텅 빈 시간을 채우는 '고독'의 기술
관계가 정리된 후 찾아온 적막. 처음에는 이 고요함이 낯설고 두려웠습니다. 하지만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고 했던가요? 저는 주먹을 불끈 쥐고, 이 거대한 공백을 나를 단단하게 만드는 틈으로 채워보기로 했습니다.
누군가를 지키려면, 저부터 단단해져야 했으니까요.
[1] 고독을 즐기는 연습: 나를 먼저 돌보다
시작은 '잘 먹는 것'부터였습니다. 어느 날 문득, 뜨끈한 국물이 너무 먹고 싶은데 불러낼 친구가 마땅치 않더군요. 예전 같으면 굶거나 대충 때웠겠지만, 그날은 용기를 냈습니다.
집 앞 순대국밥집에 당당히 혼자 들어가 특사이즈를 시켜 먹었죠. 주변 아저씨들 틈에서 뚝배기 그릇을 기울여 국물까지 싹 비우고 나니, 저도 모르게 "크으~" 하는 소리가 절로 나오더군요.
에어팟 꽂고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신천을 뛰는 시간도 늘어났습니다.
그 시간들은 처절한 외로움이 아니었습니다. 오롯이 나에게 집중하는 고독이었습니다. 타인에게 기대어 나를 확인하던 습관을 버리고, 스스로 나를 돌보고 먹이는 법을 배우는 시간. 생각보다 나쁘지 않더라고요? 아니, 꽤 괜찮았습니다.
하지만, 제가 이렇게 홀로서기를 연습해야만 했던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습니다.
[2] 아빠의 빈자리, 그리고 새로운 명찰 '보호자'
사실 저에게 '홀로서기'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였습니다.
아버지가 떠나신 후, 우리 가족의 풍경은 많이 달라졌습니다. 6살 터울의 오빠는 이미 결혼해 가정을 꾸렸고, 남겨진 엄마 곁에는 제가 남았습니다.
그동안은 아버지가 엄마와 저의 든든한 보호자였지만, 이제는 제가 그 역할을 이어받아야 했습니다. 엄마가 병원에 가실 때 동행하고, 복잡한 서류를 처리하고, 밤마다 적적해하실 엄마의 말동무가 되어드리는 일.
"환자분 보호자 분, 이쪽으로 오세요."
병원에서 처음으로 저를 부르는 그 호칭을 들었을 때의 기분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가슴이 철렁하면서도 어깨가 묵직해지는 기분. 엄마 뒤에 숨어 어리광 피우던 막내딸은 이제 그곳에 없었습니다.
저는 엄마의 보호자로서, 두 발로 단단히 땅을 딛고 서야만 했습니다. 내가 흔들리면 엄마는 더 불안해하실 테니까요.
[3] 적당한 틈이 우리를 더 단단하게 만든다
진정한 홀로서기란, 혼자서도 잘 살 뿐만 아니라 누군가의 기둥이 되어줄 수 있는 힘을 기르는 것이더군요.
이제 저는 사람 때문에 울고 웃던 연약한 '어른이'에서 조금은 졸업한 것 같습니다. 내 곁에 남아준 소중한 사람들에게는 따뜻한 틈을 내어주고, 무례한 사람들에게는 단호한 틈을 두는 법.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 엄마가 편히 기댈 수 있는 튼튼한 틈을 만들어가는 중입니다. 아버지가 제게 내어주셨던 그 넓은 등처럼 말이죠.
이 관계의 기술이야말로 제가 4년이라는 비싼 수업료를 내고 배운 가장 값진 지혜가 아닐까 싶습니다.
오늘도 적당한 거리에서,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 곁에서 각자의 삶을 단단하게 지켜내고 있을 여러분을 응원합니다. 우리 모두, 꽤 괜찮은 보호자가 되어가고 있으니까요. (흐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