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가 사는 세상
밤새 뒤척이다 일어나 침대에 걸터앉았다. 맑은 정신이 돌아오길 기다리다 결국 책상 앞으로 자리를 옮겨 앉았다. 새벽이 오려면 아직도 한참 남았는데 어디서 닭 우는 소리가 들린다. 정신 나간 녀석 지금이 몇 시인데... 하지만 세상이 어수선하니 저놈도 잠을 설치고 있는지 모른다. 아직 날이 밝으려면 3~4시간은 기다려야 하는데 그 시간을 어떻게 보낼까 하는 생각 끝에 이어폰을 걸치고 음악을 듣기로 했다. 한밤중에 늙은이가 잠도 안 자고 뭐 하는 짓인지 한심한 생각도 들긴했다. 허기야 글을 쓴답시고 밤을 새운적이 한두 번도 아니었기에 모든 걸 체념한 듯 멍하니 앉아 있을 수밖에 없었다. 내가 잠 못 드는 이유가 뭘까! 이제 3월도 다지나고 이틀후면 4월인데 그야말로 잔인한 달이 될 것 같다는 예감 때문일지도 모른다. 말러의 교향곡이 귓전을 맴돌았었는데 잠시 졸다 보니 어느새 날이 밝았다. 미세먼지가 가득하니 노약자는 외출을 자제하라는 일기예보도 무시한 체 마스크로 얼굴을 감싸고 집을 나섰다. 나올 땐 우울하고 답답한 기분을 해소시킬 생각에 옛날에 마누라와 연애하던 시절 몇 번 가봤던 수원 원천 유원지 (지금의 광교) 근처를 산책하다 커피나 한잔 마실 생각이었다. 버스 정류장으로 가다 보니 아파트 주변에 어느새 노란 개나리들이 잔뜩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그 노란 꽃들은 뿌연 먼지마저 거두어 줄듯 내 마음도 밝게 만들어 주었고 그러다 보니 생각도 바뀌었다. 기왕 나온 김에 서울 가서 짜장면이나 한 그릇 먹고 주말마다 아우성인 광화문 거리가 평일에는 어떤 모습 인지 궁금 하기도 해서 서울 가는 광역버스에 올랐다.
조계사 건너편에 내려 근처 빵집에서 모닝 세트를 시키고 창가에 앉았다. 그러면서 아침부터 바삐 움직이는 사람들을 부러운 마음으로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파리 어느 구역 노천카페에서의 그때 그 기분이 잠시 다가오는 듯 그렇게 한참을 앉아 있었다. 조계사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조계사는 그냥 지나치려 했지만 옛정에 발목이 잡혀 부처님에게 아무 사심도 없는 간단한 인사만 남기고 나왔다. 그리고는 학교 다닐 때 내 나와바리? 였던 계동. 북촌. 삼청동길을 걸었다. 지나는 동안 옛날 자주 찾던 떡볶이 집이 생각나 골목길 여기저기를 돌아보았지만 없어진 건지 하여간 기억이 가물가물해 첫사랑이 남긴 미련 같은 기분을 간직한 채 결국 돌아 나올 수밖에 없었다. 광화문 광장에 들어서니 희뿌연 먼지 사이로 북악산이 내려다보고 있었다. 옛날에도 당파싸움으로 나라가 병들었는데 지금도 달라진 게 없이 주말이면 세종대왕과 이순신 장군 동상 아래서 뭐 하는 짓들이냐고 인왕산. 북악산은 우리를 꾸짖고 있을지도 모른다. 끽해야 백 년 남짓 사는 것들이 저마다 잘났다고 난리니 묵묵히 지켜보던 산들마저 에~라이 ㅇㅂㅎ ㅈㄴㄷ 하며 이미 일갈(一喝)을 날리고도 남았을 것같다. 경복궁 담을 끼고 도니 옛날 경무대(청와대)로 향하는 그 길이다. 먼지투성이인 이 거리에서 주말마다 들리는 노성(怒聲)과 열정만큼은 1960년 4월 19일 그날로 되돌아간 듯 보였다.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그 길에서 스크럼을 한 학생들의 뜨거운 함성, 그렇게 피다 만 꽃들은 쓰러져 갔다. 그런데도 달라진 게 없으니 세상은 행복 자체가 무의미한 깊은 허무주의에 빠져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년일 때 바라보았던 이 길 양쪽에는 많은 벚꽃나무들이 줄지어 서있었는데 옛 모습은 간데없고 어느새 70을 훌쩍 넘겨 노인이 돼버린 나는 같은 듯 다른 이곳을 바라보고 있다. 아픈 상처만 남긴 이 험한 세상 굵고 짧게 살았더라면 좋았을 텐데 .. 진짜 나를 꺼내보지도 못한채 세월의 한구석에서 시간만 흘려버린 나를 누구냐고 묻고 싶었다. 되돌아 나오다 마주친 광화문 네거리 에서 이곳이 가슴깊이 그리워지면 이렇게 다시 찾아온다는 이문세의 노래가 들릴듯 했다. 가끔은 옛날에 다니던 회사가 있던 적선동 골목에서 한잔 하고 싶다거나 이길을 어슬렁 거리다 커피 한잔 들고 세종문화회관 계단에 앉아 있고 싶은 생각이 들 때가 있었다. 젊은 시절 꿈이 묻어 있던 이길에 서서 이제 나는 무엇이 그립고 아쉬운 걸까! 박목월의 장맛처럼 세상을 그렁저렁 살면 되는 건데 말이다. 괜히 치열한 척 시간만 낭비하다 막상 중요한 것은 모두 놓쳐버리고만 어리석었던 지난날에 대한 늦은 깨달음 때문일까! 공허한 여운만 남는다. 이제 기가 빠진 늙은 몸 다독이며 가고는 있다만 언제 정신줄 놓고 아스러질지 몰라 조심조심 걷고 있다. 후배와 만나기로 한 세종문화회관 뒤편에 그 동네 노포라는 김치찌개집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뒷골목 구석에 박힌 쪼그라진 집인데 80년도 말에도 왔었던 기억이 있다. 그러고 보니 오늘 이런저런 생각 속에 지치도록 많이 걸어 목도 마르고 다리도 풀린 듯했다. 후배와 두부를 가득 넣은 김치찌개에 계란말이를 곁들여 맥주에 말은 소주 두 병을 나누어 마신 후 근처 호프집으로 자리를 옮겨 500cc 두 잔을 거푸 마시고 나니 그제야 갈증도 사라지고 꽉 찬 포만감에 하루를 만족스럽게 보낸 거 같았다. 후배와 헤어진 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내가 좋아하는 노래 Dust in the Wind 가 슬며시 떠올려졌다. 그래 사람들은 허공 속에 떠도는 바람 속의 먼지 같은 존재인데 소변기에 그려진 파리처럼 살고 있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삭막한 이 시대에 낭만을 찾아보기는 어려울 것 같고 영악해진 사람들 틈에서 많은 사람들은 정 붙일 곳을 찾아 헤매고 있는 건지도 몰랐다. 그래서 귀촌에 대한 얘기도 나오고 자연인에 대한 관심도 많은 듯 보인다. 그러나 이것저것 여의치 않으니 그나마 여유 있는 사람들은 그 옛정을 찾으려 미얀마나 라오스 같은 곳으로 과거로의 여행을 떠나고 있는지 모른다.
그건 그렇다치고 지금의 우리 사회를 바라볼 때 정작 자기가 할 일이 뭔지도 모르고 권력을 좇아 달리는 위정자들의 부정적인 면만 보인다. 또한 그들의 얄팍하고 유치한 속내는 세상이 변하여도 바뀌지 않았다. 홍수가 났는데도 비가 왔으면 좋겠다던 어떤 놈처럼 이번 산불 현장에서도 얼굴을 내밀고 싶어 안달이난 그런 인간들의 속성을 또다시 바라보고 있자니 나라가 걱정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이런저런 꼴 보기 싫어 산천을 떠돌며 부평초 같은 삶을 살고 싶은 마음을 담아 구평(具萍)이라는 다른 이름도 만들어 놓았었다. 그러나 아홉 평이라는 의미의 어감 때문에 밖으로 자신 있게 알리지 못하고 전전긍긍하고 있는 중이다. 원컨대 부디 돌아오는 봄사월은 잔인하지 않은 부활의 달이 되기를 진정으로 바라며 미움과 어둠의 걱정이 서서히 걷힐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