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젠틀P Jan 11. 2024

평범한 와이프 변호사 만들기 v.02

임산부 로스쿨 면접기



나의 아내는 임신 6개월 차 임산부였다.


때는 시월의 어느 때로 기억한다. 날은 맑고 선선해


살짝 나온 배는 적당히 투터운 겉옷으로 커버가 되어


겉으로 보기엔 여느 여성 면접자들 중 한 명처럼 보였다.


로스쿨의 목적은 단 하나이다.


‘변호사 시험의 합격생을 많이 배출하는 것’


이에, 아내와 같은 임산부 또는, 특수한 상황에


놓인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로스쿨이라는 집단에서 당연시


기피대상이 될 불리할 수밖에 없는 조건의 유형이 될


가능성이 매우 큰 입장인 것이다.


내 머릿속의 회로도에는 아직까지도 임신한 배를 부여잡고


치르는 면접 중에 환영을 받을 수 있는 경우가 뭐가


있을까 생각이 든다. 요즘 같은 시대에는 지하철에서 임산부


전용석이 채워지지 않은 채 남겨진 것만으로도 감사한


생각이 들 정도이니 말이다.


아내의 면접시험은 오후로 잡혔고 나와 이제 돌이 얼마 


지나지 않은 아이는 학교 건물 주차장에서 아내를 


기다리고 있었다.


몇 분이 걸릴지 몇 시간이 걸릴지 전혀 정보가 없는


상황에서 아이를 주차된 차 안에서 보는 것은


'불가능'이란 것을 깨달았다...


분유와 온수병은 챙겨 나왔고 수유도 가능하고 


기저귀 정도도 가까스로 수는 있는 공간이긴 하지만 


아기와 어떠한 종류의 놀이도 할 수 없는 환경이라 


아니나 다를까 20분도 안되어 울음을 터뜨린다...


그때까지만 해도 초보아빠였던 나는 아기가 울 때 


정말 난감해하고 걱정되고 속상하고 화도 나고


복잡 복잡한 여러 가지 감정에 휩싸이기 일쑤였고 


아이가 우는 건 정말 견디기 힘든 상황 중 한 가지였다.


그렇게 카시트의 우는 아기를 꺼내어 아기띠에 안고 


운전을 해서 학교의 중앙도서관이라는 곳으로 


이동했다. 이제 막 걷기 시작한 아이는 이내 울음을


멈추었고 사람들이 많은 환경이 신기한지 


도서관 건물 내부를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잠깐의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아기를 운동도 시키고 분유도 먹이고 기저귀도 갈고


차 안에서 낮잠도 재우고 하니 4시간 정도가 지나고 나서야


아내의 얼굴을 마주 할 수 있었다.  


너무 궁금해서 아내를 만나자 마자 면접 시 상황이 어떤지 


안 물어볼 수 없었고, 교수님들의 질문에 다양한 상황들이 


연출된 면접자들의 재미있는 에피소드들도 전해 들었다.  


같이 면접을 보았던 대여섯 명 정도의 사람들은 


비법(법대출신이 아닌) 쪽이라 교수님들의 전문성 있는 질문에


제대로 된 답변은 못했지만 그중에 자기는 그래도 


정답은 확실치 않지만 법을 공부했던 사람으로서 


법대출신다운 답변을 했다고 얘기를 듣는 순간 


조금은 마음이 놓이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돌 지난 아기와 임산부가 있기에 


차로 세 시간이 넘는 거리를 6시간 가까이 


쓰면서 가다 쉬다를 휴게소에서 반복하다


무사히 귀가를 했다.


  

그렇게 일상으로 복귀를 하여 여전히 아내는


리트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았고, 나 역시


일과 육아를 정확히 반으로 병행하여 개인 시간이 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던 어느 날이었다.


두어 달이 지났을까? 


면접을 치렀던 학교의 결과 발표가 있었고,


그때도 마찬가지로 내년을 기약했던 우리여서


별 기대 없이 지난 두 곳의 서류전형 중 한곳의 불합격 


소식을 접해 본 경험을 기반으로 역시나 평범한 마음으로   


불합격 소식을 확인을 하려는데.....


?? 


"블라블라~~ 안타깝게 되었습니다."라는 말이 안 보였고


그렇다고 "블라블라~~ 축하합니다!"라는 말도 없었다...


뭘까....라고 아래 부분에 뭐라고 쓰여있던 첨가의 글을 보니




???!!!


예비 합격 2순위라는 설명이 보였다..;;;


그때의 복잡 미묘한 감정은 어떻게 말이나 글로 


설명하기 힘들 것 같다.. 이도저도 아닌, 


놀라긴 했는데, 막 기쁨이 차 오르는 것도 아니고


흥분이 되기는 하지만, 설마 안 되겠지라는 


차분함을 두뇌에 계속 주입하고 있는 상황이랄까?


보통 로스쿨 전형은 두 개의 학교를 지원해서 쓸 수 있는 


선택이 주어지지만 두 개 모두 합격을 하는 경우는 


많지 않아서 추가 합격생 없이 고착되는 경우가 많고


운이 좋게 1명 정도 추가 합격생이 생겨난다고 하는


기조를 보여서 우리 부부는 희망을 갖지 말고 계획대로 


다음 해를 공략하는 방법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3월이 얼마 남지 않은 것으로 기억한다. 


회사를 퇴근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내에게서


전화가 걸려왔고, "오빠!" 하는 숨소리마저 고조된


아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 붙었어!" 

 

뭘 붙지?라고 하는 잠깐의 시간이 흘렀고 


이내 '아...... 정말 합격인가....??'라는 


어리둥절하고도 심란한 합격소식을 


접해 들은 나였다...


기쁘기도 했지만 앞으로의 살아갈 날이 막막했다.  


연고도 전혀 없는 곳으로 이주를 하는 것도 일이었지만


당장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어야 하는 상황에서 


새로운 곳에서 직장을 구해 처자식을 먹여 살려야 하는, 


거기에 육아도 전적으로 도맡아야 하는 극도로 척박한


상황을 어떻게 헤쳐나갈 수 있을까 앞날이 깜깜하기만 했다..;;;


재산도 전혀 없었고 벌어 놓은 돈도 딱히 없는 수준에, 


집에서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상황도 안되었기 때문에,


합격이 되어도 걱정인 현실에 마주하게 된 것이다.


우리에게 어떤 앞날이 펼쳐질지 전혀 예상할 수 없는


절대 혼돈의 상태에 놓여 있었다...









 P.S. 


사법고시 때는 그래도 격차 없이 누구나 법조인을 향한 


도전이 가능했었지, 로스쿨은 있는 사람들, 기득권만 도전한다? 


아닙니다:) 


저희는 정 반대입니다. 


저희같이 평범하고 맨땅보다도 더 척박한 환경에서 


시작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평범한 와이프 변호사 만들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