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한국의 "법"차이
"미국이 더 살기 좋은가요?"
"미국에 왜 이민 오셨나요?"
미국에 살고 있는 내게, 이런 질문들을 하는 한국 분들이 종종 있는 편이다. 최근에 아주 유니크한 질문이 있었는데. 미국이 한국보다 살기 좋다면. 뭐가 제일 좋은지 딱 한 단어로 말해달라 하는 친구가 있었다.
내 대답은 "법"이었다.
그게 지난 몇 개월간 너무 많은 한국 뉴스에서 검찰개혁이니 사법개혁이니 또 체포, 영장 같은 얘기를 듣다 보니 그런 말이 나왔을 수도 있지만. 미국에 살다 보면 한국과 정말 다른 것 중 하나가 법이라고 느끼는 게 사실이다.
내친김에 한국과 미국의 다른 "법 " 시스템에 대해 써보자고 생각했다.
한국과 미국의 법 시스템은 기원, 구조, 그리고 법관 임용 방식에서 근본적인 차이를 보인다. 두 나라 모두 법치국가지만, 법이 만들어지고 해석되며 적용되는 방식에는 뚜렷한 차이가 존재한다.
한국은 프랑스·독일 등의 대륙법 전통을 계승한 성문법 국가이다. 사회 규범을 구체적으로 성문화한 법전이 모든 법의 근간이 된다. 법률은 국회에서 제정되며, 행정 부령 등은 법률 하위에서 정해지는 일사불란한 위계구조다. 실질적으로 법 해석은 법조문에 근거해 이루어진다. 참고할 만한 판례가 있다 해도, 판례 자체가 법의 원천 역할을 하지는 않는다. 따라서 재판 과정에서 “몇 조 몇 항에 해당한다"라는 법조문 중심 논리 전개가 보편적이다.
미국은 영국의 전통을 이어받은 커먼로(판례법) 국가다. 법은 입법기관에서 성문법으로 만들어지기도 하지만, 실제로 쟁점의 대부분은 과거 유사 사건에 대한 법원의 판결(판례)을 근거로 삼는다. 새로운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법원이 이를 심리하고, 해당 판결이 이후 유사 사건의 직접적 법적 기준이 된다. 한 사건에 적용될 수 있는 판례가 수십, 수백 개에 이르기도 한다. 법률 해석 역시 다양하게 이루어지며, 판례를 찾아 설득력 있게 적용하는 것이 로펌과 변호사의 핵심 전략이다. 이처럼 판례가 법의 실질적 원천이 되는 시스템은 참신한 대응과 빠른 법 발전에는 유리하지만, 국민적 토론과 입법 과정에서 이뤄지는 절차적 민주성이 약하다는 단점이 있다.
법원의 구조도 다르다. 미국은 연방 법원과 주법원이 이원적으로 구분되어 있다. 연방 법원에서는 연방 법률 또는 미 헌법과 관련된 사건만 다루며, 각 주의 법원은 주 level의 사건을 담당한다. 한국은 일원적 3심제로, 지방법원-고등법원-대법원 체계로 통일되어 있다.
법관 임용방식은 양국의 차이를 가장 뚜렷하게 드러낸다.
한국은 판사, 검사 등 사법공무원을 국가가 임용한다.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졸업과 변호사시험 합격 같은 자격 요건을 갖춰야 한다. 대법관이나 대법원장은 대통령이 임명하고, 판사는 대법관 회의 등을 거친다. 모든 법관이 일정 임기를 두고 연임 심사를 받는 임기제다.
미국은 연방대법관 및 연방 법원 판사의 경우 대통령 임명, 상원 인준을 거쳐 뽑고 종신직으로 일한다. 임기 제한이 없으며, 사퇴·사망 또는 탄핵 외에는 신분이 보장된다. 주 법원은 상황이 다르며, 상당수 주에서 대법관부터 하급 판사, 지방검사장(DA), 주 법무장관까지 주민이 직접 선거로 선출하는 제도를 실시한다. 판사 선출 방식과 임기는 주마다 다양하다. 보통 몇 년 단위로 임기를 두거나 임명 후 재신임 선거(retention election)를 거치는 방식을 쓴다. 대부분의 선출직 판사·검사·법무장관도 반드시 변호사 자격을 필요로 한다. 아주 드물긴 하지만 비법조인이 선출되기도 한다.
여기서 큰 차이가 발생한다. 한국 뉴스를 보면 법관이나 검사가 얼마나 정치적이며, 집권 정치 세력이나, 재벌이나 기득권 세력에게 우호적이며 등등... 불평이 가득하다. 하지만 그 해답을 시스템에서 찾으려 하는 듯하다. 가령 기소청이란 걸 만든다 든지 하는 것 말이다.
미국에 오래 살면서, 원치 않게 재판소도 좀 드나들어보고. 변호사비도 제법 내본 사람의 시각에서. 중요한 건 결국 판결을 내리는 판사의 건강함이 매우 중요하더란 느낌이다.
대부분의 미국 판사들은 정말 잘 듣는다. 서두르는 것도 없이 이말 저말 다 들어준다. 한국 같으면 벌써 호통쳤을 만한 뻔한 얘기도 곧잘 다 들어준다. 그리고 웬만해서는 고등학생도 알아들을만한 대화 끝에서 옆집아저씨 같은 판결을 한다. 무슨 몇 조몇 항 같은 얘기? 그런 거 알기나 할까 싶은 표정들이다.
그럴 수밖에, 내가 본 대부분 판사들은 젊어서 유명한 로펌에 있었거나 꽤 잘하는 변호사였고. 지금은 판사이고 또 아주 큰 확률로 이게 마지막 직업일 것이고. 수입? 대부분은 이거 안 해도 먹고사는데 지장 없어 보인다. 오히려 이걸 안 하는 게 돈벌이에는 더 좋을 사람들. 평생 나 같은 고객들에게 이 소리 저 소리 다 듣고 살아와서, 웬만해서는 "네가 그렇게 얘기하겠지" 하는 표정으로 곧잘 내 불평에 맞장구도 쳐준다. 변호사 기질이 남아 있어서 그런가 싶기도 하다.
특히 대법원 판사쯤 되면, 임기도 없어서 뭐 재벌회장님이 오든 대통령이 오든 누가 오든 상관이 없어 보인다. 나이들도 많아서 별로 미련도 없어 보이고. 너무 오래 이런 일을 해서 그런가... 감정적이지도 않아 보인다.
미국에서는 학교 나와서 "변호사 자격시험" 그거 하나 따면. 판사, 검사될 수 있다. 사법고시 그런 거 없다. 무슨 사법연수원 몇 기 그런 거 없다. 그냥 변호사로 또는 지방에 쥐꼬리 봉급 검사로 살다가 인정받으면... 한 번쯤 판사 출마해 볼까 DA나 법무장관이나 출마해 볼까, 고민하는 정도인듯하다. 그런 사람들 중에 맘에 드는 사람을 투표로 선발해서 쓰고 있는 것이 미국이다. 대법원을 제외하면 임기가 있으니. 맘에 안 들면 담에 안 뽑으면 그만이다.
검찰을 어떻게 바꾸고. 법원 개혁을 어떻게 하고. 그거 앞서서 선발 방식을 바꿔보는 게 낮지 않을까? 검사들도 따지고 보면 공무원인데, 하는 걸 보면 조선 시대 조정 대신 못지않은. 무슨 세도가 도련님 놀이를 하려 들지 않는가?
사람이 주무르려 하면 아무리 좋은 걸 가져와도 손이 탄다. 좋은 손을 가진 양심 있는 자들이 자리에 앉게 해주는 시스템이 아니고서는, 한국의 "법"은 나아지지 않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