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화 스미 갑판장, 엄마를 데려가다
존엄사법이 제정되지 않아 살인범이 된 어느 소년의 아버지에 대한 지극한 간병과 사랑이야기
비망록에는 토끼섬에서 자란 소년의 아버지의 어린 시절의 회상과 문학과 철학에 뜻을 두고도 아버지의 뜻을 거역하지 못해 적성에 맞지 않는 법대에 진학할 수밖에 없었던 이상과 현실 사이의 젊은 날의 고민이 있었다. 대학 3학년 때 처음 만나 결혼하기까지 아내와 사귀는 동안의 풋풋한 연애담도 있었고, 문학과 철학뿐만 아니라 역사나 과학 등 다양한 분야의 교양 및 전문 서적에 대한 서평도 눈에 띄었다.
문득 떠오른 소설의 줄거리나 주제를 적어 놓은 메모 형식의 글과 30여 편에 이르는 자유시도 있었는데, 이 시들은 등단시인의 시라고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것 같았다. 나는 이 시를 통하여 환자가 아름답고 슬픈 환상적인 시어를 구사하는 서정시인이기도 했다는 김 과장의 말을 공감할 수 있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로펌에 근무하는 동안에 겪은 피고인과 소송당사자들에 얽힌 경험담도 있었다. 불교의 참선이나 인도의 요가, 우리 고유의 단전호흡 같은 명상법과 체험담을 적은 글도 있었는데, 이런 글은 모두 명상을 통한 건전한 사유가 바탕이 되어 인간의 이성과 본성에 대한 깊은 성찰로 이어지고 있었다. 글의 기본적인 패턴이나 전체적인 맥락에서의 사고의 관점은 언제나 긍정적이고 따뜻한 인간애를 바탕으로 하고 있었다.
비망록의 글에 때로는 공감하고 때로는 상상하면서 꼬박 밤을 새우다시피 주말 이틀을 보낸 나는 환자와 소년에 대한 깊은 연민에 빠지고 말았다. 환자 소유의 고가의 난을 절취한 공범이라는 죄책감뿐만 아니라, 자칭 슈바이처인 김 과장과의 우정을 생각해서라도 나는 환자를 지켜야만 했다. 이제까지는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지만, 그것이 의사로서의 본연의 의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 지키자. 내가 있는 한 이 환자를 지키자.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그러나 끝까지 희망을 버리지 말자. 8년 동안이나 의식불명 상태에 있던 환자가 소생한 임상 경험도 있지 않은가. 내 의학 지식이 절대적이라고 장담할 수는 없다. 포기하지 말자. 끝까지 최선을 다하다 보면, 혹시 기적이라도 일어날지…….
그렇지 않더라도 김 과장의 말처럼 환자의 마지막 임종이라도 이곳에서 고귀하게 맞게 해 주자. 그리고 아무리 비싼 VIP실 병원비라고 해봐야 원장이 가져간 고가의 난에 비하면 푼돈밖에 되지 않는다. 환자는 그런 대우를 받을 충분한 권리가 있다. 나는 스스로 다짐했다.
다행히 환자의 상태는 더 나빠지지 않았다. 월요일 출근을 하자, 이제는 산소호흡기에 의존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상태가 다시 호전되어 있었다. 금요일, 응급상황에 너무 놀란 나머지 고개를 푹 수그리고 눈물을 뚝뚝 흘리던 소년의 눈에도 안도의 빛이 감돌았다. 나는 오후에 일부러 시간을 내어 소년을 찾아가 비망록을 돌려주며 말했다.
― 잘 보았다. 훌륭한 아버지이시다. 이것은 절대 버리면 안 된다. 소중히 보관해야 한다.
― 예.
소년이 마치 제 일기장을 남에게 들키기라도 한 것처럼 고개를 숙이고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 그걸 읽어 보았니?
― 예, 그러나 너무 어려워 잘 모르겠어요.
― 그렇겠지. 그러나 네가 커서 더 많이 공부하면 알게 될 거다. 너도 아버지처럼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지.
나는 소년의 어깨를 다독거려 주고 병실을 나오려 했다. 그때 소년이 말했다.
― 저, 선생님.
― 왜, 무슨 할 말이 있어?
― 예. 어젯밤에 아빠가 또 말했어요.
― 정말 말을 한 것은 아닐 테고, 이번에도 눈으로 말했다는 것이야?
나는 일부러 툭 내던지듯 건성으로 말했다. 소년의 의도를 알 것 같았기 때문이다.
― 예, 보내 달라고 했어요. 바다로 가자고 했어요. 해적놀이하자고 했어요. 선생님 이제 보내 주세요.
역시 예측한 말이었다.
― 지난번에 내가 말했었지, 안 된다고. 어머니가 오기까지는 절대 안 돼. 어머니도 없는데 너를 보내면 내가 처벌받아. 앞으로는 그런 얘기 더 이상 하면 안 돼.
나는 냉정하게 잘라 말했다.
― 엄마는 오지 않아요.
― 뭐라고? 돈 벌어 온다고 하지 않았니?
― 죄송해요. 제가 거짓말을 했어요.
― 그것을 네가 어떻게 알아?
― 방학하던 날 엄마가 학교로 왔었어요.
그날은 김 과장이 환자를 내게 보낸 날이었다.
― 그날 어머니를 만났다는 말이야?
― 예.
― 그런데 왜 어머니는 오시지 않는 거야? 어머니는 지금 어디 계시니?
― 몰라요. 그날 엄마는 학교 운동장 나무 아래서 내 손을 잡고, 무슨 일이 있어도 병원에서 아빠를 지켜야 한다고 했어요. 휘발유 통보다 더한 커트 칼을 들고서라도 꼭 지켜야 한다고 했어요. 그러고는 어디론가 갔어요.
― 어디로 간다는 말도 없었다는 말이야?
― 예. 나는 그때 엄마가 아빠와 저를 버리고 간다는 걸 알았어요.
― 어떻게 알았다는 거야?
― 운동장 밖 도로에 스미 아저씨의 차가 세워져 있었어요. 스미 아저씨가 엄마를 좋아하고 있었거든요. 엄마가 스미 아저씨의 차에 타는 걸 봤어요. 그때 엄마는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나는 한동안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가슴 밑바닥에서 거센 회오리바람이 일었다.
― 어머니가 널 버리고 간다는 것을 알면서도 가만히 있었어?
분노 탓이었을까, 연민 탓이었을까. 내 목소리가 나도 모르게 떨리고 있었다.
― 엄마를 미워하지 않아요. 엄마는 이제까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했어요. 하지만 그런 엄마를 뺏어간 스미 아저씨가 미워요. 죽이고 싶은 생각이 들 때도 있어요. 이런 생각하면 안 되는 줄 알지만, 그래도 미운 걸 어떡해요.
소년이 말을 멈추고 고개를 푹 숙였다. 눈물이 바닥에 뚝뚝 떨어졌다. 어깨가 격렬하게 들썩였다. 가슴이 시커멓고 끈적끈적한 콜타르로 꽉 메워지는 것 같더니, 내 눈에서도 그만 눈물이 핑 돌았다. 나는 소년을 꼭 껴안았다. “그애 아버지, 네 병원, 그것도 제일 좋은 그 VIP실에서 고귀한 임종을 맞도록 해주자.”라고 하던 김 과장의 안경 낀 얼굴이 떠올랐다.
그래, 최선을 다해 보자. 기적이라도 일어나기를 빌어보자.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김 과장의 말대로 이곳에서 고귀한 임종을 맞게 해 주자. 나는 다시 한번 속으로 다짐했다. 나는 소년에게 타이르듯 조용히 말했다.
― 네가 어떤 말을 해도 보낼 수 없어. 최선을 다해 보자. 혹시 아니? 기적이라도 일어날지. 그리고 나는 친구에게 약속했다. 이 병원에서 네 아버지가 누구보다 더 고귀한 임종을 맞게 하겠다고. 선생님과 네 어린 친구들과의 약속도 지켜야 해. 건강한 후크 선장으로 보내주겠다는 그 약속, 벌써 잊은 건 아니겠지. 그보다도 무엇보다 너 혼자 보내면 내가 벌을 받는다. 그래서 더욱 안 돼.
다시 열흘이 지났다.
― 선생님, 부탁이에요. 보내 주세요. 아빠의 소원을 들어주세요.
― 안 된다고 하지 않았니.
― 선생님, 제발 보내 주세요. 어제도 아빠가 해적놀이하자고 말했어요.
― 그래도 안 된다. 내가 최선을 다해 보마.
― 선생님, 제가 이렇게 엎드려 빌게요. 제발 보내 주세요.
소년이 정말 내 발아래 무릎을 꿇고 빌고 있는데, 원장이 부른다고 이 간호사가 들어와 말했다. 나는 이 간호사와 함께 원장실로 갔다. 그곳에는 이미 원무과장이 불려 와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내가 들어서자마자 원장의 고함이 터져 나왔다. 이 간호사가 옆에서 듣고 있는데도 원장은 체면도 염치도 가리지 않고 거침없이 내뱉었다.
― 아니, 박 과장, 도대체 언제까지 이러고 있을 거요? 이제는 정말 무슨 조치를 취해야 할 것 아니요? 어제도 그 환자 때문에 병실 두 개가 비었어요. 그리고 그 구닥다리 시계는 또 뭐요. 아니, 박 과장이 그 시계소리로 정말 환자를 치료할 수 있다고 믿고 있는 거요. 나 원 참, 이 병원이 무슨 무당집인 줄 알아요.
원장은 이제 심각한 히스테리 증세까지 보이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만 오기가 발동하고 말았다. 환자 소유의 그 난은 병원비의 몇 배는 되고도 남을 고가의 명품 난이었다. 환자의 소유물인 그런 고가의 난을 절취하여 소장하고 있으면서도 병원비 때문에 환자를 내보내라는 원장의 비인간적인 처사에 극도의 반감이 솟아났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내 다짐을 지키리라. 김 과장과의 약속을 반드시 지키리라. 나는 원장에게 한바탕 대들었다. 여차하면 난을 가져간 원장의 약점이라도 물고 늘어질 참이었다.
― 원장님 눈에는 그 불쌍한 아이가 보이지 않습니까? 안 됩니다. 그 환자, 내 환잡니다. 절대 내보내지 못합니다. 내 환자, 내가 지킵니다.
― 박 과장, 여기가 무슨 자선병원인 줄 알아? 불쌍하지 않은 환자가 어디 있어?
― 자선병원이든 아니든 간에, 내보내서 문제가 생기면 누가 책임질 겁니까? 지금 내보내면 환자가 곧바로 죽는데, 원장님이 책임질 겁니까? 나보고 살인자가 되라고요? 내가 이 병원에 있는 한 절대 못 내보냅니다.
― 아니, 이 사람이, 무슨 그런 험한 말을, 자네가 원장이야, 뭐야?
― 정 내보시겠다면 절 먼저 내보내십시오. 그렇게 내보내고 싶으면 직접 내보내고 그 책임도 원장님께서 지십시오. 이만 나가 보겠습니다.
나는 원장실의 문을 박차고 나오고 말았다. 책임질 일은 나한테 고스란히 떠넘기고 제 잇속만 차리겠다는 원장의 음흉한 심보에 극도의 반감이 치솟았다. 그것은 아마 내가 처음으로 원장에게 강단을 부린 날일 것이다. 원장이 마음만 먹으면 정말 나를 병원에서 내쫓아 버릴 수도 있었다. 치솟는 울분을 참지 못하고 원장에게 대들고 말았지만, 그러나 그때는 이 일이 전혀 의외의 결과로 이어질 줄은 정말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그날 저녁, 나는 다시 김 과장을 만났다. 병원에서 일어난 얘기를 들은 김 과장이 박장대소했다. 물론 원장의 난 얘기는 하지 않았다. 공범이 되어 나까지 비난받을 수는 없었다.
― 잘했다. 그 벌레 원장, 정신이 번쩍 들었겠다. 너 같은 샌님이 그런 오기를 부릴 줄도 알다니……. 너, 이제 정말 우리 슈바이처 클럽에 들어와야겠다.
<슈바이처 클럽>이란 김 과장이 주동이 된 의사들 모임을 말했다. 자기들 말로는 사회 경제적 약자, 특히 빈곤층에 대한 의료인의 사회봉사를 목적으로 한다고 했다. 그리고 실제로 저들끼리 모아 적립한 기금으로 그 소속 회원 몇몇은 매년 의료 시설이 취약한 낙도나 시골, 또는 인도나 아프리카 등 의료 수준이 낙후된 나라로 의료 봉사활동을 가기도 했다. 예전부터 그 패거리에 들어오라는 권유를 받은 적이 있지만, 저들 혼자 무슨 도덕군자인 체하는 것이 싫어서 가입하지 않고 있던 차였다. 나는 그날 의식이 가물가물하도록 대취하고 말았다.
다시 며칠이 지났다. 생각지도 못한 나의 항명에 원장의 끙끙 앓는 소리가 온 병원을 채우고 있었다. 오늘도 원장은 환자와 나를 제 맘대로 하지 못해 골머리를 싸매고 있을 것이었다.
― 선생님, 어제 또 아빠가 말했어요.
― 그 말도 안 되는 해적놀이 말이니?
나는 일부러 큰소리로 툭 쏘면서 냉랭하게 말했다. 내보내 달라는 간청을 사전에 막기 위해서였다. 그때 소년이 고개를 푹 숙이고 풀 죽은 목소리로 말했다.
― 아뇨.
― 그럼 뭐야?
― 선생님은 아시잖아요? 아빠가 결국은 돌아가신다는 것을…….
― 뭐라고? 그래서?
나는 당돌하게 들리는 이 말에 소년을 쏘아보면서 언성을 높였다.
― 선생님이 아빠라면 어디서 돌아가시고 싶겠어요?
소년은 내 말에는 개의치 않고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물끄러미 나를 올려다보면서 말했다. 순간, 나는 멍해지고 말았다. 이 어린아이가 이런 생각까지 하고 있었다니……? 선생님이 아빠라면 어디서 돌아가시고 싶겠어요? 어디서 돌아가시고 싶겠어요? 어디서……? 이 말이 귀에 쟁쟁 울리고 있었다.
그날 퇴근 후, 나는 다시 김 과장을 만났다. 진정으로 환자를 위하는 길이 무엇일까? 어떤 것이 고귀한 임종인가? 소생할 수 없는 생명을 붙들고 있는 것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는가? 생명의 존엄성에는 자기가 선택한 방법으로 죽을 권리도 포함되어야 하지 않는가? 생명이 존엄하다면, 그 죽음도 존엄해야 하지 않는가?
가끔 피상적으로 자문해 보던 것이었지만, 이런 관념적이고 철학적인 명제가 실제로 내 앞에 닥치자 나는 엄청난 정신적 혼란에 빠지기 시작했다. 어린 소년이 이런 철학적인 명제를 스스로 반추해 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소년은 분명 알고 있었다. 어떤 것이 가장 행복한 죽음이라는 것을. 소년은 존엄사의 의미를 선험적으로 깨닫고 있었다. 제 아버지의 잠재의식이 원하는 죽음의 장소를 소년은 분명히 알고 있었다.
― 뭐? 그애가 그런 말을 해?
김 과장도 눈을 크게 뜨며 놀라워했다.
― 어쩌면 좋을까?
내가 물었다. 한동안 말이 없던 김 과장이 입을 열었다.
― 글쎄……? 그 아이의 생각이 옳을지도 모르지. 그애 아버지가 평생 꿈꾸고 가꿀 섬이 아닌가. 인생의 모든 열정을 쏟고자 했던 섬인데……. 그런 섬에서 그런 바다를 바라보며 눈을 감고 싶겠지. 그러나 한번 생각해 보자. 의사라는 자격으로 네가, 내가 직접 생명을 거둘 수 있는 자격이 있다고 생각해? 생명과 죽음, 양립할 수 없는 문제 이긴 해. 그러나 의사는 생명을 다루는 직업이야. 생명은 의사의 영역에 속해. 그러나 죽음은 신의 영역, 굳이 인간의 영역으로 끌어내리더라도 그것은 종교인의 영역에 속해. 나는 반대다. 의사인 나는 그 녀석의 간청을 들어줄 수 없어. 그리고 현실적인 문제도 있잖니? 만약 그것이 문제 되면 어떻게 수습할래?
― 그러나 너도 알잖아. 무익한 생명 연장일 뿐이라는 것을.
― 무익하다고? 어떻게 그렇게 속단해? 너와 나의 의료 지식이 생명을 창조한 신의 영역에까지 미친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의사는 생명을 위하여 최선을 다하면 되는 거야. 그 외의 것은 신의 영역으로 미뤄. 냉정하게 거절해. 그것이 의사로서의 너의 의무야.
그날도 나는 대취하고 말았다. 다시 일주일이 지났다. 내 고민은 점점 더 깊어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