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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일권 Sep 20. 2024

빛 좋은 개살구

고래가 사는 세상

열대야 때문에 밤새 뒤척이다 눈을 떠 창밖을 보니 십오야 밝은 둥근달이 환한 낮으로 나를 비추고  있는 한밤중이다. 추석 즈음에 이렇게 더웠던 적이 내 기억에는 없는데 하여간 올해는 태풍도 한반도를 다 비켜 가는 걸 보면 이게 좋은 일인지 아닌지 잘 알 수는 없지만 세계가 가뭄과 홍수, 태풍으로 인해 난리를 겪고 있다는 뉴스를 접할 때마다 더 큰 재난으로 다가올 이상기후의 징후 일 거라는 추측만 해볼 뿐이다. 어젯밤에도  후끈한 열기 때문에  에어컨을 틀어놓고 잤지만 오싹한 냉기 때문에 잠을 설치다 결국  일어나 앉았다. 멍하니 달을 쳐다보고 있으려니 여러 가지 잡생각에 사로 잡히고 말았는데 문득 떠오르는 글이 德不孤(덕불고), 덕이 있으면 외롭지 않다는 집안벽 한 귀퉁이에 오랫동안 매달려 있다 언제인가 사라져 버린 액자 속의 글이었다.

내 친구들 중에는 유난히 딸 둘만 가진 친구들이 많다. 그런데 그중 두 친구는 딸내미들 나이가 40대 중후반인데도 결혼할 생각을 안 해 걱정이라며 만날 때마다 한 얘기 또 하고 하면서도 중매 부탁은 없었다. 그러나 얘기를 듣다 보면 은근한 자랑처럼 들리기도 다. 딸들 모두 직장이 튼튼하니 생활비는 물론 부모님 용돈도 충분히 챙겨주는 것 같았다. 그러나 여행은 엄마만 데리고 다녀서 늘 외롭다고 너스레를 떠는 친구 녀석의 불만 속에는 혼자만 있어 행복하다는 표정이 감춰져 있는 듯 보였다.  동병상련의 마음인 것이 같이 다녀봐야 개밥에 도토리 신세라는 걸 이미 터득 한  아버지들의 속마음 일 것이라 짐작되며 집에 혼자 남아 아무 간섭도 받지 않는 여유로운 시간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어느 친구의 딸은 30대 나이인데도 아버지 친구들 등산 모임을 따라다니는 딸이 있어 친구들의 이쁨을 받고 있는가 하면 아빠가 모임에 나가면 시간마다 전화해서 술이 많이 취한 거 같으면 아빠를 데리러 가겠다는 딸도 있다. 그런 친구 녀석들을 보면서 전생에 무슨 덕을 쌓았길래 저런 호사를 누리는 건지 잘 키운 딸 하나 열아들 부럽지 않다는 그 말이 정답인 거 같았다. 딸 같은 며느리 라는말 방송에서 자주 보고 듣는 얘기다. 나도 며느리가 하나 있어 남들이 그러니 나도 며느리와 부녀 지간처럼 지낼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지만 글쎄 내 생각에 그렇게 되기는 현실적으로 서로 어려운 관계라 판단했다. 난 며느리 이름을 부르고 있지만 집사람은 어멈이라 부르고 있고 또 오래 떨어져 지내다 보니 만나면 반갑긴 하지만 갑자기 살갑게 지낸다는 것이 뭔가 어색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앞서기에 며느리는 그냥 며느리로 남는 게 옳은 생각이라 결론짓기로 했다. 그리고 나는 아들 결혼식에 참석한 친구들의 과장된 입소문으로 인해 엄청 잘 나가는 아들의 아버지로 알고들 있다. 지금까지 나도 모르는 아들의 연봉에 대해 운운하며 홍콩의 외국계 금융회사에 다니니 연봉이 어마어마할 거라는 친구들의 짐작만으로 부풀려져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사실 난 아는 게 전혀 없으니 그저 꿀 먹은 벙어리처럼 지낼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보니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말은 빛 좋은 개살구에 소문난 잔치 별 볼 일 없다란  나를 두고 하는 말인 듯싶은데 이런 속사정을 털어놓을 데도 없으니 그저 입 다물고 지낼 수밖에. 사실 팔자에 없는 딸 타령은 부러운 내 마음의 표현일 뿐 아들 하나만 낳은걸 다행이라 생각하라고 스스로를 위로해 본다. 사실 오늘은  글로 옮기고 싶은 내용들꽤 있었던 것 같은데 더위도 더위지만 모기 한 마리가 책상 아래서 설치는 바람에 오늘 머릿속의 낙서는 여기 까지만 하는 걸로 하고 그만 노트북을  덮는다. 시월의 어느 멋진 날이 빨리 오기를 고대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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