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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ny May 03. 2024

돌발상황 없다면, 여행이 지루하겠지?

러브레터 02

“다행이야. 종일 흐림인데 아침에만 잠깐 맑을 거거든. 해 나온다. 빨리 가자.”


남편은 들떠있었다. 덩달아 아이와 나도 들떴다 매표소로 달려간 남편은 잠시 이야기를 나누는가 싶더니 빈손으로 돌아왔다.


“선영아, 혹시 카드 가져온 거 있어?”

“없지. 모두 집에 두고 오라며.”


여행 가방을 챙기는 내게 남편은 모든 신용카드를 집에 두고 오라 했다. 휴대폰, 자동차키, 서류가방, 신용카드 등등. 분실 이력이 화려한 터라 남편의 말을 따랐다.


“왜? 사전 예약 하는 거였어요?”

“아니. 카드가 안 되. 유니온페이는 안 된데.”

“그럼 다른 카드로 하면 되지..”


남편이 고개를 저었다. 해외에 그것도 한 달씩 있을 건데 달랑 카드를 한장만 가지고 왔다고? 결제가 안 될 경우 대비 여분 신용카드 하나 정도는 상식 아닌지? 쏟아지는 생각을 누르며 현금결제를 제안했다.


“그게, 지금은 달러밖에 없는데, 달러는 안 받는데.”

“환전 안 했어요? 파묵칼레 오기 전 환전 했잖아.”

“그러니까 그게…”


체크아웃 당시 호텔주인은 신용카드 대신 현금결제를 요구했다. 인터넷으로 예약을 하며  숙박비 결제가 끝난줄 알았던 터라 환전해 둔 현금에는 숙박비가 포함되지 않은 상태였다. 우리는 그것을 잊었고 설상가상 가지고 있는 유일한 신용카드(유니온페이)는 파묵칼레 매표소는 물론 내부 식당과 기념품샵 등등에서 모두 사용불가였다.


남편은 걸어온 길을 되돌아가 ATM기를 찾았다. 아이와 나는 매표소 앞에 쪼그리고 앉아 뛰어가는 남편의 뒷모습을 눈으로 좇았다. 금방 돌아올 줄 알았던 남편은 한참 ATM기 앞에 머물더니 갑자기 호텔 방향 골목으로 사라졌다.


“다른데 가지 말고 꼭 여기 있어. 절대 절대 다른데 가면 안 돼. 누굴 따라가도 안 돼. 알았지. 응?”


아무리 기다려도 남편은 오지 않았다. 전화도 받지 않았다. 조바심이 난 나는 아빠에게 가 보자 아이에게 말했지만 평소보다 이른 기상에 졸음이 밀려온 아이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매표소 앞에 아이를 남겨둔 채. ATM기를 향해 걸었다. 저만치 땀범벅이 된 남편이 뛰어오고 있었다.


“여보!”

눈이 마주쳤다. 남편이 신용카드를 ATM기에 삽입했다. 삑 삑 버튼 누르는 소리.


“ 또 이러네.”

“그냥 호텔 가서 현금결제 취소하고 카드결제 해 달라고 부탁해요. 그게 제일 낫겠어.”


합리적인 제안이라 생각했건만, 남편은 이미 호텔에서 대차게 거절 당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3대의 ATM기를 옮겨다니며 현금 인출을 시도했지만 모두 실패. 더는 방법이 없겠구나 싶었던 찰라 경찰차가 나타났고 남편과 나를 스쳐 매표소로 향하나 싶더니 매표소 앞에서 멈췄다. 그제서야 떠오른 두고 온 우리 딸.


“여보”

“은수!”


남편이 매표소를 향해 뛰었다. 나도 남편의 뒤를 쫓았다.  별일은 없었다. 동양인 아이가 이른 아침 홀로 매표소 앞에 있으니 누군가 경찰에 신고를 했던 모양. 이른 아침 나타나 남편도 뛰고 아내도 뛰고, 경찰차 까지 출동하는 일련의 상황을 지켜본 기념품 가게 주인이 나와 아이에게 가게 안에서 몸을 녹일 것을 권했다. 환전을 하지 못한 남편은 여전히 홀로 거리를 헤매는 중.


코레아를 좋아한다고 밝힌 가게 주인은 내게 무슨 일인지를 물었다. 번역기를 동원해 최대한 간략히 상황을 설명하자 그는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고 달러를 환전해 줄 자신의 친구가 이곳으로 오고 있다 했다. 나는 거리를 헤매고 있을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고 어쩌다 보니 가게 주인과 나와 남편과 가게 주인의 친구는 ATM 앞에 모이게 되었다.


거리에 서서 한쪽은 달러를 다른 한쪽은 리라를 꺼내 맞교환 하는데 마치 은밀한 뒷거래 현장 같아 그 와중에 웃음이 나왔다.


“여보, 설마 가짜 돈은 아니겠지?”

터키에 도착한 첫 날부터  상상초월 상술을 온몸으로 경험한 터라 그제서야 스물스물 불안한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이게 위조지폐라 해도 더는 방법이 없어.”

저 말을 던지고 매표소로 향하던 남편의 뒷모습이 아직도 생생. 파아랗고 새하얀 여행책 속 파묵칼레는 더 이상 내게 없다. 파묵칼레를 떠올리면 원망스러운 호텔 사장, 부수고 싶었던 ATM기, 고마웠던 기념품 가게 주인이 함께 온다. 기차 시간에 쫓겨 기념품 가게 아저씨께 제대로 된 감사인사도 하지 못한 채 온 것이 지금도 마음에 걸린다. 다시 한번 파묵칼레에 가게 된다면 신용카드는 비자, 마스터 2종으로 환전은 미리 넉넉하게 해야지.



<이것은 러브레터인가 여행기인가>

내일은 더 혹하는 러브레터를 써 보겠습니다.

모두 내일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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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전 <집 밖의 집>  2024.5.10~5.31

북토크 <집 밖의 집>  2024.5.17&18

@그래서 책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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