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 겨울, 싼타페

고래가 사는 세상

by 구일권

겨울의 싼타페는 조용했다. 공기는 맑았고, 사람들의 걸음은 느렸다. 나는 그 느린 호흡 속에 섞여 있다.

새파랗게 날이 선 하늘 사이로 전깃줄이 바르르 떨고 있다.

겨울은 풍경보다 마음을 먼저 식혔다. 시간이 지나면 묻힐 흔적들, 어디론가 날아가는 비행기도 내 눈을 시리게 만드는 싼타페의 겨울은 아직도 내 안에서 녹지 않았다.


그해 겨울, 나는 싼타페에 가고 싶어서 간 것이 아니었다. IMF라는 낯선 세 글자가 삶의 방향을 바꾸어 놓던 시기였다. 하루아침에 일터가 사라지고 , 계획이 무너지고 , 사람들 표정에서 웃음이 먼저 지워지던 때였다. 어쩔 수 없는 이동. 엘에이에서 앨버커키를 지나 싼타페 까지, 어쩔 수 없는 체류.

나는 그곳에서 버티는 법부터 배워야 했다.


겨울의 싼타페는 건조하고 맑았다. 어도비 양식의 나지막한 황토집과 산들이 물들어가는 그 광경은 황홀하다는 표현 외에는 달리 없을 것 같았다.

일본의 모델 미야자와리에 때문에 이곳을 찾는 많은 일본인들을 부러움과 원망 섞인 시선으로 바라볼때면 나는 모든걸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붉은 흙과 낮은 건물들, 햇빛은 따뜻했지만 사는 일은 그렇지 않았다. 낯선 언어와 낯선 방식 속에서 나는

하루하루를 계산하며 지냈다. 얼마를 아껴야 하는지, 어디까지 버틸 수 있는지, 언제쯤 집으로 돌아갈 수 있는지, 그 시절의 나는 여행자가 아니었다.

엘에이에서 앨버커키를 거쳐 열몇 시간 만에 도착한 싼타페는 작은 분지 안에 갇혀있는 아주 작은 도시였다. 성스러운 언덕이라는 뜻의 싼타페는 해발 2000m 위에 자리 잡은 인구 8천밖에 안 되는 인디언 보호 구역으로 옆으로는 리오그란데 강이 흐르는 곳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아름다운 싼타페의 풍경을 감상할 여유도 감상에 젖을 마음도 없었다. 겨울 공기보다 더 차가운 것은 미래에 대한 막막함이었다. 하루 12시간 일식당에서 일하던 나는 몸은 힘들었지만 그 시간이 나를 단단하게 만든 건 사실이다. 그때 난 쉽게 무너지지 않을 것 같은 자신감도 피어났다.


조지 클루니처럼 잘생긴 프랜디, 내게 어설픈 태권도를 배운 자유로운 영혼의 크리스, 룸메이트였던 둘은 비록 2년 남짓이었지만 내게 미국을 느끼게 해 주었고 영어에 대한 두려움도 해소시켜주었다.

그곳에서 만난 다양한 사람들, 사람 사는 곳은 다마찬가지로 모두들 힘들고 쪼들리고 외로워한다는 걸 느끼며 동병상련의 정을 나누었다. 가끔 전당포에서 실탄 세일을 한다고 연락이 올때면 나는 곧 전쟁을 치를 것처럼 많은 실탄을 사서 쟁여 놓고 쉬는 날 같이 일하던 폴과 함께 산속에 들어가 팔이 후들거릴 정도로 총알을 뱉어내며 허한 가슴을 채웠고 또 일주일을 견딜 수 있었다.


겨울은 많은 것을 비워낸다. 나무는 잎을 떨구고 도시는 색을 줄인다.

나 역시 그곳에서 불필요한 것들을 내려놓고 있었다.

해질 무렵 차가운 공기 속에 서서 멀리 붉게 물든 능선을 바라보는 게 하루를 보내는 나의 즐거움이었고

나는 그 빛을 보며 하루를 견뎠다.

집에 돌아와 차가운 침낭속에 몸을 숨겨도 추위는 바짝 다가와 앉았다.

마셔도 마셔도 취하지 않던 그해 겨울의 싼타페는 내가 고뇌의 연못 속에서 헤어 나오기 힘들었던 가장 약해졌던 시간이었는지도 모른다. 돌아보면 힘들었지만 다시 시작하기 위해 몸을 낮추었던 곳이라는 생각이 든다.


미국에서 세도나 다음으로 기가 강하다는 그곳에서 나는 두 번의 겨울을 지냈다. 그리고 돌아왔다, 외로워서. 스님처럼 삭발하고 지냈던 나는 지금도 힘들 때면 그때를 생각한다.


인디언들의 정령들이 살고 불빛으로 유혹하는 작은 카지노들, 카우보이 모자를 쓴 미국 노인네들과 컨트리 음악이 어울리는 명상의 도시 싼타페, 아픔만큼 사랑했다.


그리고 어느새 30여년이 흘렀다.

具 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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