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사람은 꿈에 민감하다. 내가 전날 밤에 어떤 꿈을 꾸었다 하면 바로 해몽에 들어가는데 돌팔이도 그런 돌팔이가 없다. 맞는 확률이 거의 없는데도 매번 장황한 설명이 뒤따른다. 그러면서 내가 좋은 꿈이라도 꿨다 생각되면 표정이 밝아지며 곧 대박이라도 날듯이 기분도 좋은데 와인 한잔 하자고 그런다. 그래서 몇 번 꿈을 팔아먹은 적도 있지만 결국은 별 볼 일 없었다. 누구나 이런저런 꿈을 꾸겠지만 남자들의 악몽(惡夢)은 꿈에 군대 두 번 가는 게 아닐까 싶다. 나도 그런 꿈을 꾸어본 적이 있지만 두려움과 상실감 , 원망 속에서 잠을 깨고는 꿈이라 다행이었기에 깊은 안도의 한숨을 내쉰 적이 있었다. 그러니 현실 속에서 군대를 두 번 다녀온 가수 싸이의 황당했을 마음을 생각해보면 그도 꿈이었기를 바랐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웃을 수도 없는 일이라 마음만 짠했다. 군생활을 하면서 어떤 부대에 근무하던 시간이 지나 적응하게 되면 다마찬가지 겠지만 옛날 서울 사람과 시골사람의 티가 나듯이 전, 후방 군인들의 옷차림새는 달라서 전방에서 후줄근한 옷차림으로 휴가 나온 군인들은 늘 역이나 버스터미널에서 헌병들의 표적이 되곤 했다. 남자들의 군대에 얽힌 얘기는 이루다 전할 수 없을 정도로 무궁무진하다 그중 하나 생각나는 것은 겨울에 내복 겨드랑이나 사타구니에 이 주머니 라는걸 각자 만들어 달고 다녔는데 그 주머니 속에는 DDT라는 가루가 들어 있었다. 오랜 시간이 지난 후 침묵의 봄이라는 책에서 알게 됐지만 그 DDT라는 가루는 암을 유발하고 자연과의 고리를 끊게 만드는 등 많은 폐해를 끼치는 독성물질이라 했다. 6.25 당시 피난민들에게 마구 뿌려대던 그 가루를 몸에 달고 다녔으니 모르는 게 약이란 말이 와닿는다. 월남전 때 공중에서 살포하던 고엽제나 가습기 살균제등 우리는 지금도 알게 모르게 그런 환경 속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당시 열악한 군생활중 먹는 것만 이라도 충분하면 좋았을 텐데 오직 했으면 일등병 이등병은 건빵 도둑놈부터 왕건이는 어데 가고 국물만 주나라는 이런 노래까지 그시대 군생활을 풍자한 노래들은 쭉 전해져 왔다. 언젠가 아들이 아빠! 저는 우리 아이를 군대 보내지 않을 수만 있다면 절대 보낼 생각이 없다는 말에 뭐라 할 말이 없었다. 방학중 귀국한 아이를 반강제로 입대시키면서 우리는 현역 삼대 집안이라고 말로는 그랬지만 과연 군생활에서 배우고 남는 게 무엇일까를 생각할 때 국방의 의무도 좋지만 지금 같은 군대생활이라면 손자까지 굳이 4대를 이을 생각은 나도 없다는 생각이다. 홍콩서 태어나 이제 겨우 유치원 다니는 손자의 군대 문제를 얘기하는 집사람 친구들의 입방아에 기가 찰 노릇이다. 한심한 작자들에게 미국 원정 출산이나 하는 그런 사람들에 비유되는 것 같아 우리 손자는 중공군에 입대시킬 거라 전하라 했다. 나 때는 말이야 공비 김신조 때문에 꼬박 36개월 군생활을 하게 됐다는 그 말의 뉘앙스를 요즘 젊은 세대들은 공감할 수 없을 것 같기에 같이 늙어 가는 친구나 후배들과 술자리에서나 가끔 속풀이 안주로 옛날 얘기를 하지만 그 또한 그런 자리에서 정치나 군대 얘기는 금기사항에 속하기에 그저 머리와 마음속에 담겨 있을 뿐이다. 세월이 한참 지났는데도 요즘 뉴스에 불량한 군 급식문제에 대해 나오는 걸 보면 대통령이나 국회의원들도 군생활을 경험했을 텐데 지금까지 제대로 고쳐지지 않는 걸 보면 아직도 군대 내에서 중간에 빼먹는 놈들이 많은 건지 아니면 정치인들 중 군미필자가 많아 경험이 없어 개선이 안 되는 건지 하여간 최전방 GOP에 몰려가서 전시용 사진이나 한번 찍고는 군인들을 위하는 척하는 떠드는 정치인들을 보면 그야말로 쑈로 밖에 보이질 않으며 자신들이 한번 다녀갈 때마다 일반 병사들은 며칠 전부터 얼마나 고생하는지도 알리가 없을 거다. 요즘 들어 자주 나타나는 군대 내의 폭력이나 성추행 등 이런저런 사고 소식을 보며 하루빨리 마음 놓고 자식들을 군대에 보낼 수 있는 그런 나라가 되어야 할 텐데 하는 간절한 마음속에 김광석의 노래 이등병의 편지 가사가 떠올려졌다. 그나마 우리 때 900원 주던 병장 봉급이 곧 100 만원으로 상향된다니 병사들의 사기진작을 위해 반가운 소식이긴 한데 그 당시 꼬박 36개월 만에 만기 제대했던 우리 또래들은 시대를 잘못 타고난 팔자 탓으로 돌릴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그리고 나는 언제부터 인가 눈을 싫어하게 됐다. 눈 내리던 겨울날 새벽 헌병들의 호루라기 소리 속에서 난 영화 닥터 지바고의 한 장면처럼 김 이서린 열차 창문 밖 손을 흔드는 여자 친구를 뒤로 하고 훈련소로 떠났다. 그 후 휴가를 나온 어느 날 신촌 독수리 다방에서 여자 친구로부터 이별을 통보받을 때도 함박눈이 내렸다. 전방에 내린 눈은 겨울철 군생활을 힘들게도 하지만 안 올 땐 기다려지게 하고 옛날을 그립게 하는 그런 애증의 존재였다.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군대에는 6.25 나 월남전에서 용맹을 떨친 부대만의 전통을 안고 내려오는 부대들도 많지만 영화 에서나 보던 그런 특수 부대들도 많다는 걸 이번에 TV를 통해 처음 알게 됐다. 예전에 견장을 가득 붙인 공수 부대나 해병대 친구들이 명동거리를 누빌 때는 멋있어 보이기도 했지만 속으론 고생이 심 하겠다는 생각이 앞섰다. 그래서 생각해본 건데 우리도 젊은 예비역 군인들로 구성된 특수부대나 프랑스 외인부대 같은걸 만들 수 없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본은 공무원에 준하는 대우를 해주는 자위대가 있지만 사회적 낙오자 이거나 51%가 고졸 이하 학력자들로 40~50대가 주류를 이룬다고 했다. 우리 일반 병사들의 복무기간도 짧아지는 마당에 그 공백을 보강하고 취업 문제도 해소시킬 겸 연대급 정도의 인원을 제대군인 중에서 선별해 소규모 해외파병 등 프랑스 용병처럼 운영하는 방식은 어떨까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TV에서 강철부대라는 프로를 보며 경험과 능력이 뛰어난 많은 젊은 친구들이 모병에 응한다면 어떤 무기 보다도 강력한 국가의 방패가 될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군이 자부심과 패기가 넘치게 하는 것은 국가의 몫이다. 군 복무를 자랑스럽게 여기는 사회가 되길 바라며 군생활중 낙엽도 직각으로 떨어진다는 자기네 부대 군기 얘기로 너스레를 떠는 친구들과 함께 우리 모두 고생 많았다고 위로의 인사를 전한다. 근간에 누가 쓴 글에 현관문 비밀 번호가 남편 군번 숫자라는 얘기를 듣고 나와 같은 사람이 또 있었다는 사실에 격한 전율을 느끼며 젊은 시절 겪었던 힘든 시간 속에서 늘 함께 했던 숫자이기에 죽을 때까지 잊어버리는 일은 없으리라 생각된다. 어찌 됐던 꿈에서라도 절대 나타나지 않기를 바라는 게 군대 두 번 가는 꿈일 텐데 지긋지긋했던 예비군 복장의 개구리 무늬마저 새로운 패션의 한 장르가 되었으니 군과는 영원히 떼어놀수 없는 악연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어젯밤에 낙타를 데리고 다니던 꿈은 길몽(吉夢)이라던데 이젠 나이가 들어선 지 뚜렷하게 남는 꿈도 없고 약발도 다했는지 좋은 꿈을 꾼다 해도 좋은 일도 없는 것 같다. 나의 화양연화( 花樣年華)는 언제였는지 멍하니 생각에 잠기다 동이 트는 새벽에야 잠을 청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