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아직 그 자리야

제발 저 좀 내버려 두세요

by 최앤

회사 사람들은 나를 고인물로 여긴다.


8년 전 본사에서 승진하고 이곳에 왔을 때 나는 그야말로 잘 나가는 에이스였다. 주요 부서의 보직을 줄줄이 맡으면서 꽤 성공적으로 일을 처리해 나갔다. 일도 일이지만 간부, 선후배 들과의 인적 네트워크도 잘 구축했다. 당시 나는 고인물로 보였던 선배들의 정체된 삶을 이해하지 못하고, 안 그런 척하면서도 은근 선배들을 무시했다. 다음 직급으로 승진할 때가 되면 아이들을 데리고 본사가 있는 곳으로 이사할 생각이었다. 남들보다 빠르게 적어도 늦지 않게 승진하고 간부가 되어 다시 이곳으로 올 장밋빛 계획을 갖고 말이다.


하지만 그 장밋빛 계획은 곧 무산되었다. 첫째가 5학년이 되던 해,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5년 전 나는 남편의 동의를 얻어 두 아이들 데리고 본사가 있는 도시로 이사를 하려고 했다. 하지만 막 사춘기에 접어든 첫째는 절대로 친구들을 떠나 다른 지역으로 이사하지 않겠다고 완강하게 거부하였다. 아이들이 저학년 때에도 회사일로 많이 바빠 제대로 챙겨주지 못했는데 또 내 욕심부리자고 끔찍이 가기 싫어하는 아이를 데리고 이사할 수가 없었다. 나는 결국 본사로 가지 못하고 그냥 여기에 주저앉았다.


본사 전입의 포기는 승진의 포기였다. 승진을 위해 아이들을 떼어 놓고 가고 싶지 않았다. 아이들의 소중한 청소년기를 멀리서 응원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 결정에 한 번도 후회한 적은 없었다.


하지만, 주변의 반응이 항상 나를 불편하게 했다.

"본사 갔으면 벌써 승진했을 텐데... "

"입사동기들은 본사 가서 승진하거나 곧 승진할 텐데 왜 아직 그러고 있어"

처음에는 마음에 상처를 입기도 하고 한 귀로 흘려버리려 노력했지만 이제는 좀 그만해주었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나 역시 이전엔 본사에 가지 않고 있는 선배들을 보며 어쭙잖은 충고를 하곤 했다.

"선배님, 동기 00 선배가 먼저 승진한다고 생각해보세요. 얼마나 기분 나쁘시겠어요. 빨리 본사 갈 방법을 생각해보시는 게 좋지 않아요?"


이제와 생각하면 주제넘게 떠들어대던 내 입을 꼬매버리고 싶을 정도로 민망하다. 좁은 소견으로 승진과 사회적 지위라는 단순한 잣대를 갖고 지껄였으니 나는 얼마나 어리석은 사람이었나. 그때 나의 충고를 말없이 듣던 선배들은 지금의 나와 비교해보면 그야말로 성인이다.


이제 내 주변에서 나에게 충고하려는 사람들에게 큰소리로 외치고 싶다. 저는 퇴근 후에 아이들과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어요. 승진과 바꿀 수 없는 행복이에요. 그러니 제발 저 좀 그냥 내버려 두실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