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한낮의 햇살은 따스함 보다 따끔하게 느껴집니다. 시원한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간절해져서 테이크아웃 전문점에 들어섭니다.
"어서 오세요"
반가운 인사말과 서늘한 카페 안의 냉기가 밖의 따끈한 온기를 밀어내는 것이 싫지 않습니다.
시원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하고 기다리는 동안 문득, '어서 오세요'라는 인사말이 머릿속에 맴돕니다.
"어서" 빨리, 서둘러 오라는 말인데 그 말이 궁금하고 재밌어지더군요.
“어서”라는 부사는 표면적으로 재촉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빨리 오라는 말, 지체하지 말라는 말. 그러나 그 속을 들여다보면 단순한 속도의 요구를 넘어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기다림의 다른 이름이기도 합니다. 이미 누군가를 마음속에 들여놓고, 그 사람이 오기를 앞당기고 싶은 마음, “어서”는 밀어내는 말이 아니라, 오히려 당겨오는 말이지 않을까?
그래서 '어서 오세요'라는 말은 단순한 인사가 아니라 한국인의 시간 감각과 정서 그리고 삶의 리듬이 한순간에 응축된 문장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흔히 우리나라의 “빨리빨리”라는 문화 현상을 조급함이나 성급함으로 해석하기도 하는데 그 근원에는 어쩌면 시간에 대한 독특한 감각이 자리 잡고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기다림을 길게 늘어뜨리는 대신, 순간을 당겨와 함께 하려는 의지.
그래서 우리는 느긋하게 머무르기보다는 재빨리 도착해 함께 하는 쪽을 택하는 방향으로 선택된 언어로 “어서”가 자리 잡은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을 해봅니다.
가게 문을 열며 '어서 오세요'라고 말하는 순간, 그 공간은 단순한 상업의 장소를 넘어서 아직 관계가 형성되 기 전임에도 불구하고 이미 환대는 시작되는 그런 마법 같은 언어.
'어서'는 관계의 예고편 같습니다.
아직 모르는 사이지만 이미 가까워지려는 의지, 그 한마디에 낯섦을 줄이고 거리를 좁히는 힘이 담겨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 말이 명령처럼 들리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어서는 분명 재촉의 형태를 띠고 있지만 그 음성에는 부드러운 곡선이 녹아 있습니다. 그것은 서두름 속에서도 상대를 배려하는 태도, 속도를 요구하면서도 마음은 앞서 나가 환영하고 있는 상태인 겁니다.
그래서 우리말의 '어서'는 급하지만 따뜻할 수밖에 없습니다.
어쩌면 한국인의 삶은 늘 두 방향으로 동시에 흐르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하나는 앞으로 더 빨리 나아가려는 흐름, 또 하나는 서로를 향해 가까워지려는 흐름, '어서'는 그 두 흐름이 만나는 지점입니다.
시간은 재촉되지만, 관계는 그 안에서 깊어지는 그러한 지점이 바로 그곳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도 말합니다.
'어서 오세요'
그 말속에는 단순한 환영을 넘어 당신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고백이 담겨 있습니다.
시원한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잔과 함께 빠른 속도로 밖으로 나섭니다.
따끈하다 못해 따끔한 3월의 마지막 날이 '어서' 끝나가는 봄이 아쉽게 느껴지는 하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