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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재도 Feb 15. 2023

나는 시를 본다

사진으로 보고 에세이로 소통하며 시로 공감한다.  


실안 낙조     

                                                            



              

 바람도 

 물결도

 어둠에 밀려  

 날아가 버린 새도  

 그 새가 떨구고 간 눈빛도 

 붉게 젖어 있었네     

 

 문득 

 그대에게 

 편지를 쓰려다가

 눈물이 먼저 흘렀네


 실안 낙조 저무는 

 죽방렴* 해안 

 기억의 바다 저편  

 기슭 바위언덕 가슴에

 그대 뒷모습  

 새 발자국화석처럼 찍혀 있었네     


* 죽방렴竹防簾 ; 조수간만의 차가 큰 해역에서 물살이 드나드는 물목에 대나무발 그물을 세워 물고기를 잡는 전통적인 어구, 대나무 어사리라고도 한다. 사진은 사천 실안 죽방렴 모습이다.     


       



         

누구나 가슴속에 떠나보내고 싶지 않은 '그대'를 한 사람쯤은 품고 산다.

가슴속 '그대'가 연인이든 부모 형제든 또는 다른 누구이든 묻지 않는다.

사천시 <노산공원>에 있는 박재삼 시인의 시비와 문학관을 둘러보고 실안 해안도로에 나왔을 때 낙조는 이미 많이 기울어 어둠이 밀려들고 있었다. 

나에게 스러져가는 낙조는 아름답다고 하기보다는 

왠지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이별을 연상시킨다.  

그리고 우리 정서에서 이별은 슬픔과 한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이별이란 그 대상을 다시 만날 수 없게 된다는 상실상황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그 대상과 함께 보낸 시간의 기억이 지워진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기억이 존재하는 한 이별의 상태가 완성되거나 고착된 것은 아니다. 

하물며 그리운 '그대 뒷모습'이 가슴속에 화석처럼 새겨져 있는데, 

어찌 이별했다 할 수 있겠는가.


화석처럼 새겨진 기억의 가슴에 이별은 없다.

현재의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피안의 바다 어느 기슭에서 

언제든지 '그대'를 만날 수 있다. 


이별은 상실이 아니라 기억의 바다를 항해하여 

다른 시간과 공간으로 여행을 떠나는 것이다. 

이별은 그 여행에서 마주치는 또 다른 만남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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