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1년간 쉬기로 했다"

: 늦깍이 엄마의 스토리 -1화

by 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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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간 일을 쉬겠다고 선전포고를 했다.


애들 아빠가 작년에 정년 퇴임을 했고 아이들 학원비에 생활비라도 벌어야 할 상황을 감안 한다면 일을 안하겠다는 건 말 그대로 선전포고나 다름없었다.


남편은 56세의 나이로 정년 퇴임을 선택했다. 60세까지 일할 수 있는 임금 피크제를 포기했으니 은퇴를 ‘선택’했다는 표현이 틀린 말은 아닐 것 같다. 결혼하기 전 연애할 때만 해도 남편은 월급을 많이 주는 자신의 직장을 사랑한다고까지 얘기했다. 그렇게 자신의 업을 사랑하는 남편에 대한 믿음으로 나 또한 결혼을 선택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던 남편이 어느 때부터 자신의 업무에 대해 적성에 맞지 않는다는 말을 종종 하기 시작했고 언젠가부터는 그 빈도가 점점 더 늘더니 어느 때부터는 정년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다. 이런 남편에게 60세까지 할 수 있는데 해보라고 차마 말할 수 없었다. 남편도 행복할 권리가 있으니까...


늘 낙천적이고 긍정적이라고 자부했던 나였다. 성향과 문화가 정반대인 남의 사람과 20년이 넘는 결혼 생활이 당연히 녹녹했을 리 만무하다. 내 의도와 다르게 왜곡해서 받아들이는 시누와의 갈등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그러나 그때마다 ‘인생이 이런 거지’ ‘이렇게 또 한 번 성장하는 거지’하면서 꽤 그럴 듯하게 순간 순간의 위기를 넘겨왔고 솔직히 그런 위기 앞에서 무저지지 않는 내가 싫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내 꿈을 실현하면서 일과 양육을 병행하고 체력의 한계를 느끼면서도 열심히 키우려고 밤샘을 설치며 살았던 그 시절들에 대해서 때때로 짠함과 그런 내가 대견하기도 했다.


그런데 어는 때부터 감정이 널뜨기를 하기 시작했다. 문제는 맞물려 만사가 다 귀찮아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런 걸 소위 갱년기 우울이라는 걸까? 무엇을 위해 나는 그렇게 열심히 살아왔을까하는 반문도 들면서 그동안 쌓아온 경력도 무의미하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솔직히 따져보면 그렇게 우울할 만큼 절망적인 상황도 아니다. 당장 남편의 수입이 없다고 해서, 내가 일을 1년 정도 쉰다고 해서 재정이 무너질 정도도 아니다. 그동안 내가 열심히 쌓아온 것이 없어지는 것도 아니다. 1년 쉬고 다시 하면 된다.

아이들이 딱히 학교생활 적응을 못하는 것도 아니다. 남편과 너무 안 맞아서 부부 갈등이 심각해서 외로움에 치를 떨고 있는 것도 아니다. 하나부터 열까지 안 맞았던 남편과는 20년을 넘기는 생활 동안 조금씩 맞춰가면서 이제는 꽤나 서로의 시끄러운 속을 터놓을 사이도 되었다. 치열한 전쟁통에서 살아남은 소위 전우애같은 그런 감정이랄까..


그럼 이 우울감은 뭔지? 이 모든 것이 무의미하게 느껴지는 이 감정은 뭐지? 오히려 특별한 이유 없는 이것이 더 혼란스러웠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문제는 나는 이미 소진이 되었고 쉬고 싶다는 것이다. 내 체력이 방전 상태라는 것이다. 그러나 내 현실은 충전의 시간을 가질 수 없다는 것에 있었다. 이유는 내가 늦깍이 엄마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작년 인구조사통계(KOSIS)를 보면 초혼의 연령이 남녀 모두 2000년에 20대 중후반이었던 수치에 비해 2024년에는 30대 초중반으로 보고되고 있다. 통계가 말해주듯 이제는 30대를 넘어서 결혼을 하는 추세가 하나도 이상하지 않은 시대가 되었다. 비혼주의 및 결혼을 해도 아이를 낳지 않겠다는 딩크족도 늘어나는 추세임을 감안하면 신이 허락한 자연스러운 인간의 순리가 깨진 건 분명한 것 같다. 특히 만혼의 증가는 부모의 갱년기와 아이의 사춘기의 접점이 맞닥뜨릴 수 있다는 점에서 그리고 이것이 적절히 최선의 접점을 찾지 못했을 때 가정의 갈등과 상처로 고스란히 남을 수 있다는 점에서 간과할 수 만은 없는 지점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지금 난 그 문제의 지점 안에 있다.


나는 33살에 결혼을 했다. 최근 앞서 보고된 인구통계조서처럼 나 또한 30대 초반에 결혼을 한 것이다. 나의 언니들이 20대에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조금하다 27살쯤 결혼해서 조카들을 낳은 것에 비교하자면 나는 당시 여자 나이로는 늦은 나이었고 설상가상으로 변수에도 없던 긴 불임으로 정작 큰 애를 40에 출산을 했다. 그리고 계획에 없던 둘째를 43세에 출산을 했으니 늦어도 한참 늦은 나이에 엄마가 된 샘이다. 나와 50대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언니들은 벌써 조카들이 30세가 넘어 결혼을 하고 다들 굵직한 회사원이 되어 자기 앞가림을 하고 있어 언니들 자신들의 노후만 걱정하면 되는 상황이라는 것이 나와 다른 점이다.


태생적으로 아이를 좋아하는 성향을 갖고 있는 나였지만 일과 양육 병행의 어려움과 생리적으로 피할수 없는 체력의 한계 안에서 늘 끊임없이 맞닥뜨려야 했던 나의 딜레마는 지금까지도 계속 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결정적인 딜레마의 순간을 나는 지금 경험하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둘째가 초등 4학년이 되면서는 엄마 껌딱지에서는 벗어났지만 이제 슬슬 사춘기 무드가 간간이 느껴질 만큼 자기주장이 세지면서 방문 앞에 “노크하고 들어오세요” 라며 버젓이 고지문을 붙이거나 날 선 듯 자기 것을 주장하고 나서는 등의 새로운 국면의 양육이 예고 되고 있다.

중1 아들도 소위 중2 병의 진입을 얼마 남지 않은 상태라 다소 자기 영역에 대한 강한 주장이나 가족여행에서 불참권을 주장하기도 한다.


“왜 꼭 같이 가야해. 나도 혼자 남아 내 시간을 가질 권리가 있는 것 아냐?”


‘제법 컷네’ 나도 모르게 속으로 흠칫 놀라며 불현 듯 든 말이었다.

그러나 마음 한 켠에는 그런 대견함과 함께 어느 순간 밀려오는 서운함이란 놈이 맞물려질 때면 그 당돌함이 괘씸함으로 변질되 점차 다가올 그 무섭다는 갱년기와 사춘기의 호르몬 전쟁 상황이 그려지면서 숨이 턱 막혀올 때가 있다. 이미 체력은 패잔병인데 내 인생의 치열한 서막은 이제 시작인지도 모를 일이다.


언니들이 일찍 결혼해서 애 낳고 할 때 내 꿈이 더 중요하다며 결혼 생각 없다는 나에 대해서 엄마는 일찍 결혼해서 일찍 아이를 낳는 것이 시간을 버는 거라고 귀가 따갑게 얘기하셨는데 구태연 한 옛날 분이 하시는 얘기 정도로 치부했던 것이 늦은 나이 아이를 키우면서 후회스러움이 되어 남는다. 옛말에 ‘어른 말을 잘 들으면 누워서 떡을 먹는다’ 했던가 내 인생 내가 알아서 한다며 고집 피운 결과로, 엄마 속 섞인 결과로 지금 이렇게 고생하나보다 싶다.




이미 체력은 바딕이지만 자주 독립을 위해 애쓰고 분투하고 있는 아이들을 좀더 멋진 눈으로 대견하게 잘 봐주려면 지금 상태로는 어렵겠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여유가 있어야 할 것 같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체력을 키워야겠다. 그리고 내게 힘을 주고 행복 에너지를 줄 수 있는 나의 여가들의 리스트도 짜봐야겠다. 모처럼 이렇게 나를 정리하면서 힘이 솟는다.


그리고 오늘 난 오랫 동안 생각만하고 미뤄둔 배드민턴을 등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