되고, 음악이 멈춘
뒤에야 그 선율이 내 마음을 얼마나
울렸는지 깨닫게 된다.
상실은 아프지만 동시에 우리가 살아
있었다는 증거다. 그만큼 사랑했고,
아꼈고, 마음을 내주었음을 증명하는
흔적이다.
그래서 나는 이제 조금은 받아들인다.
아름다움이 언젠가 상처를 남길지라도,
그것을 두려워하지 않으려고 한다.
왜냐하면 그 상처조차도 결국은
아름다움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살아간다는 건...
아름다움에 다치고,
또 그 아름다움에 위로받으며,
다시 걸어가는 일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