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시작!
성인이 되기 전까지만 해도 나에게 해외여행은 너무 먼 이야기였다. 가족들과 일본으로 패키지여행을 한 번 가본 것이 전부였다.
그러던 내가 '여행'을 내 취미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게 된 건 바로 대학교 2학년 때부터다. 무심코 지원서를 제출했던 '해외 대학 단기 파견 프로그램'에 운 좋게 합격하여, 여름방학 7주 동안 터키에서 교환학생으로 지낼 수 있게 된 것이다.
명목상으로는 해외 대학에서 수업을 듣고 공부하는 프로그램이었지만 나의 진짜 목적은 여행이었다. 비행기를 타고 12시간이나 날아서 거의 세계의 반대편까지 갔는데, 도서관에서 공부만 하고 싶지는 않았다.
방학 동안 터키 내의 여러 도시들과 주변 국가들을 여행했다. 수업이 있는 날에는 이스탄불 시내 곳곳을 둘러보았고, 수업이 없는 날에는 시간이 맞는 친구들과 8~9시간씩 야간버스를 타고 줄곧 다른 지역으로 여행을 떠나곤 했다.
터키 안에도 이스탄불, 괴레메, 파묵칼레, 페티예 등 여행할 만한 도시들이 수없이 많았다. 또한 이스탄불에서 12시간 정도 야간버스를 타면 인접한 국가인 불가리아까지도 갈 수 있었다.
때로는 저렴한 항공권을 검색하여 가까운 유럽 국가들로 떠나기도 했는데, 터키에서 유럽으로 가는 비행기 요금이 한국에서 일본 가는 정도의 가격이라서 더욱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었다. 그렇게 스카이스캐너와 구글맵을 끼고 사는 하루들은 정말 행복했다.
나에게 주어진 7주라는 시간은 너무 짧았고, 하루라도 어딘가로 떠나거나 새로운 경험을 하지 않으면 이 시간이 아까워서 몸이 근질거릴 정도였다. 살면서 처음 느끼는 몽글몽글한 기분이었다.
그렇다고 놀기만 할 수는 없었다. 파견 간 학교에서 여름학기 수업을 듣고 최소 3학점 이상 이수해야 했다. 나는 재료과학 수업을 들었는데, 중간고사 시험 전날 밤까지도 여행 중이었다. 친구들과 함께 헝가리 음식인 굴라쉬를 맛보고 부다페스트의 끝내주는 야경에 감동하고 있었다.
그래도 시험을 포기할 수는 없어서 부다페스트 공항에 도착해서부터 이스탄불로 가는 비행기 위에서까지 밤을 새우며 시험공부를 했고, 터키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시험장으로 향했던 기억이 난다.
어쨌든 그렇게 방학 동안 세계를 떠돌며 자유로운 여행자로 살았다. 매일 학업이나 진로에 대한 고민을 하며 치열하게 살아오다가, 그때만큼은 '오늘은 어디에 가볼까?', '오늘은 무슨 음식을 먹어볼까?'와 같이 단순하고 흥미로운 고민들로만 하루하루를 채워 나갔다. 그리고 그런 순간들이 쌓이면서 나도 몰랐던 나의 새로운 모습들을 발견해 나가고, 진정한 자유와 행복을 느낄 수 있었다.
'미래'가 아닌 '현재'를 살아갈 수 있었던 시간들이었다. 속세의 고민은 잠시 내려두고 오롯이 내 눈앞의 것들에만 집중하게 된다는 것, 그게 여행의 가장 큰 매력인 것 같다.
그때의 경험을 계기로 나는 여행에 제대로 재미를 붙였다. 그리고 그 이후로는 혼자서도 세계 곳곳을 돌아다닐 수 있게 되었다.
지금은 터키에서 돌아온 지 2년이 지나 대학교 졸업을 앞두고 있다. 어쩌다 보니 그때와는 다르게 현재보다는 미래를 준비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인지 아직 2년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자유롭게 세계를 누비던 그때의 일상들이 아득해지고 꿈 같이 느껴질 때가 있다.
그래서 요즘에도 심심할 때마다 목적지를 ‘어디든지’로 설정하고 최저가 항공권을 조회해 본다. 그리고 가끔은, 무언가에 이끌려 정말 떠나버리기도 한다. 얼마 전에도 학과 행사로 수업이 휴강이었던 며칠을 놓치지 않고 혼자서 3박 4일로 홋카이도에 다녀왔다. 어쩌면 나는 다시 그 여름의 자유를 찾고 싶은 건지도 모르겠다.
앞으로 살아갈 세상에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들이 많더라도, 내 손에 구글맵만 있으면 어디든 갈 수 있고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던 그때의 충만함을 잊지 않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