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금 제대로 살고 있는 걸까?
4년..
누군가에게는 치열하게 달린 시간이었겠지만, 저에게는 삶이 멈춰버린 가장 잔인한 쉼표였습니다.
저는 그저 세상 물정 모르고 평온했던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제 삶의 모든 비바람을 묵묵히 막아주던 단단한 지붕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죠.
하지만, 저를 지탱하던 그 거대한 기둥 아버지가 아무런 예고 없이 무너져 내렸을 때, 평온했던 과거의 나는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당연하게 누려왔던 나의 일상이 사실은 누군가의 헌신으로 만들어진 온실이었다는 것을, 그 보호막이 사라지고 나서야 뼈저리게 알게 된 것입니다.
그때, 저는 감당할 수 없는 '텅 빈자리'의 크기를 깨달으며 제 삶의 모든 가치관이 송두리째 흔들리는 충격과 마주했습니다.
그 텅 빈자리 앞에서, 저는 지난 4년 동안 "나는 지금 제대로 살고 있는 걸까?"라는 질문을 놓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 질문은 저를 멈춰 세웠지만, 역설적으로 다시 걷게 만들었습니다. 또한, 이 질문이 어떻게 저를 세상 밖으로 나오게 했는지, 제가 '틈작가'라는 이름으로 다시 서게 된 가장 사적인 계기를 기록하려 합니다.
어린 시절, 저희 집은 그리 넉넉한 형편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의 월급날만큼은 세상 그 누구도 부럽지 않았습니다. 현관문이 열리면 무뚝뚝한 아버지의 양손에는 항상 '마법'이 들려 있었습니다. 한 손에는 고소한 기름 냄새가 진동하는 노란 봉투의 옛날 통닭이, 다른 한 손에는 제과점에서 파는 알록달록한 유리병 캔디가 들려 있었죠.
아버지는 말수가 적고 무뚝뚝한 분이셨습니다. "사랑한다"는 살가운 말 한마디 건네는 법이 없으셨죠. 대신 아버지는 행동으로 말씀하셨습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가족을 건사하기 위해 어김없이 새벽 공기를 가르며 출근하시던 그 뒷모습이 바로 아버지의 언어였습니다.
그런 아버지가 유일하게 무장을 해제하던 순간은 바로 저를 대할 때였습니다. 오빠와 여섯 살이라는 적지 않은 터울 때문이었을까요? 아버지는 유독 막내딸인 저에게만큼은 그 투박한 손길 속에 숨겨둔 다정을 아낌없이 내어주셨습니다. 그 거칠지만 따뜻했던 사랑이, 저를 세상의 비바람으로부터 지켜주던 가장 튼튼한 지붕이었습니다.
하지만 영원할 것 같았던 그 단단한 등도.. 저를 향해 웃어주던 따뜻한 눈빛도.. 예고 없이 갑작스럽게 멈춰버렸습니다.
아버지를 떠나보내고 난 뒤에야 비로소 보였던 것이었죠, 아버지가 그 넓은 등으로 묵묵히 막아내고 계셨던 세상의 비바람이 얼마나 차갑고 매서운지를 말입니다.
아버지가 계실 때는 몰랐습니다. 공과금을 내는 날짜, 형광등을 가는 법, 낯선 사람들과 흥정하는 법. 그리고, 삶을 지탱하는 사소하지만 무거운 것들을요.. 지붕이 사라지고 나니, 저는 그저 나이만 먹었지 홀로 서는 법을 전혀 모르는 나약한 어린아이에 불과했습니다.
4년의 공백은 그 충격에서 오는 멍함이었습니다. 슬픔도 슬픔이었지만, 이제 나를 지켜줄 사람은 없다는 사무치는 두려움이 저를 멈춰 세웠던 것입니다.
그렇게 4년이라는 긴 시간을 멈춰 서서 스스로에게 물었습니다. 아빠 없이도, 나는 잘 살 수 있을까?
그리고.. 이제야 그 답을 조금씩 적어 내려가려 합니다. 아버지가 떠나며 남겨주신 이 거대한 공백(빈자리)은, 남은 인생 동안 제가 스스로 채워나가야 할 숙제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제 아버지라는 지붕 아래 숨어있던 철없는 딸에서 벗어나, 제 삶의 틈을 스스로 메우고 단단한 집을 짓는 '틈작가'가 되어보려 합니다.
비록 서툴고 느리겠지만, 하늘에 계신 아버지가 흐뭇하게 바라보실 수 있도록. 이것이 제가 4년의 침묵을 깨고 세상 밖으로 나온 진짜 이유입니다.
물론 지붕 없는 세상은 생각보다 훨씬 춥고 매서울지 모릅니다. 당장 내일 어떤 현실적인 문제가 저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죠.
하지만 이제는 피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아버지의 그늘을 벗어나 진짜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 그 고군분투의 기록을 이 공간에 솔직하게 남기겠습니다. 저의 이 작은 용기가 또 다른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기를 바라며 글을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