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건 없는데 싫은 것만 많아도 괜찮아
"면 요리는 좋아하지 않지만 라면은 잘 먹는다"
"노래방가고 싶다고 생각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지만 막상 가면 잘 논다"
"이성적이지 않은 사람이 싫지만 누군가에겐 나도 이해받지 못할 성격이다"
취향이 확실한 사람을 좋아한다. 이름을 말하는 것만으로 떠오르는 색상이 있고, 특정 향이 맡아지는 것 같은 사람. 그런 사람을 좋아하고, 또 나 스스로 그렇게 되길 바란다.
하지만 현실은 그와 반대다.
일상에서 겪는 가장 어려운 질문은 '점심 뭐 먹을래?' 삼시세끼 정하는걸 누군가 물어보면 거부감부터 든다.
뭘 먹어도 상관없고 뭘 먹어도 다 똑같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그 중에서도 싫어하는 건 있다. 일단 면류는 싫다. 대부분 싫은데 특히 차가운 면 요리는 더더욱 싫다. 양식은 특별한 이유가 있지 않으면 굳이. 빵 종류로 식사를 대신하는 것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뭐든 괜찮아. 너는 뭐 할래(먹을래, 갈래 등등). 넘기면 됐다.
선호가 없으니 좋은 점도 있다고 생각했다.
일단 나 이외의 사람(들)과 같이 있을 때 '나서는 사람'이 되지 않는다. 누군가의 주장에 반대하지 않을 수 있다.
다른 사람의 취향을 알아차리기 좋다. 내 취향에 주장이 없으니 이걸 이루기 위해 시간을 투입하는 대신 사람들이 뭘 좋아하는지, 어떤 성향인지 파악할 여유가 생긴다.
뭘 해도 실패가 크게 없다. 하고 싶었던 뭔가가 없으니 기대치가 없었고, 그랬기 때문에 후회나 아쉬움이 덜하다.
그런데 사실 나는 불호만 있는게 아니라 호불호가 있는 사람이었던 것. 정확히 무엇을 '호'하는지는 모르지만, 일단 있긴 있었던거다. 문제는 이미 나에 대한 포지셔닝이 끝나있었다. 무언가를 할 때 굳이 물어보지 않아도 되는 사람, 좋아하는 것에 대해 공유하기엔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는 사람이 되어있었다. 마치 그것을 자랑처럼 이야기했던 과거가 내 발목을 붙잡았다.
"넌 그래도 되는 사람이잖아, 그치?"
뭐든 괜찮아. 라고 말하던 나를 스스로 멋지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는데
어느새 그래도 뭐 좋아하는거 없어? 라는 반문을 받으면 짜증이 일기 시작했다.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는 건 그나마 낫다. 최선을 고르는 건 어렵고, 최악과 차악을 고른다고 생각하면 어떻게든 고를 수 있다. 하지만 선호를 물어보면 막막해진다. 왜 나를 몰아부치는걸까? 아무거나 상관없다고 했잖아. 그렇게 물어보지말고 네가 정하라고. 내가 고르면 뭐, 군말 없이 따라오기나 할꺼야?
좋아하는 걸 좋아한다고 말하면 남을 불편하게 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내가 좋아하는 대상을 남들에게 인정받지 못할까 봐 불안했다.
좋아하는줄 알고 열심히 사모으고, 시간을 썼는데 막상 별로인 걸 알았을 때의 후회가 싫었다.
그래서 나는 나를 쿨한 사람으로 세팅한 채로, 이것도 나름 괜찮은 거라며 나와 주변에 소개해왔다. 가끔 이의를 제기받을 땐 상대편이 문제가 있어 참으로 쿨한 나를 가만두질 않는다며 힐난해 왔다. 그 상대편에는 물론 나 자신 역시 포함되어 있었다.
결국 이 쿨함이라는게 나 자신에게 좋은게 아니라 남들에게 ‘편안해보이는 사람’으로 보여지려는 욕구가 아니었을까. 그리도 남들과 상관없이 나 편한대로, 라고 되뇌어왔지만 결국 복기해보면 가장 많이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써왔던 것 같다. 사람들의 마음에 들고 싶어, 그러기엔 쉽지 않아. 그렇다면 사람들에게 평가받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자. 그리고 지금이 됐다.
밖에서 보기에 지금의 나는 참으로 여유로운 인생이다. 결혼하고, 자가를 마련했고, 대기업에 다니며(남편도 대기업에 다니고), 한 분야에 10년 이상 종사하며 전문성을 보유한.
그렇지만 나는 이제 한계에 부딪혔다. 내 삶의 방식에 단 하나의 불만도 없었던 내가, 언제부턴가 조금씩 금이 가고 있었고 결국엔 아예 조각이 나버렸다. 어떤 계기 하나 때문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지금의 나를 만든 하나하나의 선택과 만남, 사건을 바꿀 수는 없다. 그건 과거이고 복기하는 것 조차 의미가 있을 수 없다.
이 글은 마음이 부숴진 나를 개선하는 치료일 수도, 혹은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일지도 모르겠다. 정말 좋아하는게 없는건지, 내가 나를 몰라서 이러는건지 정말 하나도 모르는 나를 위한 안내서였으면 좋겠다. 그리고 혹시나, 혹시나 나처럼 세상에 맞춰 자신을 만들고 지쳐버린 사람이 있다면 잠깐 공감할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