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이 마음의 속도를 조절할 때
얼마 전 겪은 일로 인해 깊은 상처와 상실감을 경험한 적이 있었다. 그때의 나는 울타리도 없는 넓은 비포장 도로에서 길을 잃은 것 같았다. 지나다니는 차도 없는 어둡고 고요한 곳에서, 폭풍 같은 감정들이 스쳐갈 때마다 살갗이 베이는듯한 고통이 따라왔다. 몸은 천장을 보며 가만히 누워있을 뿐인데도.
그러나 그 순간에도 나는 알고 있었다.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상처가 아니라, 아무런 생각도 기대도 하지 않게 되는 상태라는 것을. 그것은 내 정체성을 내려놓는 것과 같은 일이다.
혼란 속에서도 내가 붙잡고 있던 가느다란 끈은, 오늘의 일이 사실 인생 전체를 결정짓는 사건은 아니라는 아주 작은 감각이었다. 그냥 이어지는 하루들 중 흐름이 조금 거칠었던 날일 뿐인데, 그 순간 잠시 나의 모든 생각과 마음이 녹아내릴 듯이 아팠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걸까, 묵직한 질문이 나를 멈춰 세웠다.
비 오는 날 젖은 땅 위로 우산 끝에 체중을 싣고 기대본 적이 있다. 매끄러운 대리석 바닥은 거친 흙길보다 훨씬 더 잘 미끄러진다. 우리의 기대도 이와 닮았다. 결이 매끄러운 길을 향해 기대를 실으면 불안도 그만큼 커지고, 휘청이다가 결국 한 번은 크게 넘어지게 된다. 우산이 작아서 의지할 축이 되지 못해도 마찬가지이다. 넘어지지 않으려 애쓰던 순간들을 떠올리면, 내 기대가 얼마나 가볍고 불안정한 바닥에 서 있었는지 비로소 알게 된다.
그 후로 어떤 일에 대해 기대를 앞서 키우는 일이 조심스러워졌다. 좋은 감정들은 순식간에 사람을 동화시키지만 금방 사라지기도 한다. 반면 어두운 감정들은 마음에 들어오면 얼마나 깊게 스며드는지 알아채기 어려울 때가 많다.
하지만 어두운 감정들도 결국 내 마음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에 억누르기보다 ‘지나가는 감정’으로 바라볼수록 고요해지는 순간들이 있다. 두려움을 피하기보다, 그 감정이 올 수밖에 없는 상황에 조금 더 초점을 맞춰 인식하려 노력하다 보면, 잠시 후에는 어느새 지나간 파도를 바라보고 있는 자신을 마주하게 된다.
두려움이라는 감정이 없다면, 우리는 어떤 일에든 주저 없이 뛰어들 것이고 때로는 속도를 조절하지 못해 더 큰 상처를 얻게 될지도 모른다. 불안을 ‘준비를 위한 감정’으로 바라본다면, 일상적인 수준의 두려움은 내 마음의 속도가 앞서나가지 않도록 조절하는 역할에 가깝다.
모든 질문에 즉각적인 정답이 주어진다면, 우리는 이렇게 하루하루 고민하고 연습하는 과정에 충실할 수 있을까. 이 시간 속에서 다루는 생각과 마음들이 결국 나를 있어야 할 곳으로 데려다줄 것이라 생각한다. 원하는 그림을 모두 내 힘으로 그릴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이 시간이 나에게 필요한 시간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있다.
대부분의 감정은 나를 보호하려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나는 왜 이렇게 걱정이 많고 예민하며 어려운 질문들을 자꾸만 반복하는지, 예전에는 잘 몰랐다. 하지만 나를 알아가는 시간 속에서, 그 모든 감정들이 결국 나를 지키기 위한 신호였음을 조금씩 이해하게 되었다.
어려운 감정이 떠오를 때, 당장에는 힘들 수 있다. 그러나 잠시 후 그 밑바닥에서 어떤 마음이 감정을 불러일으켰는지 들여다본다면 조금 더 나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감정을 이해하는 일은 결국 나를 이해하는 일과 닮아 있다. 여전히 흔들리는 마음임에도, 그 흔들림조차 나를 움직이게 하는 것이 될 수 있음을 조금씩 바라보며 나아간다.