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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오늘은 달리자/달리는 신의 아들

by 봄날의 북극

[대문의 사진은 구미에서 왜관을 향해 달려가는 중간 지점에서 바라본 낙동강변]


달려 봅니다.

가끔 기분 내키는 대로 나는 달립니다.

오늘도 그런 기분으로 달려봅니다.



어린 시절, 그러니까 초등학교 2학년이나 4학년 사이, 나는 달리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학교에서 집까지 1km 남짓한 거리도 달립니다. 방에서 화장실 까지도 거의 뛰다시피 달립니다. 그 시절 화장실은 방을 나가 공용으로 사용되는 화장실이 마당에 있었습니다. 그 짧은 거리도 급하지 않음에도 달립니다.

친구를 만나러 가는 길도, 마음이 답답해져 골목을 느릿느릿 걷다가도 불현듯 깨닫듯 달렸습니다.


나이가 들어가며 달리는 횟수가 줄었지만, 달리는 거리는 늘었습니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버스를 타고 등하교를 해야 되는 곳으로 진학을 했습니다. 주말이면, 그러니까 토요일에는, 그래요 그 시절에 토요일은 오전 수업이 있었습니다. 버스비를 아낄 겸 그 먼 거리를 달렸습니다. 뛰다 걷다 했지만 결국 달려서 집까지 갔습니다.

비가 억수 같이 내리던 날에도 흠뻑 젖은 채로 달렸습니다. 그렇게 달리다 보면 속이 뻥 뚫린 것 같은 해방감을 느끼곤 했는데 그 기분이 좋았었던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거리를 산정하고 심박수를 생각하고 거리에 따른 속도를 예측하고 체계적으로 달리는 게 아니라, 그저 달렸고 숨이 차면 걸었던 날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운동삼아 뛴 적은 없었습니다. 정말 기분 내키는 대로 달렸습니다. 체육시간에 종종 했었던 오래 달리기 측정에 자신 있었던 것도 달리는 건 나의 일상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체력장의 오래 달리기에서 형평 없었던 기록이었던 걸 보면 달리는데 자신은 있었지만 오래 달리기 위해서는 천천히 달려야 한다는 걸 몰랐습니다. 출발의 신호와 함께 냅다 달리기 시작한 나는 100m 달리기를 하듯 한참을 달렸습니다. 모두가 그런 나의 속도를 보고 깜짝 놀라워했습니다. 놀라움도 잠시, 빠르게 지쳐가서는, 3백 미터 남짓 지나서는 걸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신의 아들이라 믿었던 그 시절 모두의 감탄이 내가 마땅히 받아야 할 압도적 위엄에 대한 경이로움이라고 믿었습니다. 경이로운 순간이 고작 3백 미터 밖에는 안 되었지만.


그 당시 달린다는 것은 내가 뛸 수 있는 최대한의 속도로 달리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최대치의 속도로는 1km도 달릴 수 없었습니다. 신의 아들이 어찌해서 1km도 완주할 수 없을까 고민하며, 어쩌면 내가 신의 아들이 아닌가,라는 의심도 잠깐 품었든 듯합니다. 하지만 고작 1km를 완주하지 못 한다고 해서 신의 아들이 아닐 것이라는 성급한 의심을 도리도리 두 번으로 날려 버렸습니다.



그 후 대학을 가고 술을 마시기 시작하면서 달리는 행위는 점차 줄어들었습니다. 가까운 거리를 이동할 때조차 달리는 일은 거의 없어졌습니다.

다소 빠른 걸음이긴 했지만 달린다는 행위와는 거리가 멀어졌습니다.


직장을 다니고 일상이 피로한 하루하루를 보냅니다. 결혼도 하고 술배는 점점 나오고 체력은 저질이 되고,

아, 이제는 건강을 위해서, 아니 생존을 위해서 운동이 필요하겠구나 하는 나이가 되고서야. 가끔 러닝 머신 위에서 달렸습니다.


심폐기능이 많이 약해져서 잘 달리지는 못 했습니다. 예전처럼 내가 뛸 수 있는 최대 속도는

얼마인지

가늠도 안됩니다.

그리고

그렇게

달렸다가는

도가니가

나갈

거라는

불안

감도 있습니다.

그냥

빠른

걸음으로

걷고

조금

달리고를

반복합니다.


생존을 위한 수단으로 여러 가지 운동을 했었습니다. 수영도 하고 웨이트도 하고 요가도 하고 어쩌다 필라테스도 하고 몸은 조금씩 나아짐을 느낍니다. 철인 3종이라도 해 볼까 하는 욕심이 들 때쯤 밖에서 달려보자 하고 가볍게 입고 가볍게 달려 보았습니다.

바람이 불고, 햇살이 머리카락을 어루만지듯 쓰담합니다. 예전처럼 달릴 수 있는 최대 속도 말고 느리더라도 멀리 갈 수 있는 달리기를 해봅니다.

좋았습니다.

달린 다는 것 어린 시절에 무작정 달리던 것 과 같은 달리기는 아니지만 이렇게 달리는 것도 기분이 좋습니다.

여전히 체계적인 준비와 계획적인 달리기는 아니지만 가끔, 오늘은 좀 달릴까 하면 가벼운 복장으로 낙동강변으로 갑니다.

다행히 집 앞이 낙동강이라 달리기에는 좋습니다.

[칠곡보를 바라보면 달리는 중에]


그래서 오늘도 달려봅니다. 준비운동도 없이 마무리 운동도 없이 그저 달립니다.


이런 식의 달리기는 아마도 급속도로 몸이 안 좋아질 겁니다. ㅎㅎ


알면서도 저는 득 대신 독이 될 가능성 높은 달리기를 합니다.

신의 아들이었다면 괜찮을 지도 모르지만, 진즉에 신의 아들이 아님을 깨달은 나는 분명 달리기에 대한 새로운 준비를 하지 않는 다면 후회 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압니다.

그래도 오늘 기분이 달려야 된다 합니다.

[목표했던 반환점인 11.2km에서 수분 보충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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