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 계약
"비, 너 이집 회사에서 나오는 거야? 전망이 너무 좋은데? 한강도 좀 보이잖아. 요 앞에 공원이 아파트 단지 내 공원이야? 엄청 큰데?"
"맞아 단지 내 공원이야. 외부인은 못 들어올걸? 이집 보조금 받는 거야. 회사에서 가까워서 이리로 이사 오면 급여 받을 때 보조비 좀 얹어줘. 일 더 빡세게 시키려고 그러는 거 같아"
단비는 웃으며 말했다.
"아! 저 공원 가운데 푸드코트 있거든. 거기 새로 요거트스무디 가게 생겼더라고. 걸어갈 수 있는데! 이따 가볼래?"
"좋지" "좋아"
일성과 일화가 동시에 대답한다.
단비의 아파트는 41층 단비는 38층에 산다. 4구역 아파트 중에서 제일 높고. 단지도 크다. 여러 개의 장방형 구조물이 늘어선 전체 단지는 거의 5천 세대쯤은 넉넉히 되어 보이는 규모였다. 일성에게는 자주 오는 단비의 집이고. 자주 본 창가 풍경이지만 창밖을 내려다보는 걸 즐기지는 않는다. 약간 고소공포증이 있는 걸까 생각했다.
"난 높은 게 좀 무서워서 그렇더라... 아카데미 때 생활동은 다 낮은 건물이잖아. 지금 나 사는데도 그렇고 다 저층이라서"
일화가 의외라는 듯이 말한다
"너희는 아직 주택 무료 임대 기간 아니야? 이왕이면 이런 좋은 데로 해주면 좋지... 크레딧 더 내는 것도 아닌데. 경찰 쪽은 턱도 없다고"
뭐라 단비가 말하려는데. 현관 쪽에서 은은한 벨 소리가 들렸다. 단비가 달려가서 모니터를 확인한다.
“계란말이 덮밥 왔다!”
단비가 로봇 카트에서 포장 용기를 꺼내며 말했다. 일성은 조심스럽게 뜨거운 갈비탕 그릇을 옮겼다.
단비는 리모컨으로 창가의 공기정화기를 한 단계 더 올렸다.
“이거 진짜 유명한 집이야. 갈비탕 맛집이던데 이 집, 아! 근데 가격이 사악해"
단비는 괴상한 표정으로 찡그리다가. 곧 밝은 표정으로 밝게 변해 말했다. 이 여자... 왜 연기 쪽이나 예술계가 아니라 공학계인지... 시스템이 실수한 건지 의심스럽다고 생각하는 일성이다.
"이게 원래 예전에는 웨딩 음식이었다 하던데...”
“결혼식?”
일하가 웃으며 되물었다. 단비는 계속 말을 이어나간다.
“아니, 그냥 문득. 이제 그런 게 다 없어졌잖아. 요즘은 더 배우자 계약도 더 안 하는 것 같지 않아.”
“제도는 남았잖아. 필요하면 하는 거고.” 일성이 조심스레 말했다. “그렇게 책임감 있게 살아서. 뭔가... ‘때가 되면 해야 한다’는 마인드?”
“정확한데. 성실해.” 일하가 숟가락을 들고 말했다. “근데 진짜 궁금해서 그러는데. 너희 둘은 어디서 처음 만난 거야?”
단비는 고개를 들어 일성을 바라봤다. “우린 아카데미 마지막 학년 때 같은 프로젝트 반이었어. 그때 학교 체육시설 운영 관리 시스템 관련 과제를 같이 했지.”
“그리고 단비가 진짜 무서웠지.” 일성이 웃으며 말을 받았다. “모든 걸 48시간 안에 제출하게 만듦.”
“그땐 너 너무 느렸어. 지금은 나아졌지만.” 단비가 찜찜한 듯 말했다.
“그래도 그땐 덕분에 A+ 받았잖아.”
일하가 그릇을 내려놓고 팔짱을 꼈다.
“근데 가끔 아카데미 교육이 너무 정해진 느낌 들지 않아? 난 지금 특수 아카데미에서 추가 과정 받고 있잖아. 언어랑 정보처리 다 다시 배워야 해. 생각보다 우리가 아카데미 때 받은 교육이 딱 초급 관리자 수준이더라고.”
일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그 생각 했어. 느끼는 게 비슷하겠지... 다들 비슷한 LFP 출신 코드젠이니까"
일성은 잠시 숨을 고르듯 멈췄다가 말을 이어나간다. 낮은 목소리 마치 혼잣말처럼...
"근데, 너무 잘 짜여 있어. 마치 태어날 때부터 어떤 직무를 맡을지 정해진 것 같기도 하고… 처음 보조작가 인턴하러 갔을 때, 면접 끝나고 은비 작가가 그러더라고. 딱 그 시기에 보조가 필요했는데 경력청에서 내 소개가 들어온 거라 하더라. 경력청 인턴이면 자기가 월급 주는 것도 아니니까... 얼씨구나 받은 거지”
“운명 같네?” 단비가 씩 웃었다.
“근데 너무 정확하니까 좀 무섭지 않아?” 일성이 조용히 덧붙였다. “내가 경력청 데이터베이스에서 골라져서 딱 거기로 소개되었다는 게... 그리고 인터뷰 한 번에 결정돼서 같이 일하게 되고.. 뭔가 조립식 프라모델처럼 척하고 맞는 게 신기하고...”
“그래서 시간 낭비가 없잖아.” 단비가 단호하게 말했다. “배워야 할 게 얼마나 많은데. 어릴 때부터 재능을 발견해서 가르치고, 시간 아끼고, 바로 사회에 투입되고. 난 이게 훨씬 효율적이라 생각해.”
정일하가 고개를 젓는다. “효율이야 뭐 말할 게 없지… 인공지능들이 운영하는 건데. 진짜 문제는 우리 스스로 뭘 원하는지, 그걸 고민할 기회조차 없다는 생각은 들어. 나도 내가 지금 하는 경찰 일이 좋지만, 어릴 때 정말 그게 하고 싶었는지 하는... 그런 기억은 안 나.”
“근데 일하 넌 지금 정보기업 쪽 준비한다며? 이차 인터뷰 끝났다고 했지 저번에?” 단비가 물었다.
“응. 특수 아카데미 6개월 과정 마치면 입사 허가 나. 조건부 이직 확정 상태지. 근데 아카데미 마지막 평가가 ... 그게 좀 까다로워서... 아직 100%는 아니야.”
세 사람은 식사를 마치고, 근처 산책을 나섰다. 대화 없이 천천히 걸어가는 세 사람. 목적지는 새로 생긴 요거트 스무디 가게. 불빛이 퍼지는 밤거리에는 산책 나온 사람들, 무음 전동스쿠터, 그리고 자동청소기들이 어지럽게 교차하고 있었다. 4월의 밤이 아직 차가워서인지. 아니면 너무 잘 정리된 공원의 산책로 때문인지. 일성은 알 수 없이 스산한 느낌이라는 생각을 하며 걷고 있었다.
“근데 진짜, 배우자 계약 같은 거 너희는 할 생각 있어?” 정일하가 갑자기 물었다.
“모르겠어.” 단비가 손을 주머니에 넣으며 말했다. “직접 사업 같은 걸 운영하거나 대단하게 세금을 걱정할 수입이 있는 것도 아니고. 지금 생활... 아무 불편함도 없는데?”
“그래도 안정되잖아. 세금도 줄고. 장기적으로 보면.” 일성이 답했다.
“넌 하고 싶어?”
“때가 되면... 하는 게 나을 수도 있지.”
정일하가 고개를 갸웃했다. “진짜 레거시들이랑은 사고방식이 다르긴 하다. 그 사람들은 웨딩 세리머니에, 예식장에, 여행에... 크레딧을 물 쓰듯이 며칠 사이에 써버린다 하더라고. 그런 걸 하나의 ‘의식’으로 생각하는 것 같더라. 우린 그게 없고, 그냥... 계약.”
“난 그게 더 좋아. 간단하고 명확해서.” 단비가 끊듯이 말했다.
요거트 스무디 가게에 도착했을 때,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단비?”
단비가 돌아보자, 은은한 색상의 코트를 입은 여성이 다가오고 있었다. 어깨까지 오는 짧은 머리, 날카로운 눈빛. 단비가 밝게 인사했다.
“지원! 너 여기서 뭐 해?”
“나 지금 일 마치고 집 가는 중인데. 여기에 우리 팀 매니저가 여기 살아서... 잠깐 만나고 가는 중이야. 너는?”
"지금 시간이 몇 신데... 야근도 한다고? 미쳤네... 일을 그렇게 많이 시키면 돈 더 주나?" 단비가 큰소리로 마치 분개한 사람 마냥 제스처를 써가며 열변한다.
"아니 그거보다. 다음 주에 며칠 쉬고 여행 가려고 미리 끝내놓고 가려고 그러는 거야. 이게 누가 시킨다고 하고 그런 일도 아니고"
"연구직은 그런 게 가능한가 보네. 좀 부러운데"
지원이 일성 쪽을 돌아보며 말한다.
"남자친구?"
단비는 큰소리로 웃으며 일성과 정일하를 소개했다. 네 사람은 테이블에 앉으며 요거트를 주문했다. 일성은 천천히 매장을 둘러보았다.
네 사람이 요거트 스무디를 앞에 두고 테이블에 앉았다. 매장 내부는 무소음 냉장 시스템과 자동 브루잉 디스펜서 덕에 조용하고 깔끔했다. 천장은 은은하게 빛을 내고 있는 소재다. 아마도 자동으로 조도를 조절하는 소재의 천장재 같은 것으로 보인다. 창밖으로는 공원 한켠의 산책로가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다. 가게는 제법 넓어 보였다.
'여기 너무 근사한데' 속으로 그렇게 혼자 말하며, 일성은 카운터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일하는 사람이 두 명, 그리고 요거트를 만들고 서빙하는 드로이드들이 많이 보인다. 그 외에 청소용으로 보이는 유닛이 둘, 낮 시간엔 좀 더 붐비는 것일까? 속으로 짐작해 본다. 꽤 많네.
“여기, 좋다.” 지원이 스푼을 들며 말했다. “우리 구역엔 이런 가게 없어. 이 가게 진짜 오픈한 지 얼마 안되었나 보네. 왜 몰랐지?"
“단지안 푸드코트라 그런지. 오픈도 금방 하고. 왠지 뭐가 다 빠르더라 여기는.” 단비가 말했다. “회사랑 연결된 단지라서 실험 매장 같은 것도 자주 생겨.”
“너희 회사 연구실도 이 아파트 단지하고 연결돼 있잖아. 너도 여기 살아도 되지 않아?” 정일하가 물었다.
지원이 어깨를 으쓱했다. “우리 팀은 기본적으로 외부 일이 진짜 많아. 그래서 사택 개념도 없고. 출근지도 유동적이야. 이번 분기엔 도심 쪽 실험 지구에서 근무하고 있어.”
“연구직이면 지금 어느 쪽 하는 거야?” 일성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식형 기억 조정 알고리즘 쪽. 기본적으로는 감정 기억이나 장기기억을 컨트롤하거나, 특정 조건에서 반응을 조절하는 프로토콜이야. 우리 쪽은 인체용 칩 상용화 준비하는데... 하긴 하는데... 아직 실험단계고, 민감한 주제라서…”
“아… 그건 꽤 위험한 쪽 아닌가?” 단비가 눈을 찌푸렸다.
지원이 웃었다. “그래서 보안 등급도 높고, 항상 짧은 단위로 근무 배정돼. 이번 건은 민간 쪽이 아니라 보건국 협업이라서 그나마 유연하고. 애니웨이... 난 뭐 아직 연구인턴이라서 일하는 게 정리 로봇 수준이니 뭐... 아는 게 아직은 별로 없다... 근데 이냥반들이 날 진짜 로봇으로 아나. 일을 그냥 쏟아부어버리는 게 문제야"
단비가 눈을 반짝거리며 지원에게 몸을 기울인다. "그러면 인체 칩 안에서 전자적인... 아니면 다른 무엇인가로. 우리의 감정이나 기억이라는 걸 저장 판독을 한다라는 거자나. 그게 일단 나라에서 허가가 나오기는 하는 연구야? 기술은 제쳐두고라도... 말이지"
지원이 빙긋 웃으며 대답한다 "그러니까 연구지, 허가가 확실하면 제조해서 나왔겠지... 수요 걱정 없는 아이템인데" 한 모금 스무디를 마시며 이어나간다 " 이게 10년 넘은 연구야. 연구 참여 학자도 전 세계적으로 보면 만 명 이상이고, 잘 안 알려져서 그렇지 성공하면 노벨상 수준 연구지!"
일하가 혀를 찼다. “난 그런 거 못해! 감정 알고리즘이라니... 무서워라.”
떠드는 사이 스무디가 완성되어 나왔다. 비주얼이 훌륭해 보인다. 보기만으로는 단백질 요거트라기 보단. 무슨 파르페 종류일 것 같아 보이는 비주얼이다.
서빙 드로이드에 손을 올려 계산하려는 일성을 제지하며. 단비가 말했다 "오늘은 내가 쏠게. 우리 동네잖아. 네 첫 인터뷰도 축하하고" 또 괴상한 표정을 지으며. 서빙 드로이드의 팔에 단비가 잽싸게 손을 올린다. 125크레딧. 생각보다 비싸네 생각하는 일성이다. "고마워"
일성이 고개를 끄덕이며 스무디를 한 입 마셨다. 요거트 안에 박혀 있던 젤리가 미묘한 쾌감을 줬다. 다들 감탄하며 스무디 칭찬에 한참 열 올리고 있는 중에. 갑자기 단비가 깜짝 놀라기나 한 것처럼 소리치듯 물었다.
"그 회장 인터뷰 어땠어?"
일화도 거든다. "그래! 최민영 회장 맞다. 그 얘기 해봐"
지원이 눈을 크게 떴다. “진짜? 최민영… 그 NCC 회장?”
일하도 고개를 돌렸다. “말을 너무 이상하게 하시더라 그랬잖아.”
“응. 뭔가… 계속 시대를 헷갈려 해. 말하는 게 과거인지, 지금인지 잘 모르겠고. 뭣보다 자기 얘기를 하는데. 살짝살짝 자신을 타자화해서 말하는 버릇이 있더라고. 그리고 뭐를 했다. 안 했다 이런 얘기들인데. 그 주체가 회장 자신인지. 그 회사 자체인지도 애매하게 얘길 하더라고"
일화가 말을 끊는다.
"나이 들어서 그런 거 아냐? 100살 넘었다며..."
"아니라고 생각해. 눈빛도 그렇고 말투도 그렇고 지능으로나 인지능력 같은 게... 그런 쪽으론 노화 흔적이 별로 없어. 모르고 만나면 70대로 보일듯한 정도야. 그리고 중간에 LFP 얘기를 했는데... 뭐라 했더라... 아! ‘사람을 만들기 위해 사람을 없앴다’는 그런 말도 했어. 좀 이상한 인터뷰이긴 했어”
지원의 얼굴이 굳었다.
“그 사람들… 진짜 1세대 계약자라잖아. 레거시 중에서도 완전 예외적인 사람들. 정보 통제가 워낙 세서, 기록도 거의 없어. 분명 바이오 특권층이긴 하지만, 동시에… 국가 시스템과 연결된 가장 오래된 고리잖아.”
다들 지원을 빤히 쳐다본다. 단비가 낮은 목소리로 거든다.
"공공운영 시스템 관련 기업 중에 레가시 패밀리가 직접 운영하는 기업이 많지는 않지. 그것도 대외에 이렇게 알려진 기업으로는 더욱 없을 거야"
일화도 한마디 덭붙인다.
"더군다나. 몇 대를 이어서 LFP 관련이나 에너지, 바이오 쪽 대기업을 운영한다는 게... 엄청난 거지, 자세히 보면 거의 경쟁자도 없는 회사들인데... 일성이 너 대단한 사람을 만난 거네!"
일성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그리고 그 회장님 얘기로는 국내 LFP만 아니라 해외에 비슷한 시설도 관여하신 것으로 얘기하시더라고... 시스템 설계자 같은 것이었을까. 그 사람들..."
“LFP. 난 그냥… 너무 잘 짜여 있는 이 시스템이, 어쩌면 거기서부터 출발한 건 아닐까 생각했어. 태어나고 자라서... 경력청의 데이터베이스로 들어가기전에... 에콜, 아카데미를 거치고, 마지막엔 인턴 배치… 다 자연스럽지만, 너무 정확해서... 이런 게 다 자연스럽지 않게 느껴져.”
단비가 조용히 말했다. “너무 정확하니까, 효율적이지. 그러니까 이런 세상이 가능했겠지. 말도 안 되는 숫자의 인구 감소, 인공 출산 시스템, 도시 재설계… 그런 거 다 효율 아니면 못 굴러갔을 거야. 우리가 역사를 잘 몰라서 그렇지. 분명 이렇게 발전한 이유가 있었을 거라고 난 생각해.”
“그건 그래.” 지원이 끼어들었다. “근데 운영 시스템이라는 게 항상 통제를 전제로 하니까. 우리도 모르게, 우리 선택지가… 실제론 없었던 건 아닐까? 그런 생각, 실험실에서 가끔 들어.”
일하가 헛기침을 했다.
“뭐야, 다들 오늘 왜 이렇게 어두워? 야, 왜들 이래 이거 응? 스무디 가게야. 부드럽게 가자... 진지한 얘기는 해 떴을 때나 하는 거지. 일과 후는 즐겁게! 오케이?.”
네 사람이 웃었다. 스무디 위에 얹힌 알갱이들이 조명을 받아 반짝였다.
그 순간, 단비가 테이블 너머 지원에게 물었다.
“근데… 넌 배우자 계약 생각 있어?”
지원은 조금 놀란 듯했다가, 씩 웃었다.
“나? 음… 언젠가는? 조건 좋으면 하지. 근데 굳이 지금? 그건 좀.”
일성이 물었다.
“조건 좋다는 게 뭔데?”
“서로 합의된 생활계획, 소득 수준, 거주구역 배정, 자산 이전 계획. 뭐 그런 거?”
일하가 푸념하듯 말했다. “그건 너무 합병 아니냐 그건… 결혼이라기엔”
“그러니까 계약이라고 하지. 이 시대 배우자와 같이 한다는 거... 감정보다는 계약이고 약속이니까.” 지원이 단호하게 말했다. “그리고 솔직히, 감정적인 커플들보다. 드라이한 쪽이 관계가 더 오래가더라.”
창밖에서 공원 분수 조명이 켜졌다. 빛은 둥글게 흔들리며 가게 앞 산책로 위를 비췄고, 자동 거리청소 유닛이 조용히 그 위를 스치고 지나갔다. 단비는 돌아오는 내내. 지원의 말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감정보다 약속이라'.
일성은 최 회장과 다음 미팅을 생각하며, 흥분인지 긴장인지 모를 감정을 느꼈다.
4월의 밤은 차가웠고. 네 명 모두의 이성을 어지러이 차갑게 만든 대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