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가 사는 세상
우대감 어제는 덕분에 잘 먹고 마셨어.
그런데 이제는 술 한잔 하려고 장거리 뛰기엔 역시 무리라는 생각이 앞서네. 그건 그렇고 술이 웬만큼 취했는데도 잠을 못 이루는 건 자네가 전한 아들의 얘기 때문일세. 아들이 옷을 사 왔다는 그 말, 처음엔 그저 그런 얘기인 듯했지만 이상하게 오래 마음에 남아 있어. " 아버지 이거 한번 입어보세요" 그랬을 때 자네 기분 어땠을까! 내가 대신 느껴 보고 싶었네.
괜찮은데 그러는 자네 표정, 상상만으로도 부러워.
"뭘 이런 걸 다 샀어" 하고 무심한 척했을 자네 표정을 상상해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젖어오거든.
아버지 치수에 맞춰 건네는 옷은 천이 아니라 시간이고, 그 안에 " 이제는 제가 아버지를 생각합니다"라는 말이 담겨 있을 거니까 말이야.
아이였던 아들이 언제 이렇게 컸지" 하는 뭉클함과 세월의 실감, 그리고 자책등이 뒤엉켜 자네도 느끼는 감정에 시달렸으리라 생각해. 아버지가 자식 옷을 입혀 키웠듯, 이제는 자식이 아버지를 입혀드리는, 언젠가부터 뒤바뀐 역할을 서로 모른 척 받아들이는 거였어.
물론 TV에서는 자녀들이 부모 생각하는 그런 장면들을 많이 보긴 했지만 내 주위에서 직접 전해 듣는 건 처음이라 신선한 충격이었지.
옛날부터 전해오는 효는 지나치게 눈물겹고 비장한 얘기라 그런 얘기에 비교하기는 뭐 하지만 작지만 따듯한 감동을 주는 요즘의 효는 다르지 않을까?
얼은 땅에서 죽순을 케오는 맹종 이야기 그런 차원의 얘기는 아니지만 아버지에게 어울릴 색을 골라 "아버지
요즘 날씨 춥다며 옷을 건네는 자네 아들의 모습이 떠올려지니 잠을 잘 수 있겠는가 말이다. 복 받은 우가야
내 기분 이해가 가냐?
나도 예전에 해외출장 가면 아이옷을 사면서 이 녀석이 좋아할까 하는 걱정과 기대 속에 옷을 사들고 왔는데,
이제 친구아들이 아비 옷을 다 사 왔다니 어느새 세상이 한 바퀴 돈 거야.
너도 그랬겠지, 이 녀석 나를 보고 있었구나 하고 말이다.
그리고 그 옷은 해어질 때까지 입을 생각이었을 텐데
집에 들렀던 큰아들이 홀랑 들고 갔다고? 허기야 자네보다는 살날도 많은 아들이 입는 것도 괜찮기는 해.
아들이 옷을 사 오니 기분이 이상했지?
이제는 내가 가족들의 돌봄이 될 수 있다는 낯섦, 그리고 설명하기 어려운 뭉클한 감정.
까마귀 새끼도 자란 뒤 어미에게 먹이를 물어다 준다는 반포지효(反哺之孝)란 고사성어처럼 효는 인간만이 행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네.
잠을 자려고 옆으로 누웠는데 눈물인지 노안 인지 알 수 없는 눈물 한 방울, 자네가 부러워서 심술이 난다.
자식들이 주는 시간만큼은 충분히 누리다 가야지.
具 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