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늦깍이 엄마의 스토리-4화
“요즘 애들 정말 대책이 없어.. 너무 개인주의고 이기적이라니까.. 상사가 있어도 시간되면 칼 퇴근이야.. 우리 때는 할 수 없었던 일을 한다니까...”
오랜만에 만난 동창 모임에서 하나둘 자신과 함께 일을 하는 한참 어린 직장 동료에 대한 이야기가 화두로 꺼내지면서 혀를 내두르며 시작된 얘기는 결국 MZ 세대가 문제라는 식으로 귀결되며 마무리 되었다.
아마도 한참 어린 직장 동료가 자신들의 자녀의 나이와 비슷하기 때문에 더 감정 이입이 되었을 지도 모를 일이다. 아님 MZ 세대들과 함께 할 우리 사회에 대한 걱정과 우려를 넘어 우리 때 상상하지 못했던 발칙한 생각(?)들을 행동에 버젓이 옮겨 그 뒷감당을 눈치를 보며 해야 하는 아량 넓은(?) 우리 세대들의 신세타령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 이면에는 반대급부적으로 자신들이 그렇게 살아보지 못한 부러움을 넘어 아쉬움과 억울함이 깔려있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사실 MZ세대란 밀레니엄(M)과 Z세대를 묶어 부르는 말로 인터넷 소설미디어에 익숙하고 최신 트렌드에 민감한 세대를 부르는 신조어이다. 그러나 이들 세대들이 보이는 관계 특성으로 이해 다소 개인주의가 강한 특성으로 분류되기도 하다.
사회는 언제나 일정한 시대를 지나고 나면 새로운 패러다임이 그 사회와 문화를 지배하고 그 시대의 사람들의 생각을 지배하면서 사회 풍조를 만들어내기 마련이다. MZ세대들이 보이는 사회 문좌적 양상은 분명 우리 때와는 질적으로 다른 측면이 있는 건 맞는 것 같다.
그들은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했던 집단 안에서의 조화나 개인의 희생과는 거리가 멀어졌으며 자신의 삶이 사회적 이익보다 더욱 중요시 되었다. 간절한 마음으로 어렵게 직장에 들어왔음에도 그들은 사회 내규를 지킬 책임보다 법에서 정한 노동권리를 더 중시하고 그러한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고 나선다. 조직보다 내가 더 중요하며 이것은 권리이기 때문에 타당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반대로 이것에 대해 이해를 못하는 기성세대가 그들은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
조직을 위해 나를 희생할 각오가 있었던 우리 시대와는 다른 이들의 양상에 조직 내에서는 암암리에 이러한 보이지 않는 갈등을 경험하고 있는 것 같다. 물론 이 곳에서도 눈치것 빨리 상황을 파악하고 발 빠르게 적응하는 기성세대나 MZ세대들도 있겠지만 문제는 심리적으로 융통성이 부족한 경직된 사람들에서 있다. 이들은 이러한 서로가 이해되지 않음으로 아니 상대로부터 이해받지 못함으로 조직 안에서 계속된 심리적 소진을 경험하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경직된 사람들의 특징은 상대를 이해하려고 하기보다 자신이 이해받기를 원하기 때문에 둘은 영원히 평행선일 수 밖에 없다.
이러한 MZ 세대들이 지배하고 있는 이러한 개인주의적 발상에는 우리 사회 풍조의 영향과 무관하지 않다. 이는 어떤 규칙이나 선, 기준이라는 답이 있었던 모던니즘을 지나 모든 것에 답이 없음을 중시하는 포스트 모던니즘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이라는 변화기류의 변화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들 MZ 세대들은 그러한 사회 속에서 길러진 전형적인 세대라고 할 수 있다.
지금 초등학교를 다니는 아이 덕에 우리 아이가 계속적으로 아동 인권을 교육받고 있음을 알았다. 그 교육의 내용을 아이의 입을 통에 들어보면 굵직하게 정리될 수 있는 것이 나는 소중한 사람이고 타인의 경계를 침범하면 안되며 자신의 선택은 모든 것이 옳으며 부모도 자신의 선택을 존중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과 자칫 이러한 이해의 상충으로 부모가 만일 체벌을 가할 경우 경찰의 신고를 통해 법적인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실제로 융통성이 부족한 FM 성향의 아이들의 경우는 부모가 체벌하면 경찰에 신고해야 하는 줄 알고 아동학대로 신고하는 경우가 왕왕 있는 웃푼 일도 벌어지고 있다고 한다. 이것은 결국 부모 이전에 법이 너희를 보호할 것이다라는 것이고 어찌보면 사적인 부보자녀 관계에도 법이 깊게 관여하겠다는 것이기도 하다.
어쨌든 이렇게 교육을 받은 아이들은 큰 틀에서 보면 자신을 지키고 존중할 가치가 있다고 배운다는 점에서, 정답이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선택이 중요한 가치라는 점에서 상당히 존중받는 교육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것의 맹점이 있다는 것이 간과된 측면이 있다. 여기서 안타까운 것은 부모도 부모가 처음이라 아이를 키우고 여러 훈육의 실패를 통해 부모도 아이도 성장한다는 것이 간과되었으며 여기에는 이미 완전한 부모상이 전제되어져 있다는 점이다. 또한 여기에 자신의 권리 이전에 책임과 의무, 역할 등은 많이 간과 되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부모들은 아이들의 위험한 선과 기준이 없는 행동들에서 어떤 식으로 교육하면서 선과 기준을 심어줘야 하는지가 사전에 교육되어져 있지 않다는 것이며, 체벌이 갖는 법적인 의미 등도 사젼에 교육되어져 있지 않다는 것이다. 여기서 간극의 심화가 발생된다. 교사들 또한 아동권리를 어겼을 시 받을 수 있는 징계의 위험으로 인해 자유롭지 않음으로 인해 제자로써 따뜻한 유대를 형성하는데 제한된 측면을 경험하고 있다. 그리고 이것은 오롯이 어른의 경험을 빼앗긴 아이들의 몫이 되고 만다. 즉 아이들이 현실에 잘 안착하기 위해 기준과 선을 가르칠 수 있는 사람은 부모이고 선생님인데 그 역할을 하는 사람들의 역할과 존중이 너무 축소되어져 버렸다는 것이 오늘의 가족들과 사회를 위태하게 하고 있다. 그래서 정작 위기 상황에서 아이들을 바르게 안착시킬 수 있는 힘이 약화되다 보니 이들은 자신의 욕구와 선택만이 너무 중요해졌다.
문제는 이렇게 성장 된 아이들의 사춘기는 가히 상상을 넘는 행동들이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단순히 일탈이 아닌 어른들의 나쁜 행동을 흉내 내고도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는 아이들이 너무나 많아졌다. 그리고 실제로 범죄에 연류된 연령은 예전에 비해 너무 많이 낮아졌다는 데이터가 그 실상을 보여준다. 또한 이들 세대들은 자신이 너무 중요하기 때문에 자신과 맞지 않음 이혼 또한 너무나 쉽게 생각하고 지신들이 책임져야할 아이를 두고 이혼을 결정하는 경우 또한 예년에 비해 상당히 그 수가 많아지고 있다.
물론 때에 따라서는 이혼을 할 수 있다. 때로는 그 선택이 오히려 건강한 경우도 있다.
그러나 문제는 자기가 더 중요해지면서 자신의 행복을 위해 타인과 맞추고 조율하는 과정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진정한 인생의 의미나 어른이 되는 과정에서 필요악일 수 있는 고통의 과정 등을 겪어내는 결혼의 숭고한 의미 등이 그닥 중요한 요소가 아닌 것이 되고 있다는데 있다. 이는 특히 진정한 어른의 경험이 부재한 채 핸드폰과 유투버에 끊임없이 노출되어 성장한 아이들이 많으며 타인과 교류하고 맞추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채 성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학교에서 관계갈등을 겪을 때 미숙함으로 벌어진 상황에 대해서 훈육을 통해 성찰하고 배워나가기 이전에 바로 [학폭신고]란 절차를 통해 옳고 그름만을 가르고 거리두기로 일관하면서 서로의 상처만 남은채 성장의 과정이 일축되어지고 있다는 것도 중요한 변수 중 하나일 수 있을 것 같다.
이렇게 성장한 이들에게 관계는 그냥 끊임없이 자신의 과시를 봐주는 인스타의 도구일 뿐이며 타인과 마찰을 안만들면 그만인 것이 된다.
물론 틀에 가두는 사회도 문제지만 너무 틀이 없어 나만 중요한 사회도 너무 위험한 건 마찬가진 것 만은 분명하다. 사회적 기준이나 제약의 틀은 줄었을지 모르나 내면의 틀과 방어는 더욱 커져만 가고 있다.
이것은 우리 사회가 그동안 너무 경직된 집단주의로 개인의 존중이 무시됨으로 인해 빚어진 상처와 분노로 인한 반대 급부로 형성된 사회기조로 보여진다.
그러나 모든 사회의 변화는 과거부터 늘 정.반.합의 과정을 통해 발달해 왔듯이 나는 과거의 집단주의의 반대급부로 형성된 극단적 개인주의가 어느 정도 지나고 나면 적정한 합을 찾아낼 것이라고 믿는다.
다만 그 과도기에 우리 가정이 있으며 우리 아이들이 있다는 것이다.
특히 전혀 다른 정반대적 세대의 조합인 우리 가정이 이 과도기의 사회 속에서 잘 살아남고 순항하기 위해서는 경직되지 않는 유연함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혜"가 필요한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