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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묘해 Oct 05. 2023

달의 뒷면(페르소나를 걷어 내고)

새벽에 일어나 이부자리를 깨끗이 정리해요.

유튜브에서 캠핑 영상을 보면서 거실 한편에 놓인 실내 자전거를 삼십 분 간 달려요.

빠르게 달리다. 천천히 달리다 그렇게 여러 번 반복하다 보면 삼십 분이 훌쩍 지나가 있어요.

일리 머신으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내려 마시며 잠시 명상을 해요.




글의 기운이 많이 달라졌어요.

 나는 이러이러했는데 결과가 이렇더라. 그래서 속상하고 어쩔 수 없음에 힘이 빠지고,

그들과의 관계 또 그 일들과의 관계 속에서 여전히 힘들어하고 헤매고 있다..라는 얘기는 더 이상  없어요.


단지 운동을 하고 명상을 하고 좋아하는 커피를 마시고 그렇게 하루를 시작한다는 얘기를 해요.


어쩌면 당연하고 정상적인 것이었는지도 모르겠어요.

어쩌면 그 상황 속에서 미친 듯이 뛰어다니던 그때는, 또한 그 모습이 정상이었는지도 모르겠어요.

마음의 여유가 생겨 돌아보니...

참 열심히 살았더라고요.

영화 '드림' 대사 중에 '미친년이 미친 세상에 살면 그게 정상이 아닌가요?'라고 하던데 제가 그랬나 봐요.

진짜 미친 사람처럼 열정적으로 진심을 다해 살았었거든요.


'정말 최선을 다했어.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한 순간도 피하지 않고 열정을 다했어...'

생각의 끝은 항상 이 말이었는데, 바보들이 항상 최선을 다했다고 한다면서요.

그렇다면 세상에 바보가 많았으면 좋겠어요. 바보들 사이에 껴서 바보의 등에 업혀가는 사람들이 차라리 없었으면 좋겠어요.

제가 그 바보였으니까요.


가끔은 이런 생각도 해요.

왜 한 번도 한순간도 피하지 않았을까?

못하겠다. 모르겠다. 내 일이 아니다...

여느 사람들처럼 왜 그렇게 조금 돌아가고 피하고 모른 체 하지 않았을까. 왜 못했을까...

그 힘듦을 오롯이 받아내려 제대로 소화하지도 못하면서 꾸역꾸역 해 나갔을까...

조금 모른 체 했어도 이 세상은 잘 돌아가기만 하는데...

조금만 모른 체 했었어도 이렇게까지 생체기가 나지는 않았을 텐데...라고 생각도 해요.

또다시 그런 상황에 내몰리면 그때도 피하지 않을까요?

아님 이제 스스로가 다치지 않도록 '나'만 생각하고 돌보게 될까요?




하루를 온전히 '나'로 살고 있어요.

가끔은 규칙 없는 날도 있어요.

자고 싶으면 자고 먹는 게 생각이 나면 잠시 먹고

어깨가 아프고 다리에 쥐가 나도록 책도 읽고

산속을 거닐고 싶으면 그냥  달려가 산속을 거닐어요.  

그러다 절이 보이면 들어가 합장을 하고 절을 올리기도 해요.

항상 '편안함에 이르게 해 주세요...' 하고 빌어요.

누구를 이라는 생각은 없어요.

저 일 수도 있고 가족일 수도 있고 제가 아는 어떤 이 일 수도 있어요.

그저 '편안함에 이르게 해 주세요... '하며 빌어요.


이렇게 하루를 온전히 '나'로 살아보고 있어요.

온전히 나로 산다는 것.

어떤 가면도 쓰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나'로 살아본다는 것.

살아오는 동안 단 한 번도 없었던 시간.

어깨가 한없이 가벼워요.

머릿속이 깨끗하고 투명해요.


이런 생각, 이런 느낌이 있다는 걸 여태 몰랐어요.

해본 적이 없으니 몰랐을 테죠.

가장 많이 보고 익숙한 나의 모습은 조직 속에서의 나였어요.

그다음은 가족 안에서의 나.

그러다 가끔 그냥 나의 시간을 보내고, 일요일 저녁이면 다시 조직 속으로 돌아갈 준비를 했어요.


그래서 이런 느낌이 있다는 걸 몰랐어요.

아... 이렇게 또 그렇게 살면 얼마나 좋을까?

상상만 하던 삶을 살고 있어요.


가장 좋은 건 억지웃음을 짓지 않아도 된다는 거.

웃고 싶을 때만 웃을 수 있다는 거예요.


달의 뒷면을 본 것일까요?

절대 볼 수 없는 달의 뒷면

진짜인 나의 얼굴, 나의 표정, 걸음걸이, 웃음... 그리고  나의 뒷모습


감사한 마음으로 지내고 있어요.

이런 시간, 이런 경험을 할 수 있도록 열심히 살아온 지난날의 나에게 감사하고 있어요.

어느 쪽이 달의 뒷면이고 앞면인지 아직은 잘 모르지만

다시 어느 면으로 되돌아가야겠지만

어쩌면 되돌아가지 않겠다 선택과 결정을 할 수도 있을 테지만...


어떤 결정을 하기 전까지 이 순간들을 조용히 보내려고  해요.


브런치에 글을 쓸 때는 항상 어떤 내용이든 공감이 가도록 글을 쓰고자 노력했어요.

공감을 얻지 못한다면 한낱 일기에 지나지 않아...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인지 한 편 한 편, 소재와 주제를 정하고 글을 쓰기가 부담스러울 때도 있었어요.


그래도 가끔... 이런 날도 있잖아요?

저런 날도 있듯이.

그냥 시냇물 또로록 흐르듯 내 얘기를 하고픈 그런 날.

오늘이 그런 날이에요.




아. 그거 아세요?

전화를 받으면 항상 '솔' 음이었는데. 요즘은 '미'에요.


의식적이고 가식적인 친절함도 잠시 내려놓은 밤입니다.

글. 그림 by 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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