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을 보았다

by 봄날의 북극

노인을 본다.


출근이 끝난 아침시간, 도로는 점점 한산해졌다.

늦은 출근길에 다급하게 달려가는 자동차가 간간이 보일 뿐 느긋한 도로 위 차분한 아침일 뿐이다.


도로에 면한 가게들은 아직 셔터를 올리지 않은 곳이 많다.

아침 손님을 맞기 위한 가게들은 밤새 추위를 피해 가게 안에 넣어둔 화분을 꺼내거나 가게 앞을 쓸고 있는 곳도 있다.

아르바이트생으로 보이는 젊은 남자는 앞치마를 한 채 가게 유리문을 닦고 있다.

지난밤 소란스러웠을 술집 앞은 지금은 조용히 잠든 사자처럼 고요하다.

건너편 야채 가게 앞도 마찬가지로 부지런한 손님들을 한 차례 보내고 난 뒤인지 조용하다.


그때 한 노인을 보았다.

노인 특유의 구부정한 자세와 이제는 다소 답답해 보이는 패딩을 입고 등에 등짐을 지고 있다.

등짐은 박스를 개조해서 만든 것인지 튼튼해 보이지는 않는다.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박스를 윗부분을 도려내고 끈을 얽어서 등에 매고 있다.


그는 느릿하게 한산한 도로가 옆을 걷는다.

세월의 흔적이 그대로 지나간 듯한 하얀 백발이 고단해 보이는 것은 그의 느릿한 걸음 탓일까.

앞으로 둥글게 말린 그의 어깨 때문일까

아니면 초라한 박스가 그의 삶의 고단함을 보여주는 것 때문일까


그를 할 일없이 본다.

그가 짊어진 박스 안에는 무엇이 들었을까?

마침 그가 당도한 곳은 한차례 분주한 손님이 쓸고 지나간듯한 야채 가게 앞이다.


노인은 가게로 들어선다.

조금 뒤 그가 돌아 나온다.

등 뒤 박스는 그대로이다.

그가 발길을 돌려 나가는 순간 허름한 박스의 하단이 툭 트어졌는지 궁금했던 박스 안의 것들이 바닥에 쏟아진다.


주먹만 한 감자들이 길 위에 도르륵 사방팔방 구른다.

노인은 감자들을 본다.

가게에 주인으로 보이는 사장이 나온다.

도르륵 굴러가는 감자들을 사장이 황망히 추스르려 하고 있다.

하지만 노인은 박스를 짊어진 채 텅 빈 시선으로 바라볼 뿐이다.


마침 신호가 바뀌어 차를 출발시킨다.

백미러를 통해 본 거리의 그 풍경들은 오래된 다큐멘터리의 낡은 추억 같은 모습이다.

백미러를 통해 감자 하나가 도로 위로 툭 떨어진 것이 보인다.


출근이 끝나 한산 한 도로를 달려간다.

그의 등짐이었을 감자 하나가 언제까지나 도로륵 도르륵 텅 빈 마음에 굴러 다닌 그날.

나는 노인을 보았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