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 인터뷰
4월의 어느 날 늦은 오후. 부슬부슬 내리는 비 때문인지 창밖은 어두웠다. 시야 안에 모든 게 뿌옇게 보이는 탓에. 마치 우주 안에 어딘가를 유영하는 기분이었다. 드론 택시의 실내는 무광 회색이었다. 따뜻해 보이는 주황색 유도 장치 등의 빛이 번져. 마치 반딧불이가 떠있는 듯해 보였다.
속으로 중얼거린다 '좀 늦으려나'
“첫 단독 인터뷰치곤 너무...”
작가 나은비는 지난주, 칼 같은 어조로 말했다.
'가서 잘 들어. 듣기만 해도 돼, 인터뷰보단 ‘대면 청취’에 가까울 거야. 질문 최소화해. 회장님은 혼잣말을 인터뷰로 착각하는 스타일이더라'
그 말이 농담이 아니었단 걸 일성은 곧 알게 된다.
진동. 앞 유리 우측 하단. 통화 승낙 버튼이 깜박인다. 단비다.
“여보세요?” 일성의 목소리는 약간 떨린다.
“일성아! 드론 탔어? 위치 봤어. 원산이라니, 우와… 진짜 그 회장 인터뷰 한데? 근데 혼자 가는 거야?” 단비는 채 화면 해상도가 최적화되기도 전에 문장 다섯 개를 뱉었다. 단비는 말이 정말 빠르다.
“응. 혼자야. 은비 작가님은 다른 일정이 있어서.”
“미쳤다. 최민영이면… 그 사람 100살 넘지 않나? 그 사람 형이랑 동생도 바이오 쪽 대기업 아니던가? 세습 귀족이네 진짜. 부럽다. 나도 그런 사람 한번 보고 싶다. 우리 같은 코드젠은 평생 한 번도 못 만나볼 확률이 더 높을 거야 아마. 이걸 운이 좋다고 해야 하나”
단비의 목소리는 밝았다. 언제나 밝다. 말끝을 흐리지 법이 없다. 그런 점이 일성은 늘 부럽다.
“너 조심해. 그런 사람들… 오늘 절대 실수하지 마. 딱 걸리면 얄짤없어 그런 사람들.”
“무서운 말 하지 마. 가뜩이나 힘든데.”
“농담 아니고. 나 군에 있을 때 데이터 정리하면서 그 집안사람 한 명 것 파일 한 번 봤거든. 솔직히 궁금해서 열어봤지. 근데 신기한 게 우리보다 더 정보가 없어 정말 이름하고 주소만 나오는 수준이더라. 심지어 생년월일 미상이야. 그리고…”
삐— 택시의 한 내음이 단비의 말을 끊었다. “도착까지 3분 남았습니다.”
“어쨌든, 목소리 좀 펴. 오늘부턴 너도 역사 속의 한 문장이야. 파이팅."
전화가 끊겼다. 일성은 한숨을 길게 내쉬며 셔츠의 단추를 다시 확인했다. 드론이 마지막 곡선을 돌며 저택 전경이 눈앞에 펼쳐졌을 때, 그는 자신도 모르게 욕을 뱉었다.
저건… 누군가의 집이란 느낌 보다 요새 같았다. 바다가 내려 보이는 산마루에 자리 잡은 이 거대한 저택은 멀리서 보면 바빌론의 공중정원 같다는 첫인상이다. 완만한 곡선의 담장, 겹겹의 보안 울타리, 그리고 수목으로 덮인 진입로. 마지막 굴절을 돌자 집이 나타났다. 회백색의 직선 구조물이 계단처럼 층층이 이어졌고, 중심부는 탑처럼 솟아 있었다. 그리고 중간중간 보이는 검은 기와와 장식들. 옛 조선 건축 양식과 브루탈리즘의 기묘한 혼합이었다. 그 아래, 깔끔한 백발의 노신사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조지 알마니 광고에 나올법한 모델 같은 단정함이다.
“이일성씨 맞으시지요?”
“예… 맞습니다.”
“회장님은 서재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루비야 가자.”
루비?
입구에서 정중히 신발을 벗고 걸음을 옮기려는 찰나, 갑자기 뭔가가 발등에 닿았다.
“웁—!”
그것은 강아지였다. 진돗개와 보더콜리의 혼종, 얼룩무늬 털에 앞발만 붉었다. 적갈색 페인트라도 밟은 것처럼...
“아, 루비입니다.” 집사는 태연하게 말했다. “회장님의 유일한 반려입니다.”
서재는 저택 중심부에 위치해 있었다. 8미터 족히 넘을 것 같은 높이의 천장, 눈에 띄는 물리학 서적들, 오래된 가죽 소파. 최민영은 거기, 과거의 사람처럼 앉아 있었다. 밀랍인형 같은 차가운 창백함 안에 유독 맑고 총기 서린 눈빛이 묘한 분위기를 만든다. 루비는 그런 회장님의 발아래쪽에 엎드려 나를 쏘아보듯 쳐다본다.
“왔나?”
그는 생각보다 작고 마른 노인이었다. 감색 블레이저 안에는 반짝이는 셔츠를 입고 있었다. 그 위로 왼쪽 눈이 조금씩 떨리고 있었고. 가슴팍에는 훈장 비슷한 배지가 두 개, 달려 있었다.
“자네가 글을 쓴다지? 나에 대한 기록을.”
“예. 은비 작가님의 보조입니다. 오늘은 미리 말씀 나누고 싶은…”
일어나 창가로 천천히 걸어가며 말을 시작했다.
“나 어릴 때 말이지. 이 원산은 아직 바다 냄새가 나던 도시였어. 지금 같은 이 시멘트 냄새 말고.”
일성은 자동 녹음기를 켰다. 회장은 이어서 말했다.
“난... 74세 때 이 집을 지었네. 원래는 여기가 전쟁 피난처였어. 이 산 아래는 주둔지였고... 고려-연해주 갈등, 기억하나? 그때 이 집이 처음 생겼지"
최 회장은 창가에 비스듬히 걸 터 앉으며, 말을 이어 나간다. 루비는 그런 회장의 발밑으로 조르르 달려와 다시 엎드렸다.
"저 밑에 저 건물 보이지? 그때 저 자리는 군대 막사 자리였는데 지금은 저게 LFP야 저거 지을 때 이 집도 같이 지었다네.”
회장은 멀리 산 아래 희미하게 보이는 흰색 건물을 무심히 바라보며 말했다.
일성은 눈을 찡그리며 멀리 보이는 흰색 건물에 집중했다. 곧 그 건물의 위용에 속으로 감탄했다. 원산도 대도시이니 LFP가 몇 개 정도 있을법한 일이긴 하지만. 지금 보이는 저 건물은 그간 보아온 LFP 시설에 비해서도 훨씬 크고 우아해 보였다. 매일 저곳에서 새로운 아이가 태어나는 곳. 이상하게 생각해 본 적은 없었지만. 저곳을 직접 지은 사람과 같이 그곳을 내려다보는 감정은 특별하다고 생각했다.
LFP, Life and future prosperity group 우리는 모두 그곳에서 나고 자란다. 아주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일성 또한 그곳에서 나고 자랐지만. LFP 시절의 기억은 희미하다. 보통 5세 이하 기억은 그렇다고들 하지만. 일성은 이상하게도 아주 어릴 적 기억은 거의 없다시피 하다.
일성은 숨을 삼켰다. 회장의 눈동자가 이상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시간과 공간이 흐릿해진 듯한 말투. 그는 진짜로 ‘과거를 산’ 사람 같았다. 아니, 어쩌면 과거에서 금방 다시 돌아온 사람처럼 말했다.
“우리는... 사람을 더 만들기 위해 사람을 사라지게 한 거지.”
“예? 그게 무슨…”
“아무것도 아니야. 다음 질문하지.”
"회장님은 LFP 시설 사업에도 많은 관여를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대략이라도 직접 시공하신 시설이 몇 군데 정도 될까요?"
회장은 머리를 쓸어 올리며. 일성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다시 창밖으로 시선을 돌리며 대답을 이어갔다.
"국내로 보면 그리 많지 않지. 오륙십 개 정도... 국외로까지 생각해 보면 정확히는 몰라도 우리 회사가 시공한 곳이... 수백 개는 될 거야"
그 뒤로도 회장은 자신의 젊은 시절의 얘기, 가족들 화목했지만 경쟁적이었던 가족들의 얘기, 동북 건설 붐 시절의 부패, 그에 따른 고백 아닌 고백, 일부이긴 자기가 성공했던, 하지만 방위산업청과의 조금은 은밀한 거래까지 거침없이 화제를 이끌어 나갔다. 준비한 질문은 크게 쓸모가 없었다. 대부분은 대화는 즉흥적이었고. 살아온 긴 세월만큼, 그가 지닌 사회적 지위만큼, 그의 인생에서 사건은 많고 복잡했다.
일성은 혼란스러웠다. 이 인터뷰가 이렇게 가도 좋을까 싶어질 즈음, 이미 예정했던 한 시간 반의 인터뷰 시간이 지나버렸고. 깔끔한 아르마니 집사가 방에 다시 들어왔을 때. 일성은 어떤 안도감 같은 걸 느꼈다.
돌아오는 길, 서울 시내로 접어들 즈음 정일하에게 전화가 왔다.
“야, 인턴 주제에 회장 인터뷰? 넌 진짜 운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모르겠다. 실제로 보니까 어때?”
일성은 웃었다.
“회장님… 좀 이상했어. 자꾸 시대를 혼동하고, LFP에 대해 묘한 말도 했고…”
“그 나이에 안 이상하면 그게 더 이상한 거지. 근데 너 진짜 몰랐냐? 최민영 집안이 고려 특별계획 1세대 ‘공적 계약자’란 거?”
“공적 계약자?”
“국가랑 계약 맺고 인공 출산, 도시개발, 정보 보안까지 맡은 사람들. 말하자면… '민간 정부' 같은 존재였지. 지금은 겉으로만 조용한 거고.”
정일하의 말이 이어졌다.
“그런 사람들 곁에 오래 있으면... 뭔가 묻게 돼. 이 세상에 대한 질문 같은 거 말이야. 그거, 위험해.”
일성은 대답하지 않았다. 드론 택시는 조용히 서서히 내려앉고 있었다. 멀리, 도시의 붉은빛이 어른거렸다. 그는 창밖을 바라보다가 문득 회장의 개, 루비의 앞발을 떠올렸다. 적갈색 붉은 털. 루비라... 그래서 개 이름이 루비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