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각성] 밀항하는 숨구멍, 혹은 고결한 수련

CFO mode off, 비릿한 부채감을 뚫고 시작된 4 성부의 사투

by 안민낙도

하지만 나는 여전히 이 시간을 살아내야만 하는 직장인이었다.


흩어진 이성을 간신히 끌어모아, 납덩이같은 발걸음을 한 칸씩 상부로 견인했다.

단 한두 개의 계단을 오르는 1초는, 내 안에서 1년이라는 긴 세월로 치환되어 느릿하게 흘렀다.

억겁의 시간을 거슬러 오르듯, 나는 마침내 4층에 도착했다.


나만이 알 수 있는 무겁고 긴 한숨을 쏟아내며 방문을 열었다.

그곳엔 차가운 현실의 압박을 비웃듯, 눈부시게 따뜻한 햇살이 먼저 와 인사를 건네고 있었다.

그 잔인할 만큼 평온한 빛의 아이러니 속에서, 나의 삶은 다시 묵묵히 계속되고 있었다.


그 기간 즈음 내 가슴은 늘 돌덩이를 얹은 듯 답답했다.

‘그래, 오늘은 점심시간을 이용해 신경정신과를 다녀오자.’

입안에서 맴돌던 그 다짐을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멈춰 서기를 반복한 지 벌써 보름이나 지나 있었다.

CFO로서 스스로를 통제할 수 있다는 오만한 믿음, 혹은 '의지로 극복할 수 있다'는 무거운 채근이 나를 더 깊은 늪으로 밀어 넣고 있었다.


돌이켜보니, 3.5층 계단참에서 멈춰 섰던 그 찰나는 나에게 있어 지독한 ‘사순절(Lent)’의 시간이었다.

달력상의 절기와는 무관하게, 내 영혼은 이미 절제와 고통, 그리고 자기부정의 광야 한복판을 지나고 있었다. 3.5층의 엔진 고장은 단순한 결함이 아니라, 비대해진 자아의 소음을 끄고 진정한 내면의 질서를 마주하라는 강제된 고난이었을지도 모른다.


퇴근 후, 온몸의 에너지가 소진되어 기력을 잃은 나를 본 아내가 말없이 다가왔다.

그녀는 아무것도 묻지 않은 채, 거실 한 편의 CDP 트레이를 열어 음반 하나를 올렸다.

스피커를 타고 흐르기 시작한 것은 고음악을 사랑하던 그녀가 어느 합창단에서 소프라노 단원으로 참여해 불렀었던 바흐의 모테트, <Jesu, meine Freude(예수, 나의 기쁨)>였다.

https://www.youtube.com/watch?v=a4SKrGYMp7A&list=RDa4SKrGYMp7A&start_radio=1&t=2s


사실, 이와 관련된 부끄러운 고백이 하나 있다.

이 음악에 대한 나의 첫 기억은 그리 고상하지 못하다.

아내의 연주회 당시 객석에 앉아 있던 한 40대 남자는 ‘과연 저 사람들은 정말 이 재미없고 지루한 음악을 즐거워서 부르는 걸까?’라고 속으로 되뇌고 있었다.

연주가 빨리 끝나기만을 기원하며 꾸벅꾸벅 졸고 있던 그 무채색의 남자가 바로 몇 년 전의 나였다.

숙면을 불러왔던 당시의 고음악 연주회풍경 재현 이미지 (feat. 중력과 사투 중인 아재들)

하지만 그날, 스피커를 타고 흐르는 선율은 잠이 아닌 '이유 모를 편안함'으로 내 폐부의 틈새를 메워왔다.


몇 개월 뒤, 시린 바람이 불던 겨울날.

아내는 새로 결성되는 아마추어 고음악 합창단에 권유의 형식을 빌어 나를 테너 단원으로 밀어 넣었다.

대중음악의 자유로움과 유연함을 좋아하던 나에게 클래식 발성이나 초견(Sight-reading)은 마치 정장만 10년 넘게 입었던 회계법인의 클래식한 생활을 되새기게 하는 다른 세상의 언어였다.

하지만 '음악을 향한 갈증' 하나만을 증거물로 채택한 채, 나는 그 무모한 도전에 발을 들였다.


용인에서의 주 1회, 저녁 7시 반.

매번 2시간 동안 이어지는 연습은 말 그대로 '사투'였다.


https://www.youtube.com/watch?v=UXvZuIEHr94&list=RDUXvZuIEHr94&start_radio=1

지휘자님이 던져준 바흐의 모테트 <Lobet den Herrn> 악보 위에서 내 눈은 길을 잃었다.

"나는 누구 여긴 어디?" 이 황망한 탄식이 입 밖으로 튀어나오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인 순간이었다.

빠른 곡의 진행과 여기저기서 치고 들어오는 다른 파트들의 공격에 만신창이가 되는 것도 모자라, 곡이 끝날때쯤엔 반쯤 넋이 나가 있었다.

이 정도의 인지 부하를 견뎌낼 수 있다면, 치매 예방에는 이보다 더한 직방이 없겠다는 실없는 생각이 스쳤다.

테너 단원조차 희귀한 그곳에서, 나는 발가벗겨진 채 무대에 선 기분이었다.

박자를 놓치고, 음정을 사냥하듯 헤매며 진땀을 뻘뻘 흘릴 때마다 기이한 환청이 들려왔다.


"머스마가…"


그렇다.

30여년 전 단칼에 꿈을 거절당한 그 소년이 거기에 서 있었고, 그 소년은 성장하여 보란 듯 ‘인생극장 ver.2’를 살고 있었다.


이제 와서 왜 이 고백 같은 고생을 사서 하느냐고 묻는다면, 사실 대답은 그리 숭고하지 못하다.

그것은 CFO의 향후 원대한 비전이나 혹은 고상한 취미활동보다는, 불안정한 스타트업의 전장에서 당장의 생존 능력을 배가시키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에 가까웠다.


예측 불가능한 변수가 난무하는 자본 시장의 격전지에 비하면, 차라리 정해진 질서 안에서 사투를 벌이는 음표와의 싸움이 훨씬 견딜 만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초견도 안 되고 발성도 엉망인 이 연습실에서 내가 흘리는 진땀은, 사실 15년간 숫자로 세척해 온 내 영혼의 불순물을 씻어내는 과정이었다.


정교하고 체계적인 완성도를 요구하는 고음악 합창단.

이곳은 적당히 유연하게 타협하며 살아온 스타트업 임원에게는 지옥 같은 훈련소였지만, 한편으로는 아버지의 단언이 틀렸음을 증명하고 싶은 소년의 마지막 전쟁터였다.


비명조차 지를 수 없던 'CFO 모드'가 꺼지는 순간, 나는 철저히 성실한 구성원이 되어 바흐의 수학적 질서 속으로 침잠한다.


장소를 바꿔가며 이어지는 고단한 연습 속에서, 조금씩 소리의 성전이 세워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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