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가 사는 세상
"문 앞에서 있는 나" 새벽 5시, 아무도 깨지 않은 시간, 조용히 거실에 앉아 문들을 바라본다.
어느덧 77년이라는 긴 시간이 흘렀다. 내가 앞으로 몇 개의 문을 더 열 수 있을까"
그동안 수많은 문을 열고 닫으며 여기까지 왔다. 문은 언제나 앞으로 나아가는 쪽에 달려 있었다.
이제는 남은이들의 손을 빌리지 않고, 내손으로 내 삶의 마지막문을 조용하고 정갈하게 닫으려 한다.
슬픔보다는 '잘살았다는 안도감이, 미안함보다는 '고마웠다'는 마음이 앞서는 지금 이 순간을 글로 남겨본다. "떠나는 뒷모습이 가벼워야 남겨진 이들의 마음도 가볍다는 것을 알기에, 누구에게도 짐이 되지 않고
긴 여행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처럼 말이다.
그리고 뒷정리만을 남긴 거 같다. 이 글은 내 생의 마지막 페이지를 스스로 채우는 나의 의지이며 남은 이들에게 보내는 나의 넋두리 일지도 모른다.
"해 질 녘 노을이 서서히 산등성이를 넘어가듯, 나의 생도 자연스러운 마침표를 향해 가고 있다.
억지로 붙잡지도, 서둘러 재촉하지도 않으며 내 삶의 문고리를 가만히 쥐어 본다. 이문 너머에는 평온함만이 있기를 바라며, 내가 사랑했던 모든 것들에게 이 글을 보낸다.
집사람말이 , 꿈에 저승사자가 오면 내가 가고 싶은 곳들을 다녀온 후 데려가달라고 부탁하라는
모처럼의 긍정적인 얘기를 들었다.
세상 이곳저곳 많이 돌아다녔지만 아직 가보고 싶은 곳도 남아있고 전에 갔었지만 한 번 더 가보고 싶은 곳도 있다. 그러나 이제 남은 시간도 그렇고 나의 빈껍데기를 이끌고 여기까지 온 나는 몸과 마음이 지쳐있다.
문 닫기 전 또 한 번의 여행을 통한 반전을 노리지만 그 기간을 후년까지라고 못 박고 지내는 지금은 가려는 곳의 영상을 눈에 담으며 마음은 이미 준비를 마친 상태다.
어제는 우연히 "플랜 75라는 일본 영화를 보게 됐는데, 간략하게 내용을 얘기하자면 초고령 사회로 접어든 일본의 노인인구가 너무 많아지자 일본정부는 플랜 75라는 정책을 시행하게 된다.
75세 이상 노인에게 죽음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국가가 대신 정리해 주는, 죽음에 관한 사업을 펼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가 줄거리인 영화인데 간단히 얘기해서 안락사에 관한 내용이었다.
보고 난 후의 느낌은 선택이라는 이름과 존엄이라는 단어의 모호함이 아닐까 생각되었다.
영화는 차갑도록 조용했고, 서늘했다. 내게도 가까이 다가온 일이라는 생각에 기분은 조금 무거웠다.
그러나 사실 75세는 좀 이르지 않았나 하는 생각, 그래도 80은 넘겨야 노인이라 인정받는 세상인데 말이다.
이런 게 쉬운 얘기는 아닐지 모르지만, 솔직히 나도 머릿속에 그려보았던 일이기에 그렇게 심각하게 받아들여지지는 않았지만 처음으로 '닫는 문'을 상상해 보았다.
말인즉은 삶의 폐업을 말하는 거였다. 짐이 되고 싶지 않다는 말, 어느 순간부터 그 말은 우리의 예의처럼 되었다. 노년은 문이 적어지는 시간일지도 모른다. 누구를 만나러 나가는 문보다. 병원 진료실에 들어가는 문이 많아지는 시간. 축하의 초대장보다 부고를 먼저 받게 되는 날들이 늘어만 갔다.
이제는 운전면허 갱신 기간을 3년밖에 주지 않으면, 모든 매스컴에서는 고령운전자로 인한 교통사고 피해가 점점 늘어나는 추세라며 사방에서 합창을 하고 있다.
십만 원 줄 테니 면허반납 하라고 사탕발림 하는, 그런 현실로 볼 때 노인들이 영화에서 처럼 안락사를 신청하면 얼마나 줄까? 넉넉히만 준다면 없는 사람들은 잠시의 여유를 누리며 행복하게 떠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슬픈 생각에 잠겨봤다.
사실 부유한 노인들에게는 해당되지도 않을 일이라 결국 팔자타령이나 하다 가겠지만, 있어서는 않될 얘기다. 외로움이 선택을 밀어붙이지 않았나? 나는 지금 누구의 눈치를 보며 버티고 있나?
솔직히 내가 아직 문을 닫을 나이는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데, '가는데 는 순서가 없다'는 그 말 한마디가
쐐기를 박는다.
문을 닫기보다는 늘 그랬듯이 부서진 경첩을 고쳐가며 지낼 수는 없을까?
아니면 몇 개의 문을 미리 닫아두면 남은 방은 조금 더 따듯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봤다.
어차피 문을 닫을 수밖에 없더라도 나는 열린 문 앞에 서서 누군가가 밀어닫는 문이 아니라,
내가 천천히 당겨 닫으려 한다.
나는 아직 , 문고리를 잡을 힘은 남아 있기 때문에.
具 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