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운 듯 머나먼
학창 시절 ‘친구’는 그냥 친구였다. 같은 반 친구도 친구고 옆반의 친구도 친구였다. 친구의
친구도 친구였고.
그러다 대학에 가서 처음으로 friend와 classmate를 구분하게 되었다. classmate는 학교에서는 친하게 지내는 것 같은데 서로 학교 밖의 삶 속엔 존재하지 않거나 희미한 사이였다. 사회생활을 하면서는 친구 대신 ‘동료’라는 개념이 생겼다. classmate에서 장소만 학교에서 사무실로 바뀐 관계였다. officemate랄까. 그리고 그것과 유사하지만 조금 더 친밀한 개념의 ‘동기’도 생겼다.
이 곳으로 이직을 할 당시 나는 회사를 선택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동시에 두 곳의 회사에서 합격통지를 받았기 때문이다. 다른 회사가 집과의 거리, 보수 등 근무여건이 월등했지만 나는 이 회사를 선택했다. 선택의 가장 큰 이유는 ‘동기’의 유무였다.
동기가 뭐 그렇게 중요하냐고 할 수도 있는데, 동종업이었던 이전 회사에서 1년 동안 제시간에 퇴근을 한 날짜가 전부 합쳐 두 달이나 될까 싶을 정도로 업무가 매우 고됐기 때문에 마음이 맞는 동료들의 존재가 없었다면 버틸 재간이 없었다고 생각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런 판단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동기들은 회사라는 이름의 지옥에서 2년의 시간을 견딜 수 있는 힘이 되어주었다. 그러나 이곳을 선택하지 않았다면 이만큼의 고통을 겪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기 때문에 나의 선택은 절반은 실패였다. 다른 곳 역시 그곳의 지옥이 있었을 테지만 이렇게까지 끔찍하지는 않았으리라 나는 확신할 수 있다.
지옥의 문은 입사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업무분장과 관련한 갈등을 겪으면서 조금씩 열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 번 열리기 시작한 지옥문은 자동문처럼 점점 더 벌어지기만 했다.
입사 후 반년 정도 지났을 때, 타 회사 정규직에 지원해 최종까지 간 일이 있었다. 그런데 일종의 첩보에 의해 내가 그 회사에 지원을 한 일이 사무실 전체에 퍼지게 되었고, 누군가 그 사실을 팀장에게 알리면서 휴가를 상신함과 동시에 팀장에게 회의실로 끌려간 일이 있었다. 팀장은 한 시간에 걸쳐 취조를 하듯이 휴가를 쓰는 이유에 대해 캐물었고, 결국 나는 울면서 면접을 보러 간다는 사실을 말하고서야 회의실에서 나올 수 있었다.
그 뒤로도 몇 번 더 다른 회사 정규직 최종을 경험했다. 그리고 그런 공고가 올라올 때마다 내가 그곳에 지원을 했는지 여부가 사무실의 화두로 떠올랐다고 한다. 지원 사실을 알린 적도 없는데 그다지 친하지 않은 기존 사람이 저녁 9시가 넘은 시간에 연락해 서류 통과 여부에 대해 물은 적도 있고, 인적성이나 면접시험을 보러 가서 만난 같은 사무실의 사람이 내 지원과 통과 여부에 대해 기존 사람들에게 알렸다는 이야기도 전해 들었다. 그때마다 나는 조금씩 더 힘들어졌다.
그렇지만 나를 가장 힘들게 한 사람은 동기 중 한 명이었다. 아마도 동기라는 이름이 붙은 사람에게 걸었던 기대감이 무너진 것이 가장 큰 이유였을 것이다. 사실 동기가 아니었다면 결코 가까이 지냈을 리가 없는 사람이었다.
이력서에 이 회사 이름을 한 줄 넣기 위해 입사했다며 곧 결혼을 해서 퇴사할 것이므로 오래 다닐 예정이 아니라고 했던 그녀의 계획이 오래 다니는 것으로 바뀌면서 그녀는 동기들의 동향을 우두머리들에게 제비처럼 물어 나르기 시작했다. 모처럼 휴가를 내고 놀고 있는데 그녀의 문자를 받고 황당했던 일은 그런 심증을 확신으로 바꾸어 주었다. 문자의 내용은 ‘면접 보러 갔어?’였다.
그녀의 이런 예의나 의리 따윈 상관없다는 듯한 배려 없는 말이나 행동은 다른 동기들에게도 예외는 아니었던 것 같다. 다만 나에게는 그 정도가 더 심했다. 한 번은 타 회사 정규직 시험에서 만난 적이 있었다. 내가 원서를 썼는지 몰랐는데 온 것이 의외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시험장 앞에서 마주쳐 인사를 하니 눈 앞에서 ‘누군데?’라고 하며 무안을 주었다. 그 시험에서 그녀는 1차에서 떨어지고 나는 최종까지 갔었는데, 그것을 합격자 발표를 하는 날 뒤늦게 알게 된 그녀가 내게 최종에 갔었냐, 근데 왜 말을 안 했냐고 하는 문자를 보낸 적도 있었다. 그날 나는 그녀에게 제발 이미 너무 힘이 드니까 부디 더는 나를 건드리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다.
우리 동기들은 회사에서 외딴섬 같은 존재였다. 그녀만 제외하고서 말이다. 우리는 회사에 을로서 소속되어 있었지만 정작 회사의 내부 사정에는 소외되어 있었다. 회사의 창구 역할을 하는 것이 우리의 중요한 업무였지만, 우리는 꽤 여러 번 우리에게 정보를 요청하는 상대방보다 이곳에 대해 모른다는 사실을 털어놔야 했으며, 신문을 통해 회사에 대한 동향을 알게 되기도 했다. 이런 우리 동기들에게 그녀는 때때로 ‘고급 정보’를 물어다 주었다. 아마도 동기들의 동향을 기존 사람들, 특히 우두머리 계약직에게 전달하고 얻은 물물교환의 대가였을 것이라 짐작한다. 그러나 그렇게 동기들의 생각이나 계획이 전달되는 것은 단순한 가십에서 끝나는 문제가 아니었다. 기존 사람들과 우리 동기들 사이의 벽을 높이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한 공간에 있었지만 기존 사람들과 우리 동기들은 함께 있지는 못 했다.
그녀는 프랑스인이 되고 싶어 했다. 인생에서 단지 3개월 정도를 파리에 머무른 적이 있다고 했는데 늘 프랑스를 그리워했다. 그래서 그런지 업무에는 도통 관심도 책임감도 느끼지 않는 것 같았다. 업무 시간에 결혼 준비를 하거나 sns에 심취해 있거나 인터넷 쇼핑을 하는 모습이 자주 보였고, 때때로 행선지를 알리지 않은 채 자리를 비웠다가 오곤 했다. 업무에 있어 부족한 성과가 드러나는 일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다.
그녀는 이곳에서는 나의 동기이자 신입으로 불렸으나 그녀는 이 업계에서 벌써 10년 가까이 일해왔다고 했다. 경력의 길이가 업무 능력과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나는 그녀를 통해 알게 되었다.
동기가 한 명씩 나갈 때마다 그녀는 일본 만화이자 영화인 <배틀 로열>을 언급했다. 급우들을 제거해 한 명만이 살아남는 게임을 하는 잔혹한 이야기인데, 이 이야기처럼 이 곳에서 우리 동기 중 최후의 생존자는 자신이 될 것이라고 말이다. 그렇게 동기 절반이 나갔고, 이번 희생자는 내가 될 차례였나 보다. 그래도 한때는 동기였기에 그녀의 바람대로 이어져 부디 그녀가 이곳에서 오래도록 행복하길 바란다. 우리 동기 중 유일하게 이곳에 있기를 간절히 원했고, 나에게는 지옥 같았던 이곳에 대한 만족도가 신기하게도 높은 사람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