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가 사는 세상
아직 밖이 어두운 이른 새벽 집을 나섰다. 용인 터미널에 가서 버스를 타고 대전 현충원 부모님 산소에 가기 위해서다. 밀리는 고속도로에 버스 전용 차선이 있어 다행 이란 생각을 하며 두 시간 만에 세종터미널에 도착 기다리고 있던 동생을 만나 먼저 부여 가탑사란 절로 향했다. 내가 이런저런 사유로 부모님 제사를 모실 수 없다고 하니 얼마 전 동생이 그곳에 부모님 영구위패를 모셨다고 해서 인사차 들리기 위해서였다. 세종시에서 한 시간 거리에 있는 그 절은 금강을 끼고 있고 또 바로 옆에 왕릉들이 있어 느낌이 괜찮은 곳이었다. 반갑게 맞아주는 스님에게 부지런히 인사를 마치고 돌아와 현충원에 들러 참배를 하고 나니 마음이 개운해졌다. 동생집이 있는 세종시로 돌아와 점심 겸 해서 소주 한 병씩 마셨다. 늘 느끼는 거지만 신도시라 그런지 음식맛이 오늘도 별로라는 생각에 뭔가 부족하고 허전한 마음에 오늘은 어디서 한잔 더해야 할거 같았다. 생각 끝에 돌아가는 길에 평택 사는 친구나 불러내 한잔 더할 요량으로 친구에게 연락했더니 좋다고 그랬다. 버스로 조치원 까지 간다음 평택 가는 무궁화 열차를 진짜 오랜만에 탔는데 고령자 할인까지 받고 나니 평온만 하면 참살기 좋은 나란데 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만나러 가는 친구는 고교동창인데 나와 같은 시기에 미국생활을 했던 사연 많은 친구였다. 미국서 영주권도 만들었지만 체질에 안 맞는다고 결국 고생만 하다 귀국해버리고 말았는데 혼자 지내고 있어 늘 마음이 쓰이는 친구다. 내가 좋아하는 통복시장 선지 해장국 집에서 만나 건강 얘기부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보니 이 친구 요즘엔 사주나 역학 이런데 관심이 많은지 그런 쪽 얘기를 많이 했다. 알딸딸한 기분으로 친구와 헤어져 집으로 오는 전철 안에서 피곤은 한데 술이 모자란 건지 생각이 많아졌다. 파렴치하다고 느껴지는 많은 인간들 속에서 섞여 살다 보니 세상에는 알 수 없는 일들이 너무 많은 거 같았다. 그중 하나가 무속신앙과의 관계다. 노스트라다무스처럼 큰 스케일은 아니더라도 미래를 예측한다는 예언가들은 세계 곳곳에 여럿 있는 걸로 알고 있다. 그런 사람들과 비교조차 할 정도도 못되지만 세상이 혼탁하다 보니 수시로 도사나 점쟁이들이 등장하는데 유튜브에서 까지 난리다. 아니면 말고 식이지만 어쩌다 하나 맞추면 얼마나 설레발을 치는지 가관이다. 이렇게 어수선한 시기에 특히 권력자 주변에 그런 부류의 사람들이 많이 관여되어 있는 거 같았는데 특히 이번 정부에서 그런 사람들이 많이 개입된 듯했다. 국가와 관련된 중대사에도 소위 도사나 무당 같은이 들이 끼어들다니 이건 너무 심각한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약에 의존하듯이 개인의 일도 아닌 국가에 관한 일을 무속인들과 의논했다는 얘기를 들으니 사실이라면 정말 기가 찰 노릇이었다. 그러고 보니 전에 있었던 일이 생각났다. 친구 부인이 무속인인데 그의 딸도 같은 길을 걷고 있다고 들었었다. 그러다 어느 날 친구집에서 우연히 그 딸을 만났는데 얘기 중에 내게서 아기동자가 보인다고 했다. 처음엔 무슨 얘긴가 했는데 말인즉은 내게도 神氣가 보인다는 얘기였다. 전에도 점쟁이로부터 그런 얘기를 들어본 적이 있어서 그래요? 하고 씩 웃고 말았지만 어쩌면 그럴 수도 있을지 모른다는 망상에 갇힌 적이 있었다. 그래서 가끔 어떤 사람을 유심히 보게 되면 그의 목소리나 얼굴에서 과거나 미래가 예견되는 경우가 있어 처음 보게 되는 사람인데도 자연스럽게 얘기를 건넨 적도 있었다. 그냥 가볍게 재미 삼아한 짓일 뿐이었는데 상대가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바람에 말한 나도 당황스러운 적이 있다.. 영화 파묘에서 처럼 무당의 신들린 그 모습, 지금은 어떤지 잘 모르지만 오래전에는 흔하게 볼 수 있는 광경이었다. 무당이 칼날 위에 서서 뛰고 있는 그 모습이 마냥 신기하기도 했지만 사실 무당의 춤사위보다는 그 뒤에 놓인 떡과 과일에 눈이 더 갔던 어린 시절이었다. 언제부터인지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굿판을 벌인 것은 아주 오래전부터 시작된 것으로 알고 있다. 산신제니. 풍어제는 물론 궁에서도 무당이 굿을 했었다고 들었다. 그런 걸 알다 보니 무속신앙에 관한 것들이 궁금해 좀 자세히 들여다보고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그런 생각 속에 지내는 요즘 우연히 듣게 된 아직도 그대는 내 사랑이라는 이은하의 노래를 서도라는 가수가 부르는 걸 듣게 되었다. 창을 했다는 그의 독특한 스타일은 물론 얼굴표정과 여성스러운 몸짓은 사람들을 충분히 매료시킬만한 매력이 넘쳐났다. 그러면서 이 친구 혹시 게이가 아닐까 하는 느낌을 지울수 없었다 서서히 젖어드는 그의 목소리는 만일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면 무속인이 됐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새벽녘 밖을 보니 안개 인지 미세먼지 때문인지 옆동이 안보일정도다. 요즘 냉랭하게 지내는 마누라에게 안개가 엄청 꼈다고 그랬더니 구름이라고 그런다. 그렇다면 그런 줄 알아야지 몸 여기저기가 안 좋아져 병원을 자주 다니다 보니 돈 잡아먹는 귀신이란 말을 듣는 처지이기에 그래 내가 신선이 되고 말지 하며 조용히 물러 섰다. 세상이 이렇게 돌아갈 줄 알았다면 일찌감치 미아리 고개에 자리라도 깔아볼걸 하는 생각에 쓴웃음만 나왔다. 일상이 별로 바뀔 일도 없기에 오늘의 운세 같은 건 아예 보지도 않지만 로또나 한 장 사게 좋은 꿈이나 한번 꿨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