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두.절.미.
한식쌤은 말씀하셨지.
“기억하세요. 숙주는 거두절미. 머리와 꼬리를 다 제거해요. 하지만 콩나물은 꼬리만. 콩나물 머리까지 제거하면 안 돼요.”
한식조리기능사 실기시험 메뉴에는 잡채도 콩나물밥도 있다. 잡채에 들어가는 숙주는 머리 꼬리를, 콩나물은 꼬리만 다듬어야 한다는 이야기. 그래야 감점이 없다.
한식조리 기능사반 수업을 좋아했다. 나는 물론 가족 모두.
“딸~ 오늘은 뭐 했어?” 친정엄마.
“요리 말고 뭐 그런 건 언제 하냐?” 울 아빠. 아빠가 기다리신 건 매작과. 현재 실기시험 메뉴에서는 빠졌다.
“오늘은 시간 안에 했어?” 남편.
“엄마, 탕평채 한 번 더 해 주면 안 돼? 너무 맛있어.” 딸.
하루걸러 하루 나는 삼시 세끼가 불만이다. 어젠 신나서 잡채에 탕평채를 하고 오늘은 ‘이눔의 콩나물!!!’ 꼬리 떼며 퉁퉁거리는 사람이 나.
‘영아. 잘 먹는 게 세상 제일 중하다며? 그런데 잘 먹자고 하는 일에 왜 이렇게 심통이야?’
내가 내게 묻는 말. 그러게 나는 왜 잘 먹자고 하는 일이 자주 시간 낭비 같은 걸까?
+
휴. 다 넘었다.
설거지 산.
아침 점심 저녁, 세 끼를 방치했더니 설거지함의 설거지가 산산산. 6시 20분에 일어나
수저받침부터 28센티 웍 까지 설거지 산을 완주했다. 야호!
말끔해진 주방에서 기분 좋아진 나는 까마귀 고기를 먹은 사람처럼 ‘탕평채나 할까?’ 냉장고를 열어 주섬주섬. 잘 먹는 일은 산을 타는 것과 비슷한 건 아닐까? 등산을 즐기는 편이 아니라 잘 모르지만, 왠지 그럴 것 같다.
“어차피 내려올 산, 왜 올라가 왜!”
오르는 내내 툴툴 대다가도 정상에 올라 발아래 펼쳐지는 풍경을 보면 나도 모르게 우와~. 말끔해진 주방을 보니 ‘일 벌이지 말자’ 싶다가도 “음... 이 맛이야. 엄마 너무 맛있잖아.” “역시. 집에서 먹는 밥이 제일이다.” 식구들 모습이 어른거려 ‘슬슬 만들어 볼까?’ 마음 한 구석이 간질거린다.
양파 하나 깠을 뿐인데 쨍그랑! 주방의 평화 깨지는 환청이 들리는군.
설거지 산 초입에서 올라 말아 갈등하며 미나리 다듬고 청포묵 데치는 5월 5일 어린이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