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밑바닥에서 느끼는 감정
외국살이를 하면서 자주 마주하게 되는 감정들이 있다.
아련함, 그리움, 낯섦, 두려움......
그리고 외로움
혼자 남의 나라에 동떨어져 있어서 드는 감정이기도 하지만
외국에서는 다른 누군가와 함께 있을 때에도 마찬가지로
그 외로운 감정이 쉽게 사그라들지 않는다.
물론, 인간은 모두가 외롭다.
어디에서, 누구와 있든 외로운 감정은 공통적으로 느끼는 감정일 거다.
하지만 내게 익숙한 장소에서 느끼는 외로움과
낯선 장소에서 느끼는 외로움은 차원이 다르다.
어느 날 문득, 갑자기 그 외로운 감정이 뼈에 사무치게......
처절히 다가올 때가 있다.
그런 날은 예상치 못한 날에 갑자기 찾아오고
그건 불행히도 내 나라에 있을 때와는 다르게
더 버겁게 다가온다.
그것은 외국에서 살아 보지 않은 사람은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마음이다.
그럴 때는 어떠한 것도, 어떠한 타인의 말도 위로가 되지 않는다.
온갖 서러움이 밀려오고
'내가 왜 낯선 곳에서 그런 감정을 느끼며 살아야 하는 걸까'라는
근본적인 생각에 빠져 그 '외로움'은 나를 잠식시켜 버린다.
두 번째 해외 생활을 경험하면서 첫 번째 경험에서 느낀 외로움과
두 번째에서 느끼는 외로움이 다르다는 것을 실감하는 중이다.
첫 번째 해외 생활에서도 나는 분명, 그 공허한 외로움을 느껴 봤었다.
하지만 그때와 두 번째가 다른 점은
그때는 내가 그 나라에서 정착해야 한다는
의무감 같은 게 있었기에 느끼는 체감이 달랐던 것뿐이다.
나는 그때, 그 사회에 적응하려 애썼고
어떻게든 그 나라 사람들과 친해지려 했고
그 안에 있는 한국 사람들과도 협력하고 함께 하려 애썼다.
또 내 업적을 그 나라에 무엇이든 남기려 노력했기에
하루하루가 바빴고 '처절한 외로움'이 내 삶에 파고들 시간을
쉽사리 허락하지 않으려 애쓸 수 있었다.
어느 순간, 외로움을 느낄 틈이 없었고 나는 내 것을 지켜야 했다.
그리고 내가 책임져야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렇게 책임감과 의무감이 나를 지탱했다.
그리고 또 하나, 나의 공허함을 채워 줄 수 있었던
나의 강아지 '나무'도 내 곁에 있었다.
사람으로부터 받아야 했던 고통과 힘듦을
나는 '나무'와 지내면서 치유받을 수 있었다.
'나무'는 아침마다 같은 시간에 나를 깨웠고
내가 챙기지 않아도 마치 '나무'가 나를 챙기고 어루만지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그 시간을 버텼었고
지금도 나는, 나의 강아지를 잊지 못하고
아련한 그리움으로 기억하고 있는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일 거다.
두 번째 맞는 외로움의 크기와 정도는 첫 번째와는 많이 다르다.
가족으로부터, 내 일로부터, 사람으로부터,
모든 아픔으로부터 벗어나야 내가 살 수 있었다.
그래서 살기 위해 나는, 다... 내 모든 것을 꺼버려야만 했다.
지쳤고 힘들었고 아팠고...... 정말로 죽고 싶었다.
나는 삶에 아무런 미련이 없었다.
더 이상 상처받는 것도 싫었고 계속해서 속고 있는 내가 비참했고
아무렇지 않은 척 당당히 내 일에서 빛나는 내가, 스스로 자랑스럽지 않았다.
누구보다 강했지만 누구보다 여렸다.
누구보다 상처받았고 누구보다 아파했다.
하지만 누구에게도 그것을 내색하지 않았다.
나도 모르는 사이, 나는... 그렇게 13층에서 뛰어내릴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혼자 병원에 다니며 모아 두었던 약을
한 순간에 털어 넣어야겠단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의사 선생님이 내게 누구보다 건강하고,
누구보다 좋은 사람이라 말해 주셨지만
그 말이 위로가 되면서도 의미 없이 버거웠다.
나는 더 이상 누구에게도 빛나는 사람이 될 자신이 없었다.
사랑받고 싶었지만 사랑이 무기가 되어 나를 괴롭혔다.
진심을 다해 이해하고 다 내어주었던 내게
누군가는 계속해서 상처를 줬다.
나는 전생에 정말 나라를 팔아먹은 걸까?
나는 평범하고 소소한 행복 속에서 사랑받으며 살면 안 되는 거였을까?
나는 그때, 정말로 제정신이 아니었다.
벗어나지 않으면 금방이라도 내가 죽을 것만 같았다.
누구보다 건강했고 누구보다 건강했던 내 정신이
사람으로부터 여러 번 타격을 입은 후
나는 사라져 버렸다. 그래서 다시 흔적 없이 사라지고 싶었다.
벗어나고 싶었다. 그렇지 않으면 정말 죽을 것만 같았다.
한창 내 자리에서 빛나고 있었고
다들 나를 신뢰하고 믿었지만 나는 내 속을 털어놓을 수 없었다.
그래서 도망치듯 그렇게 해외로 파견을 지원해 버렸다.
그리고 처음 하고 싶어 했던 곳에서 마무리하겠다는 심정으로 그렇게 와버렸다.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해외 생활을 하고 있기에,
나의 외로움은 더욱 극대화되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이곳에서 정착해서 살아가도 괜찮을까'를 꿈꿀 무렵
또 한 번의 절망이 찾아왔고
그 절망에서 누군가가 나를 이해하고 도우려던 걸 믿었던 나는,
그의 차가움에 다시 한번 외로움과 헛헛함을 맛봐야 했다.
그저 헛헛했다.
진정으로 나를 생각하는 마음이 있었다면
나를 힘들게 하지도 않았을 거다.
누군가를 진정으로 아꼈다면
그 사람이 아파하는 행동은 하지 않았을 거다.
적어도 아픈 사람에게 다시 아픔을 주려고는 하지 않았을 거다.
이쯤 되면 그만해도 되지 않을까?
이제 그만 상처받아도 되지 않을까?
이 헛헛한 외로움은 언제까지 나를 따라다닐까?
마음의 평온을 주세요, 제발
신이 계시다면 제발...... 살려 달라는 외침을 들어주세요.
외로움의 밑바닥을 더 이상 경험하지 않게 해 주세요.
떠나보낸 나의 것도 제발 돌봐 주세요.
사랑받을 수 있는 행복을 주세요.
내가 놓친 내 소중한 이들을 제발 지켜 주세요.
그리고 아가야, 행복하렴
언제까지나 나는 너의 축복을 생각한단다.
더 이상 외로움의 끝자락에 끌려다니지 않도록...
외로움에 의해 내가 잠식당하지 않도록...
어떤 식으로든 외로움을 느끼게 만드는 이로부터 멀리~~~~
그렇게 떠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