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선, 펜 - 전쟁과 헌법, 그리고 근대 세계의 형성/ 린다 콜리
영국 역사학자의 독창적인 주장
전쟁·혁명이 헌법 제정·확산 이끌어
국가의 동원과 남성 참정권 교환
미국부터 아이티까지, 전 세계 탐구
1787년 9월17일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이 필라델피아 의사당에서 열린 제헌의회에서 미국 헌법에 서명하는 장면을 그린 기록화(1940년). 위키미디어 코먼스
총, 선, 펜
전쟁과 헌법, 그리고 근대 세계의 형성
린다 콜리 지음, 김홍옥 옮김 l 에코리브르 l 3만5000원
헌법은 한 국가의 최고 규범이다. 그 나라의 정체성, 지향하는 가치뿐 아니라 영토와 주권, 국민의 권리와 의무, 정부의 구성과 기능 등을 포괄한다. 현대 세계의 거의 모든 국가가 헌법을 채택하고 있다. 그 대다수는 문자로 명시된 성문헌법이다. 그러나 세계 각국이 헌법을 제정한 역사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최초의 성문헌법은 1789년 발효된 미국 헌법이다. 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난 바로 그 해다.
성문헌법의 출현은 흔히 군주제의 쇠퇴와 공화주의 부상, 국민국가의 성장과 민주주의의 진보와 직결된 현상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영국의 역사학자 린다 콜리는 “그런 식으로만 접근하면 논의가 지나치게 협소해지고 잘못된 길로 접어들 수 있”으며, 오히려 전쟁과 혁명 같은 폭력적 사태가 헌법의 제정과 확산을 촉진했다고 주장한다.
그가 2021년 출간한 ‘총, 선, 펜’은 전 세계 헌법의 역사를 추적해 헌법 제정과 전쟁 수행의 긴밀한 연관성과 근대세계의 형성 과정을 파헤친 책이다. 헌법이 모든 인간의 평등과 천부인권을 확인한 대의와 진보의 산물이 아니라 인간의 폭력적 속성에 대한 두려움의 산물이라는 주장은 기존의 통념에서 너무 많이 벗어난 것처럼 낯설고 신선하다.
제목을 구성하는 세 가지 열쇳말이 눈길을 끈다. ‘총’은 무력(전쟁과 혁명)을 뜻한다. ‘선’은 전 지구적 차원의 장거리 전쟁을 가능케 한 대양해군의 전함을 가리킨다. ‘펜’은 문자로 쓰인 헌법과 그 보급을 가능케 한 출판인쇄술의 환유다.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는 1만3000년 전 인류가 농경과 목축을 시작한 때부터 20세기까지 문명의 발달 속도와 수준의 차이를 무기, 병원균, 금속이라는 세 가지 요인으로 설명한 ‘빅 히스토리’다.
콜리의 ‘총, 선, 펜’은 18세기 중반 이후 200년 동안 대규모 전쟁, 무기 기술 발달, 헌법의 제정과 확산이라는 세 가지 현상과 그 상호관계가 제국주의의 부침과 신생독립국 탄생 붐으로 이어진 근대 세계의 형성에 어떻게 기여했는지 보여주는 ‘빅 픽처’다.
지은이는 자신의 주장을 입증하기 위해 유럽과 그 식민지였던 남북 아메리카뿐 아니라, 중국·일본 등 아시아, 아이티·하와이 등 태평양 도서국가, 아프리카의 동서남북까지 6개 대륙 전역을 샅샅이 훑으며 헌법의 제정과 전파 과정, 전쟁과 혁명의 강력한 지도자와 선견지명을 지닌 입법가의 발자취와 관련 기록을 살폈다. 깨알 같은 사료와 생동감 있는 서술에 힘입어 성공적인 시도로 보인다.
1908년 여름, 중국의 철학자이자 개혁가 캉유웨이는 고국에서 추방당해 세계를 떠돌던 중이었다. 그는 오스만 제국의 수도 이스탄불에서 군대의 반란을 목격하고 시대의 거대한 변화를 직감한다. 반란의 명분이 앞서 1876년 발효됐다가 곧바로 철회된 제국 헌법의 복원을 촉구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캉유웨이는 반군 지도자들이 술탄에게 보낸 최후통첩성 청원의 뼈대를 이렇게 기록했다. “모든 나라에 헌법이 있습니다. 오직 튀르키예만이 그것을 선언해놓고 폐지하는 바람에 국민이 만족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미 20세기 초에 ‘모든 나라에 헌법이 있다’는 언술이 눈길을 끈다. 지은이는 그 배경이자 동력이 전쟁과 혁명이었다고 봤다. 18세기 유럽의 산업혁명·시민혁명과 미국의 독립, 19세기 서구 열강의 제국주의 팽창과 식민지 경쟁은 이전까지의 세계 질서를 근본적으로 바꿔놓기 시작했다. 유럽과 아메리카 대륙에서 잇따른 내전과 혁명은 통치자와 피통치자 간 권력의 지형을 뒤흔들었다. 전쟁의 양상도 크게 바뀌어, 육군과 해군을 아우르고 지리적 범위가 전 지구적 차원으로 확장됐다. “여러 제국들이 자신의 통치를 합법화하고, 그들 군대와 정착민이 점령한 영토를 규제하기 위해 공식 문서(성문헌법)를 사용”했다.
1215년 영국의 존 왕이 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마그타 카르타(대헌장)’에 서명하는 모습을 그린 기록화(1864년). 위키미디어 코먼스
전에 없이 규모가 커진 전쟁으로 군비 부담과 징병 수요가 급증했다. 통치자들은 헌법을 “정부 질서를 재정비하고, (국가의) 경계를 표시하고 주장하며, 국내 및 국제 무대에서 그들의 위상을 선전하고 피력하기 위한 수단”으로 삼았다. 공짜는 아니었다. 많게는 100문이 넘는 함포를 장착한 거대 전함들의 건조와 운용에는 엄청난 비용이 들었다. 군대가 국가 상비군으로 재편되면서 남성들에게는 병역 의무가 부과됐다. 남성 국민은 높아진 세금을 내고 징병돼 총을 쏘고 전함에서 복역하는 대가로 선거권 같은 특정한 권리를 얻게 됐다. 이런 사정은 왜 모든 헌법이 초기에 남성 시민에게만 선거권을 주고 비국민과 여성을 배제했는지를 설명해준다. 근대의 헌법은 통치자가 국가의 가용자원을 동원할 수 있는 권력을 보장하는 증표이자, 시민과 국가의 ‘계약’ 관계를 공증하는 문서로 탄생한 셈이다.
강력한 제국주의 국가들만 헌법을 만든 건 아니었다. “방어적인 제국과 압박받는 약소국들도 적대적 세계에서 자국민과 영토를 결속하고 보호하려 새로운 헌법을 채택”했다. 1767년, “취약성과 야심이 뒤섞인” 러시아의 예카테리나 여제는 22개 장 655개 조항의 ‘나카즈’(훈시)를 완성했는데, 그 특징과 기법은 뒷날 러시아 성문헌법이 된 텍스트의 효시가 됐다. 1775년 영국의 식민지령이었던 미국이 독립전쟁을 벌이고 이듬해 채택한 독립선언서도 12년 뒤 미국 헌법의 기본 뼈대 구실을 했다. 독립선언서 저자들의 의도는 “다른 열강들과 마찬가지로 미국인도 이제 이런 최후통첩을 날릴 수 있는 권리를 보여주려는 것”이었다.
1840년 하와이 왕국의 헌법은 “하와이가 온전한 근대국가로 제 모습을 드러냈으며 제국의 점령에 적합한 표적이 아니”라는 선언이었다. 불행히도 그 실험은 8년 뒤 미국에 합병되면서 마침표를 찍었다. 1847년 미국의 해방 노예들이 아프리카에서 독립공화국을 선포한 라이베리아도 헌법 제정으로 “아프리카 혈통의 흑인이 자체 정부를 꾸릴 수 있는 완벽한 능력이 있음”을 보여준 사례다.
지은이는 “성문헌법의 눈부신 발전을 민주주의와 입헌주의 개념의 매력에 비춰서만 설명”할 게 아니라, “거듭된 폭력적 사건들의 기여에 초점을 맞추면 더 광범위하고 다채로운 견해를 제공하고 폭넓은 지형과 목소리를 담아낼 수 있다”고 강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