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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묘해 Mar 18. 2023

집. 밥.

엄마가 쓰러졌다.

그것도 한 달에 두 번이나.


한 번은 언니네와 놀러 가서 맛있는 고기를 먹고 고깃집에서 나오던 길에 갑자기 쓰러지셨다.

언니와 형부는 놀라 119를 불렀고 사이렌소리 요란하게 응급실에 갔다.

여러 가지 검사를 했지만 딱히 병명이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보름 후

어느 햇살 좋은 토요일.

봄점퍼를 사드리려고 엄마와 백화점에 갔다.

백화점 식당에서 음식을 주문하고 자리로 돌아왔는데 갑자기 또 쓰러지셨다.

급하게 119를 부르고 백화점 경호원들의 도움을 받아 또 응급실로 갔다.

MRI까지 촬영했지만 또 병명이 나오지 않았다.

다른 검사도 해보자는 의사의 말에 검사일정을 정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갑자기 엄마가 옆에 안 계시면 어떻게 하지? 무얼 위해 살아야 하지? 왜 일을 해야 하지? 왜 살아야 하지?'

모든 것이 불분명해졌다.

나의 존재 자체가 부정당하는 느낌이었다.

상상하기 힘든 것들이 어느 날 문득 현실처럼 다가옴을 느꼈고 그 현실들은 믿기지 않을 만큼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집 밥을 먹어본 지 오래전이다.

집을 나와 살아간 지 벌써 십여 년인 데다가 한 번씩 집에 가면 집에서 밥을 먹기보다는 외식을 했었다.

처음에는 집 밥을 먹었는데 매일 집 밥을 드시는 엄마는 얼마나 지겨우실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부터 집에서 밥을 먹지 않고 항상 외식을 했었다.

엄마에게 맛있는, 요즘 인기 있는 음식들을 사드리고 싶었다.

엄마는 가보지 않은 식당들, 이쁜 카페들, 맛난 커피들... 모든 곳들을 데려가고 싶었고 사드리고 싶었다.


그런데 갑자기 집 밥이 너무 먹고 싶었다.

엄마가 해주는 된장찌개, 칼국수, 김밥, 불고기 등등...

모든 것이 그리웠다.

어쩌면 조금 더 시간이 지나면 다시는 먹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너무... 너무나 많이 슬퍼졌다.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엄마... 나 밥 좀 해줘... 나 집 밥이 너무 먹고 싶어... 된장찌개... 그래 된장찌개 좀 해주라... 이번 주말에 갈게.'

갑자기 왜 밥을 해달라고 하느냐며 엄청 귀찮아하셨다.


그렇게 주말이 되어 집에 갔을 때 집 안에 음식냄새가 가득했다.

그리웠던 엄마가 해준 된장찌개 냄새...

반찬은 몇 가지 없었지만 그렇게 엄마와 둘이 앉아 밥 한 그릇을 다 먹었다.

최고였다.

식당에서 밖에서 사 먹던 음식에서는 항상 뭔가 조금 부족한 느낌이었는데 그건 그냥 엄마의 손맛이었다.


일 년 새 살이 10킬로나 빠진 엄마.

깡 말라버린 엄마.

내가 중앙기관에서 미친 듯이 일하고 밤을 새우고 머리를 쥐어짜는 동안 엄마는 일에 미쳐사는 막내를 기다리며 그렇게 잘 먹지도 않고 말라갔다.

엄마의 앙상한 팔과 다리를 보면서 그동안의 나의 모습을 뼈저리게 후회하며 맛나다는 음식점에 엄마를 모시고 미친 듯이 다녔지만 엄마는 먹지를 않으셨다.

밥이 안 넘어간다고 하셨다.

산 사람이 밥이 안 넘어간다니... 너무 무서웠다.

어떻게 하면 엄마가 다시 예전처럼 맛있게 드실 수 있을까?


집. 밥.

.밥.이었다.

내가 집에 가는 것 그리고 집에서 엄마와 같이 밥을 먹는 것.

어쩌면 집 밥이 답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였다.


당신이 끔찍이도 아끼는 막내딸이 먹고 싶다는 된장찌개를 만들기 위해 장을 보실 거고 그렇게 보글보글 끓여낸 된장찌개에 다시 식욕을 불어넣고 그렇게 보고 싶은 막내딸과 둘러앉아 먹는 밥 한 끼가 답이라 생각하였다.


'엄마 나 내일은 칼국수가 먹고 싶을 것 같아. 퇴근하고 집에 갈게. 칼국수 좀 해줘'

'얘가 귀찮게 자꾸 왜 이러나몰라...

근데 몇 시에 올 건데?'


그렇게 집에 가는 횟수를 늘려 엄마를 자주 찾아뵙고 엄마와 같이 집에서 밥을 먹었다.

1/3 공기만 드시다가 반 공기를 드시고 그렇게 2/3 공기의 밥을 드시게 되었다.


'엄마. 4월에 우리 부산에 놀러 가기로 했잖아. 지금 같아선 같이 못 가... 엄마 제발 5킬로만 찌우자. 그리고 나랑 같이 부산에 가서 배도 타고 회도 먹자. 응? 막내딸 이제 겨우 중앙기관에서 나와서 시간이 되는데 엄마가 자꾸 쓰러지고 정신 잃고 그럼 안 되는 거잖아. 그러니 입맛 없어도 나랑 계속 밥 먹고 병원 다니고 딱 5킬로만 찌우자.'

'그래. 부산 가자.'



시간을 주세요.

함께 할 시간을 주세요.

제가 제 삶을 그리고 제가 살아가야 할 이유를 없애지 말아 주세요.

평생 후회하며 살아가게 하지 말아 주세요.

제가 사는 동안 받을 남은 행운과 복을 엄마의 건강과 바꾸겠습니다.


'저의 기도를 들어주세요... 제발...'


기도

글. 그림 by 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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